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4 | [문화비평]
진정판 페미니즘과 미숙한 여성관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여 성 문 학 연 구 모 임
(2004-02-03 14:46:47)
우리시대의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의 하나는 여성의 ‘존재’에 대한 재인식, 즉 페미님즘 일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방면에 걸쳐 여성에 대한 관심은 급격히 증가하고, 문학에 있어서도 페미니즘은 마치 ‘유행’처럼 문단을 휩쓸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페미니즘이 하나의 조류라면 그것은 독자적 특성으로 설명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의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논자마다 상당한 편차를 가지고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정의는 ‘억압된 여성의 현실을 인식하고, 고발한’ 소설이라는 차원에서 일치하고 있다. 여성이 억압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땅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여성을 페미니스트라고 부를수 있는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억압된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느냐가 아닐까?
최근 서점가에서 베스트 셀러가 되어 그야말로 잘나가는(?) 소설인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양귀자)을 읽으며 페미니즘문학이란 과연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떠올리게 된다. 페미니즘이 남성에 의한 여성의 억압을 고발한 것이라고 정의할 때 이 소성 『나는 소망한다...』는 페미니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작품사이에 삽입된 여성의 전화의 상담내용(매맞는 아내, 무능한 남편, 또는 언어적 폭력)이나, 주인공 강민주의 어린시절 삽화, 그리고 백승하의 고백 등은 전제적 가부장 사회속에서의 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는 소망한다...』가 페미니즘을 표방한 소실이기에는 몇가지 논리상의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나는 소망한다...』에서 드러나는 근본적인 오류는 철저한 남/녀 이분법적 시각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여성해방이라는 목적을 전제로 하는 작품의 논리적 구도를 왜곡시키고, 문제적 현실을 개인화 한다. 주인공 강민주는 끊임없이 여성과 남성을 분리한다. 그녀는 현실세계의 여성억압을 해소할 대안으로 여성중심사회를 소망한다. 남자는 ?性에 가까운 존재로, 여성은 성스러운 모서의 주체자로 인식하고, 이제 여성이 남성들만이 독점했던 권력을 되찾아 새로이 여성지배의 사회를 세우려고 한다. 강민주의 논리는 결국 새로운 지배구조를 건설하고자 하는 것인데, 과연 이 새체제속에서 인류는 동등하게 행복 해질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지배라는 것은 힘의 불균형에서 생기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힘이 약한 쪽, 지배당하는 쪽에 불평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ㅏ. 또 인류의 밤인 여성들 사이도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 질 것인가? 아닐 것이다. 여성들 내부에서도 강자와약자, 부자와 빈자사이의 갈등들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결국 여성해방, 더나아가 인간해방을 소망하는 페미니즘을 오도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두 번째는 강민주와 백승하의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놀리적 모순이다. 강민주는 백승하를 납치한다. 그는 인기 절정의 영화배우이고 소문난 애처가로서 뭇 여성들의 우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강민주의 제 1의 공격대상이 되는 논리는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남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자체를 은폐하면서, 이미 남성이라는 사실 자체로 그 폭력에 가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의 논리에 따르면 직접적인 폭력은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반항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는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게 하고, 여성에게 주어진 가혹한 운명이 단지 남자를 잘못 택했기 때문이라는 환상을 갖게 한다. 결국 백승하라는 인간을 굴복, 변화시키고 그에 대해서 여성이 갖고 있는 환상을 깨버릴 수만 있다면, 남성에 대한 복수와 여성의 자각이라는 이중의 효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중심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선각자의 운명으로 태어난 신의 대리인 강민주도 백승하의 부드러움 앞에 어쩔 수 없이 변화되어 가는 모습은 그녀가 깨고자 했던 남성에 대한 여성의 ‘미련’(?)이 타당한 것임을 역으로 입중해주는 결과를 낳고 있다.
세 번째는 인물의 형상화에 있어서 발견되는 오류이다. 페미니즘 문학은 목적문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저한 현실성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현식성을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개연성이다. 목적을 위한 현실성을 이야기 할 때 이 개연성은 전형의 문제로 확장된다. 여성해방의 문제를 이야기하기에는 강민주라는 인물은 전형성을 얻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강민주를 여성지배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선각자로, 신의 대리인의로 묘사하고 있다. 백지수표를 끊을 수 있는 富와 그녀의 지적 수준, 그리고 관계짓기를 거부하는 생활양식은 이미 인간적인 차원을 벗어나고 있다. 강민주에게 부여된 신성(?)은 그녀와 황남기의 주종관계 속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보여지는 강민주의 인간혐오(어머니를 제외한)는 이러한 신성의 결과로 읽힌다. 여성의 삶은 인간의 삶에 대한 보편적 이해만으로는 부족한 특수성과 차이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층위에 서기를 거부하고, 관계들 속에서 발생하는 고뇌를 모르는 강민주가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대표하여 남성을 징벌하고, 그것을 통해 여성을 일깨운다는 구도는 궁극적으로 인간해방이 되어야 하는 진정한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볼 때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맹목적인 사랑으로 그녀의 노예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은 황남기에 의한 강민주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은 이러한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논리박약에도 불구하고 『나는 소망한다...』는 ‘한국 페미니즘 문학의 금지된 문을 연 소설’로 신문, 라디오 등 언론매체에 소개되고, 유행에 뒤떨어지기를 싫어하는 현대인의 속성과 맞물려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우리시대에 페미니즘이 유행이라면 이 소설은 그에 편승한 상업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작품성에 관계없이 『나는 소망한다...』는 이미 많은 독자들에게 페미니즘 이란 이름으로 읽혀지고, 감수성이 예민한 일부 여성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작가의 미숙한 여성관은 진정한 페미니즘을 왜곡시킴으로써 우리사회 보통남성들의 페미니즘에 대한 알레르기성 거부감(!)을 정당화하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 도 있지 않을까?
작품의 사회적 파급력과 작가의 소명의식으로부터 문학이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