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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4 | [서평]
암울한 시대의 암울한 기록 『그들의 총』 (1993, 김병용, 중앙일보사)
정 철 성 / 전북대 강사․편집위원(2004-02-03 14:45:07)
김병용의 첫 장편소설 『그대들의 총』의 근간을 이루는 두 개의 사건 즉, 총기도난과 용공교사단 사건은 '작가의 말‘에 밝혀져 있듯이 80년대 초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소설은 독자에게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현실의 사건이 변용되는 과정은 사건에 대하여 독자가 파악하고 있는 정도에 따라 상이한 반응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깊숙한 곳까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자는 소설의 내용이 현실과 다르다고 불만을 품는다. 한편 이 사건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독자는 알지 못하는 까닭에 아무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오히려 소설을 통하여 현실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들의 총』에 묘사된 사건은 현실 자체가 아니라 현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이쓴 가상의 사건일 뿐이다. 다시 말해 현실의 충실한 반영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현실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느냐가 문제이다. 우리는 현실의 어느 도시를 배경으로 주인공들이 움직이는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그 배경이 내가 사는 도시, 내가 사는 골목일 경우에도 초연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공간의 거리를 확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시간의 거리라도 확보하려고 애쓴다. 그래서 그것이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이거나 아니면 꼭 그대로 일어나리란 보장이 없는 미래를 상황에 대한 예측이기를 기대한다. 불행하게도 『그들의 총』은 시공 양쪽의 거리를 모두 거부한다. 이미 10년전에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이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이기 때문에 『그들의 총』은 과거의 사건으로 쉽게 해석되지 않는다. 사실 『그들의 총』을 현실의 기록으로 오해하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독자의 소설에 대한 이해의 정도에 달려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소설의 배경을 구태여 알파벳을 사용하여 ‘제이(J)고’라고 지칭하는 것보다 원래의 이름이나 아니면 다른 가상의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 독자의 오해를 줄이는데 도움을 주리라고 생각한다. 소설의 배경으로 학교가 등장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보았다. 성장소설의 주인공이 자신의 청소년기를 회한섞인 목소리로 회상할 때, 학교는 빠뜨릴 수 없는 장소이다. 그러나 『그들의 총』에서 학교는 미화의 대상으로서 학교가 아니다. 이곳은 입시전문기관으로 전락하였을 뿐 아니라 외부 군사문화의 압력에도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취약지구일 뿐이다. 사회에 전염병이 창궐하여 대부부분의 제도가 감염되더라도, 그래도, 학교만은 깨끗해야 한다고 강변할 근거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지금도 학교는 학교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학생을 가르치듯이 스스로를 가꾸어 오신 ‘선새임’들의 덕분이다. 『그들의 총』에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인물은 젊은 교사 강병식이다. 강병식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서 선생과 표 선생과 심지어는 교장선생님까지도 포용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그가 맹목적으로 추종과는 거리가 먼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의 자세가 새삼스러운 것은 그것이 여하튼 도식성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파쇼의 어원을 분석하면서 그가 자신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자신을 분석의 대상으로 사망 자신의 파쇼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파쇼의 대행자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은 그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가 80년대 초 운동의 원리를 대변하고 있는 후배 교사 박미연에 대하여도 당당하지 못한 까닭은 그가 끝없이 판단을 유보하는 완벽주의자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인 것 같다. 주로 교장을 향해 표출되는 강병식의 비판은 종종원칙의 제시에 그치고 만다. 강병식에게는 행동을 뒷받침할 힘이 없는데, 나는 이것이 강병식의 결정적인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에는 두 개의 줄거리 (플롯)이 있다. 처음에 밝힌 바와 같이 총기도난과 용공교사단 사건이 그것이다. 용공교사단 사건이 강병식을 중심으로 조작된다면 이 사건을 촉발시킨 총기도난 사건은 강병식이 담임하는 학생 김명수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두 개으 l줄거리는 유대가 아니라 반목으로 결합되어 있다. 간단히 인물들ㅇ르 중심으로 이소설을 살펴보자. 강병식을 중심으로 그를지지 또는 후원하는 인물과 절대적인 인물을 배치하면 한 쪽에 서 선생이 오고 다른 쪽에 대공과 김경사가 선다. 명수의 양쪽에도 같은반 친구 동호와 교련담당오학식이 있다. 이 두인물군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소설이 주로 강병식의 지식인 냄새가 나는 고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까닭에 명수가 차지하는 몫은 작은 편이다. 그래서 강병식의 양편에는 각각 표 선생과 교장이 덧붙여져 있고, 그외에도 교외의 박미연이 그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이 인물들 가운데 어느 한쌍도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 멀어지고 각자의 입지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맴돈다. 심지어 지배권력ㅇ르 함께 추종하는 김 경사화 오학식과 교장도 이해관게의 차이 때문에 서로 반목한다. 강병식의 줄거리와 명수의 줄거리는 명수가 담임을 찾아와 상담을 요청할 때 한번 교차한다. 그러나 이 상담은 실패로 끝난다. 두개의 줄거리는 위에서 보면 교차하지만 옆으로 서서 보면 따로 떨어진 상이한 두 평면의 직선들처럼 각자의 길을 간다. 이 소설은 조작된 사건으로 강병식을 비롯한 다섯명의 교사가 구속되고 명수가 훔친 총의 노리쇠뭉치를 돌려주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끝난다. 암울한 시대의 암울한 기록일 수 밖에 없는 이런 결말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들의 총』은 김병용의 첫 장평이다. 이제 필력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이 작가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법은 우리에게 논쟁거리를 제공하지만 그런 문제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이 서평의 범위를 벗어나는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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