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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4 | [문화저널]
흰죽 사람 개 핥은 듯
김 두 경 / 서에가․편집위원 (2004-02-03 14:47:22)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잘 포장된 칫솔 하나만 사더라도 칫솔 30개는 담음직한 비닐봉지에 넣어주고 또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고 돌아와 곧바로 비닐봉투와 원래 칫솔 포장을 뜯어 쓰레기 통에 버린다. 포장이 튼튼한 라면 한 개, 과자 한봉지라도 습관적으로 비닐봉투에 넣어주기는 마찬가지다. 또한 웬만한 과자 봉지를 보다라도 먹어보지 않고는 못견딜만큼 먹음직 스럽고 온갖 품위와 자존심을 다 세워줄 듯이 현란한 포장으로 유혹한ㄷ. 어머니가 만들어 준 음식보다는 맛동산 먹고 즐거운 파티가 당연한 것으로, 세맛살과 햄 치즈가 품위있는 가정의 술안주로 최고인것처럼 최면 당한다. 이제 서너살난 아이들도 선물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현란한 포장ㅇ르 해야한다. 부모가 사준 양말 한 켤레도 원래는 예쁜 포장위에 또다시 포장지로 싸고 예쁜 끈을 꽃이나 리본을 만들어 붙여야 부모의 정성과 사랑이 증폭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TV에서 광고하지 않은 시장물건은 이미 물건이 아니다. 물건은 될지언정 창피한 물건이 된다. 그 뿐이던가 찰랑한 생머리는 머리가 아니니 스트레이트 파마라도 해야하고 최소한 드라이라도 해야한다. 무스와 스프레이로 자존심을 세우고 속눈썹과 눈텡이 그림자 주기로 서양스러움과 음스러움에 악센트를 준다. 윗도리는 입고 아랫도리는 안입는 포장법으로 내용물에 대한 최대한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사랑도 이별도 돈과말로써 포장해야하고 슬픔조차도 돈과 눈물로 함께 포장해야 한다. 석사 박사 교수 예술가 사업가 정치가 대통령 국회의원 장 사장.....삶이 온통 포장되어 있고 나아가서는 인간 전체가 커다랗게 또다시 포장되어있다. 이렇게 포장되어서 왜곡되는 삶에 대한 인식에 눈뜨기 시작한 사춘기 시절 나를 가장 외롭히던 옛말씀이 있으니 “흰 죽사발 개 핥은 것 같다”는 말씀이다. 지금이야 쌀로 만 쑨 흰죽이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께서 입맛을 잃으셨을 때나 쑤어드리던 귀한 음식이었다. 할머니께서 흰죽을 드실때 옆에 쪼그리고 앉아 목욕침을 삼키고 있으면 할머니께서 간장을 찍어 넣어주시던 흰죽은 삼킬 것도 없이 침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흰죽이 담긴 사발이니 사람이 오죽 깨끗이 긁어 먹었으리요마는 그 사발을 다시 개가 핥아 먹었으니 오죽하겠는가. 설거지가 필요없을 정도로 깨끗하지만 그렇다고 그 그릇이 정말 깨끗하던가. 마음속에는 온갖 사악한 잡념들이 드글거리는데 사람들은 말했다. 착하게 생겼다고, 착한 것이 무엇인지 개념이 서지 않는 나는 내 소심함을 착함으로 오해하는 어른들에게 미안하였고 내 자신의 일치하지 않는 안팎에 괴로워했다. 보름이 넘도록 세수도 하지 않았다. 몇 달씩 목욕은 물론 옷도 갈아입지 않았다. 흰죽사발 개 핥은 것 같지 않으려고 칫솔을 싸고 있는 포장지와 비닐봉투, 현란하게 부스럭거리는 과자봉지는 과자와 칫솔이라는 내면이 우리에게 주는 삶보다도 포장이 우리에게 주는 죽음이 더욱 깊다. 쪼들쪼들 볶은 머리 긴 속눈썹, 시퍼렇게 멍든 눈, 금딱지 시계, 다이아몬드 반지, 미끈하게 드러낸다리, 군림하는 권력, 우러르는 명예, 안락한 돈 이러한 것들이 주는 육신의 삶 보다는 이러한 것으로 인하여 죽는 영혼의 길이가 더욱 깊다. 아버지께서 호령하진다 “흰죽 사발 개 핥은 것 같구나.”어디를 불러 보아도 좋지 않은 것이 없는 세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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