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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4 | [서평]
내가 만난 백성사랑의 정신 소설 『일지매』
최 정 주 / 소설가 (2004-02-03 14:49:48)
소설 『일지매』는 내게 있어서는 어차피 돌연변이같은 작품이다. 작가의 길로 들어 선 이후 끊임없이 역사문제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는 했지만, 내가 역사라는 이름이 붙은 소설을 쓰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과거의 역사보다는 오히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역사에서 벗어날수가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육십년대 후반부터 구십년대 초반까지 내가 살아온 현대사는 내게 있어서는 언제나 자욱한 안개같은 것이었다. 따라서 내 작품에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안개는 내 십대와 이십대와 삼십대의 초상화라고 보아도 되겠다. 안개는 암울한 세상의 모습이었고, 그 세상을 살아가는 민초들의 절망적인 몸부림으로 언제나 내게 와 닿았다. 안개속에서 나는 가끔 내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햇살이 유난히도 청명하던 초여름 어느날 삼선개헌을 반대한다고 농성을 벌이던 내 얼굴을 들여다 보고는 했다. 그때부터 나는 혹시 일지매를 꿈 꾸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지매』는 역사소설이다. 따라서 주인공은 일지매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일지매는 우리의 역사책에서는 발견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민초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살아온 전설속의 인물이다. 일지매는 백성들의 우상이었고 희망이었다. 내가 일지매를 처음 만난 것은 어린시절 할머니가 들러주시던 옛날 이야기 속에서였다. 부자며 악독한 벼슬아치들을 털어 힘없고 가난한 사람드를 도와주는 일지매의 이야기는 아무리 여러번 들어도 실증이 나지 않았고, 나이가 늘어가면서 세상돌아가는 꼴을 보면서는 지금 이 시대야 말로 일지매가 나타나야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종종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내 관심은 여전히 안개같은 현대사였다. 참교육하다가 쫓겨난 교사며 민주화투쟁하다가 고문당하는 얘기며 한일간의 갈등이며 라면 한 개 값을 더 받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노동자 들의 얘기가 나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팔십년대 초반 허균 이라는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광주민주화항쟁 얘기가 암호처럼 소문으로 떠돌던 시절이었다. 남쪽에서 부어오는 바람결에는 분명히 피냄새가 풍기는데도 텔레비젼에서는 여전히 사랑타령의 노래가 판을 쳤으며 신문이란 신문은 모두 시침을 뚝따고 있던 시절이었다. 세상은 검은 및깔이었다. 무고한 시민들이 계엄군의 총칼에 무더기로 죽어가도 누구 하나 나서서 항변조차 못하던 공포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국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광주얘기가 암호처럼 떠돌기 시작하면서 나는 심한 무기력중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놈의 세상에 글을 쓴들 뭣하랴?" 자포자기가 나를옭아맸으며, 교단 위에서 아이들을 향해웃을 수가 없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눈동자를 보면서도 웃을 수 없는 내가 괴로웠다. 아이들 앞에서 아이를 닮은 웃음을 웃을 수 없는 선생님은 선생님 자격이없다는 것이 그때의 내 생각이었다. 결국 교당을 떠났다. 그무렵부터 과거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선실록을 구입해서 읽었다. 제일 먼저 만난것은 [연산군 일기]를 읽으면서 나는 조선시대최고의폭군이라는 연산군 시대조차도 백성들의 삶은 오히려 애가 살고 있는팔십년대의 삶보다는 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연산군일기를 읽고 난 다음에는 광해조일기를 읽었다. 광해 역시 쫓겨 난 임금이었는데, 실록이아니라 일기를 먼저 찾아 읽은내마음 속에는 그 두 임금의어떤 점이결국은 비참한 회추를 가져오게 되었는가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차 있었다고 보아도 되겠다. 광해군일기에서 나는 허균을만났다. 그의 개혁정신을 만났으며 백성사랑의 정신도 만났다. 광해군 일기를 두어번 읽고 났을때, 나는 허균이 홍길동전을 썼듯이, 홍길동의 정신을 가진 인물을 등장시킨 소설을 한편 쓰고 싶은 욕망이 생겨났다. 부정부패와 부익부 빈익빈의 극치와 기득권자들 의한 세상말아 먹기가 백성들의 삶에 멍에를 지우는 오늘이야말로참으로 의적정신을 필요하지 않은가하는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러자 떠로은 것이 의적 일지매였다. 조선새다 최고의 풍은아 허균과 일지매를 접목시키면 무언가 작품이될 수 있을것 같았다. 틈틈이 자료를 취재하고 실록을 읽고 이야기의 얼개를 짜나갔다.그러면서도 팔십년도의 대부분은 내 작가적 관심은 내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쪽에 쏠려 있었다. 팔십년대의 이야기이면서도 그것은 어차피 우화형식의 얘기 일 수 밖에 없었다. 시대를 상징하는 ㅇ화형식의 소설은 독자를 피곤하게 할 뿐이었다. 독자를 고문하는 소설이 아닌, 독자가 신명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한 편 쓰자는 욕구가구십년대에 들어서면서 내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거즌 십여년 동안을 내 머리속에서 풀 삭아있던 광해군 시대의 허균과 일지매의이야기를 정말혼신을 다해 엮으내기 시작했다. 그것이 구십 이년 삼월이었고, 밤마다 허균이며 일지매가 내 꿈 속을 찾아왔다. 어떤 작품이 그렇지 않을까마는 소설[일지매] 만큼 내 혼신의 힘을 쏟아부은 작품도없다. 정말 신명나게 썼다. 우스운 얘기지만 소설[일지매]를 탈고 하고 나서 꼬박 한달간을 거지반 이십여년 동안 앓지 않던 감기몸살을 다 앓았다. 육신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정신은즐거웠다. 그만큼최선을다했다는 나름대로의 위안도있었다. 더욱 즐거운 것은 소설[일지매]가 세상에 나오고 나서 일주일 쯤 후부터 오기 시작한 독자들의 전화였다. 재미있게 읽었다는 독자도있었고, 왜 허균을 죽였느냐고 항의를 하는 독자도있었다. 작가인들 어찌 허균을 죽이고 싶었겠는가. 허균을 끝까지살려가지고 그의개혁정신이 실현되고 백성사랑의정신이 꽃이 피어정말 백성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그런 얘기로 꾸미고 싶지않았겠는가. 그러나어파피 우리의역사에서 개형이 성공한 일은 없었지 않은가. 그것이실패할 때 마다 백성들은 다시 한번 허무주의에 빠져들고, 그래서 일지매같은 의적들도필요한 것이아니겠는가. 정치허무주의, 경제허무주의, 사랑허무주의가 판을 치는 요즘 사람들에게 내소설[일지매]가작은 위안거리라도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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