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4 | [저널초점]
재산공개 그리고 4.19
윤 덕 향/ 발행인
(2004-02-03 14:51:23)
최근 문민정부의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국회의원과 고위당직자가, 중앙정부의 장간이 재산을 공개하고 그에 따라 야당의 국회의원도 재산을 공개하였다. 뿐만아니라 고위 공직자의 재산도 뒤따라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윗물을 맑게 하여 신한국을 건설하겠다는 굳은 의지에 때늦은 감이 없지않으나 국민화합이라는 차원에서, 군사정권의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힘찬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마냥 박수만 보내고 있을 수 없음은 뒤틀리고 꼬인 심보 때문만이 아니다. 공개된 재산에 대한 검증이 언론의 추적과 보도를 통해서만 문제가 있는 것으로 지적된 인물들이 걸러지고 잘 정비되고 풍부한 정보를 장악하여 국가 권력을 좌지우지하던 안전기획부나 서민의 꼬흘리개 용돈같은 수입에도 착실하게 세금을 물리던 국세청이 구경만 하고 있는 것이 찜찜한것만은 아니다. 그같은 재산을 모으는 과정에서의 부정과 부패가, 부동산 투기가, 공직자의 반윤리성이 비위에 거슬리는 것만이 아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손바닥으로 불을 감싸려는 듯 유들거리는 얼굴로 정직한 척 하는 위선과 부정직이 역겨운 것이다. 또집권여당에서 흘러나오는 사! ! ! ! ! 전 시나리오설 따위의 논의가 한심한 것이다.
줄이고 줄여서 몇억, 몇십억, 몇백억이라는 재산을 모으는 과정보다는 그같은 재산을 떳떳한 듯 밝히고 양심가인 듯하는 부정직함에 침을 뱉는 것이다. 돈을 모으기 이 하여 그간 저질렀던 이런저런 부정, 권력남용, 그리고 집없는 서민의 보박한 꿈을 담보로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지도층의 부도덕은 당연하게 자행긴 시대의 산물이라 치부하여 두고싶다. 그리고 그동안 자신들의 권력과 금력을 기반으로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으시대던 치졸함도 바탕없는 졸부들의 장난으로 봉차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어떤 변명으로도 감쌀 수없는 부정직만은 용서할 수도, 용서해서도 안될 것이다. 많은 악의 근원은 부정직함에 있는 것이며 집단의 붕괴는 일부 집단의 부정, 부패, 무능보다는 부정직함에 근원하는 것이다. 그럼 점에서 비합법, 반합법적인 방법을 동원항 치부한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같은 행위흫 기만하고 스스로 정직한 척 거짓을 행하는 것이 가증스러운 것이다.
4월 ! 산수유 노란 꽃이 흐드러지고 개나리, 목련의 내음속에 벚꽃의 화려한 잔치가 벌어지는 봄 4월이면 독재와 불의에 항거한 4.19의거가 생각난다. 3.15부정선거에서부터 비롯된 그날의 함성은 5.16군사쿠데타로 땅속깊이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는 달력의 한구석에 4.19기념일이라고 쓰여져있을 뿐이다. 아니 학교에서 발행한 달력에는 그나마도 표시되지 않아서 잊게하려는 속마음이 드러나기도 한다. 5.16군사쿠데타로 빚어진 4.19의 퇴색화와 의미 격하는 처음 혁명으로까지 승화되었던 4.19의 의미를 단순한 의거나 운동으로 가치 평가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같은 가치 평가와 더불어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던 얼도 땅속깊이 묻히고 말았다.
4.19세대로 일컬어지는, 당시 혈기가 방장하고 정의감에 불타던 청년들은 이제 50대에 접어들어 우리 사회 각부분에서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아니 충추적인 위치보다 한단 더 높은 이 나라 각부분의 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부정을 배격하고 정의와 진리의 종소리를 높이 울리자고 외치던 그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돌아볼 일이다. 그들이 지도적 위치를 차지함에 따라 우리 사회가 정하되고 정의와 진리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가 되었는가? 아니면 적어도 그런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는가? 군사 쿠데타에 의하여 단절되었을지라도 그 얼가 혼이 살아남아 이 사회의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가? 그날 손을 잡고 소리높여 외치다가 총탄에 쓰러져간 동지들이 차마 감지 못한 눈을 편히 감을 수 있게 되었는가? 결단코 아니다.
경제규모가 커진 탓으로 상호 비교가 어렵기는 하지만 정도에서나 규모에서 결코 부정과 부패의 양상이 그당시보다 덜하지 않다. 어쩌면 몇배 더한 부정과 부패가 판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당시는 들어내놓고 잘사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모두가 못사는 판에 몇 몇 잘사는 사람들이 유별나게 잘사는 티를 내어 가난한 이들의 오장을 긁는 일은 흔치않았다. 요즘처럼 드러내놓고 내돈 내가 쓰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뿌리없는 얘기는 들리지않았다. 뒷문으로 돈을 받더라도 부끄러운 줄은 알았으며 땅투기로 없는 사람의 살 자리를 빼앗는 일도 없었다. 정치가 어지럽고, 경제가 어려워 구호물자를 먹고 입으며 살았어도 사회 각부분마다 얼마간의 문제가 있기는 했으나 지금처럼 손댈 수 없을 정도로 곪지는 않은 사회였다. 그럼에도 선거에 관권이 동원되고 금권이 난무한다하여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으며 일어섰던 당시의 열혈 청년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나라의 지도층에 있는 그 날의 주역들은 자신 앞에, 그리고 역사앞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가?
이번 재산 공개에 4.19의 주역들은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가? 소리높혀, 주먹을 불끈쥐고 불의에 저항하던 그들은 부정직과 부도덕의 행이에서 얼마나 초연할 수 있었는가 알고 싶다. 부정과 불의에 항거하던 옛날을 훈장처럼 코에 걸고 오늘 온갖 부정 부패의 주역으로 자라지 않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단순한 호기심에서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하여. 오늘 부정직과 부도덕을 비난하던 무리가 내일 부정, 부패, 탈세, 탈법의 주역이 되지않기 이해서는 지금이라도 4.19의 참된 정신을 되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부정직과 부도덕에 따르는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일깨우고,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하는 4.19가 되도록 이 4월, 자유 정의 진리의 종을 난타하고 싶다. 방방곡곡 산천을 물들이는 봄풀들의 화사한 내음이 썩은 날들을 지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