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5 | [저널초점]
무엇을 위한 개발인가
윤덕향/발행인
(2004-02-03 15:01:31)
눈발처럼 떨어져내린 벚꽃을 대신하여 라일락의 짙은 내음이 바람에 뒤섞인 5월이다.5월에는 아직 역사적 청산을 기다린채 장미처럼 붉게 자리잡은 5월광주와 5.16군사쿠데타가 남아있다. 재산공개로 비롯된 문민정부의 개혁의지는 온 국민의 성원속에서 과연 ‘명예혁명’으로 귀결될 수 있을 것인지 불투명하기만 하다. 금융실명제 실시와 토지 공개념 도입, 그리고 전교조 해직교사 문제 등이 남아있는 지금 문민정부의 의지를 가름하고 무조건 박수갈채를 보내기에는 타성에 젖은 의혹이 앙금처럼 남아있다. 그런 판에 5월 광주와 5.16 군사쿠테타의 역사적 평가를 말하는 것은 지나친 성급함으로 비난받을 일이다. 이런 때면 있는 분들은 재산공개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일반 서민들은 불안정한 개혁에 반쯤은 기대를 걸며 가족나들이가 제격이다. 바람도 화창한 봄날이니 말이다. 전주시민들에게 주어진 많지 않은 휴식공간중 동물원과 체육공원, 그리고 조경단을 포함하는 지역이 있다. 개발을 좋아하는 정책당국에 의하여 땅을 밟을 수 있는 곳이 좁아들고는 있지만 아직은 그런대로 가족 나들이로 찾을 만한 곳이다. 알맞은 산이 있고 잔디가 있고 놀이기구도 잇고 온갖 동물도 있어 더 욕심낼 것이 없음직하다. 다만 한가지 물이 빠졌다. 종아리를 걷어붙이고 송사리를 잡는 개구장이들이 아쉬울 뿐이다. 하긴 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화동에서 흘러내리는 작은 개울과 전북의대쪽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있지만 차라리 없는 것만 못한 물이다. 회색을 넘어 전혀 바닥을 볼 수 없는 진회색 물은 죽음의 색깔이다. 파란 물이끼가 자라는 물이 아니다. 송사리가 뛰놀기는커녕 어린아이가 들어갔다가는 회색으로 물들까 두려운 물이다. 그래도 연화동쪽 개천은 바닥이 보이고 물이끼가 자라며 목숨 질긴 고기가 노닐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개울은 아예 자살하려는 물고기에게 안성맞춤이다. 그 물을 이용하여 논농사를 짓는 곳도 있다. 생각은 여기까지이고 그 다음은 차마 끔찍하여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다. 안보면 모르는 법이니 차라리 회색 개울물이 흘러드는 곳부터 호반촌까지 그 좋아하는 시멘트로 덮개를 씌우면 후련하겠다. 그같은 복개공사도 업적중의 하나일 것이니 높으신 정책 당국자들께서 검토해 봄직하지않을까?
생물학적 산소요구량이 얼마이고 어쩌고 하는 어려운 말은 모르겠으되 물에서 나는 냄새만으로도 이 물이 물이라고 불릴 수 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왜 이토록 물이 죽었는지 뒤늦게 야단법석을 부리자는 말이 아니다. 시민의 체육과 건강한 가족 나들이를 위하여 마련된 곳에 죽음이 흐르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좀 더 살펴보면 물만 죽은 것이 아니다. 넘쳐나는 쓰레기로 나무도 풀도 신음하고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을만한 곳마다 발에 채이는 것이 깡통이고 비닐, 종이 부스러기이다. 자연보호를 외치는 현수막이 쓰레기와 어울리는 현장이다. 낮은 시민의식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만한 곳에 방치되듯 자리한 쓰레기통은 누구을 의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이용할 수 있는 쓰레기통의 주변은 넘쳐나는 쓰레기로 작은 난지도를 이룬다.
지방자치제의 실시로, 국민의 기본권 신장으로 쓰레기 문제가 보통 심각한 실정이 아니라 한다. 너나없이 말로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외쳐대는 판국이다. 이런 판국에 가족 나들이를 위한 지역의 쓰레기와 환경오염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유치원부터 자연보호를 배우는 우리의 2세들에게 어려운 산소요구량을 들먹이고 ,3D 현상을 변명으로 들먹일 것인가? 10년, 20년 뒤에도 당당하게 시멘트로 먹칠한 땅과 진회색 물이 흐르는 하천, 쓰레기로 뒤덮인 들을 개발의 결실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예로 들은 조경단 지역만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이곳저곳 모두가 같은 꼴이다. 어쩌면 대학교가 있는 주변이라서 형편이 좀 나은 편일런지도 모른다. 어깨에 띠를 두르고 사진을 찍는 것으로 자연이 보호되지는 않는다. 그럴 힘으로 한줌의 휴지라도 줍는 것이 보다 실질적이다. 날을 정하여 방송, 신문에서 왕왕거릴 일이 아니다. 그럴 돈이 있으면 회색으로 죽은 물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처리시설을 갖출 일이다. 유치원에서, 국민학교에서 꼬흘리개들에게 어려운 자연보호를 가르칠 일이 아니다. 그런 것쯤은 선생님이, 부모가, 이웃 아저씨, 아줌마가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낮은 시민의식을 공자가 주문왕 들먹이듯 내세울 일이 아니다. 시민이 손쉽고 즐겁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갖추고 난 다음 문왕을 내세우든 요순을 내세우든 할 일이다. 낙후된 지역개발이 최우선 과제인 것처럼 몰아만 갈 일이 아니다. 개발에 앞서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담배 피우는 시간만이라도 생각해볼 일이다. 환경의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할 일이다. 소박하게 생각하여 개발이 공동체의 복리와 보다 질좋은 삶을 위한 것이라면 공장을 세우고 시멘트로 이런저런 건물을 만드는 것 따위만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필요충분조건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낙후된 지역에 자리한 탓으로 환경영향평가조차 제대로 받지못한채 파괴되는 우리 지역의 자연은 불쌍하다. 그리고 그보다 더 불쌍한 것은 곳곳에서 자행되는 환경의 파괴를 보며 자라는 우리의 아이들이다. 그들은 개발의 허울아래 파괴된 자연과 쓰레기로 뒤덮힌 산과 들을 유산처럼 받을 것이니 말이다. 이제 봄나들이를 가려던 발길을 어디 시장판이나 백화점으로 돌려야 될까보다. 부끄러운 부모의 참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