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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5 | [문화시평]
각 극단의 교류 작업, 그 조화로 보여준 전북연극의 가능성 -전주 시립극단의 「코카서스의 동그라미 재판」-
김정수/ 연극인.편집위원 (2004-02-03 15:15:04)
한국에서의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열화와 같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불행한 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금지 작가로부터 1987년 10월에서야 연구서적의 출판이 허용되었고 작품공연은 1988년 들어서야 가능했으니, 이미 현대의 고전작가 대열로 밀려나 세계적으로 그를 극복할 만한 역량이나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 이후라는 점만 생각해봐도 그에 집중된 관심은 철지난 바닷가 같은 을씨년스러움을 풍겼다. 그렇다고 브레히트가 평가절하되어야 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또한 자신의 작품이 변증법적으로 소비되고 환원되어 이용되기를 바랐던 그의 바람에 부합되는 생각도 아닐 것이다. 다만 그의 작품과 그것의 논의가 꼭 필요했던 시기에 그를 만날 수 없었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로 브레히트 연구는 이미 70년대부터 활성화되었고 80년대 독문학에서 활발히 다루어졌지만 정작 필요한 작품공연을 통한 수용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의 진면목을 이해한다는 것은 황당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7일부터 29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브레히트의 마지막 연출 작품으로 알려진 〈코카서스의 동그라미 재판〉이 제 24회 전주시립극단의 정기공연으로 무대에 올랐다. 원작에서 150여명의 역할을 50여명이 나누어 맡을 정도의 대작인 규모에 동,서양을 초월한 소재 선택, 그리고 브레히트 서사극의 전형들이 풍부히 채택되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관심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이 대작을 소화하기 위해 전북에서 활동하는 「창작극회」「황토」「디딤예술단」이 시립극단의 이름으로 4개극단 연합작업을 해냈다는 점에서도 비상한 주목을 끌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원작은 중국 소설 〈회란기(灰蘭記)〉와 성경의 〈솔로몬의 재판(열왕기Ⅰ,3,16~28)〉의 모티브를 차용하고 있다. 총 6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 1막에서 계곡 소유권을 둘러싼 두 집단 농장의 분쟁과 그 조정 과정에서 초청된 가수의 연극을 보는 장면을 다루며 2막 부터가 그 가수에 의해 전달되는 이야기로 서사극의 한 전형인 극중극(劇中極) 형태를 갖추고 있다. 극중극의 내용은 나름대로 하나의 완성된 줄거리를 갖고 있는데 막과 막사이, 혹은 극중에서도 가수의 해설과 노래가 끼어들어 1막에서 제시된 이야기의 의도를 상기시키며 ‘소외효과’를 채찍질한다. 또한 5막에서 등장하는 재판관 ‘아쯔닥’의 이야기는 2,3,4막의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것으로 6막에서의 재판을 위한 보충적인 이야기로 독립되어 있으며 브레히트가 말한 바 ‘각 장의 각 장을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라는 이론을 새삼 확인 시켜주는 구성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호중씨는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연출력으로 개성이 다른 가극단의 배우들을 조화롭게 가다듬어 대작에 값하는 무대를 꾸며 내었다. 특히 국악기를 사용한 현장 음악과 고루 활용된 무대 미술은 무대를 폭넓게 떠받쳐 주었다. 그러나 큰 작품만큼이나 아쉬움도 있었다. 공연시간 단축을 위해서였던지 삭제된 1막 때문에 극중극 형태가 불완전하게 진행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 첫째이다. 공연된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브레히트 서사극의 진수를 느껴보고자 한 관객의 욕구에는 못 미쳤기 때문이다. 1막의 생략은 가수 (해설자)의 입지를 위축시켜 극중 개입을 한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거의 전통적인 사실주의 극과 큰 차별성을 부각시켜주지 못했다. 또 한가지 점은, 조금 더 욕심을 내는 측면이기는 하지만, 현장에 참여한 관객들의 사회적 인식을 중시한 브레히트의 의도를 충분히 부각시키기 위해서 보다 과감한 작품해석과 실험정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더욱 생략된 무대와 의상, 해설자의 적극적인 역할 개입과 일인 다역에 있어 역할 전환을 공개적으로 처리하고 막과 막의 무대 전환도 노출시켰다면 오히려 브레히트가 원하던 연기에 더 근접해 갈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 작품의 평가를 떠나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내 유수의 4개 극단이 연합무대를 꾸몄다는 것이 이번 공연에서 가장 높이 평가해야 할 수확이었다. 단순한 합동공연 차원을 떠나 각 극단 고유의 색깔들이 어우러져 조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 반가운 점이면서, 더불어 선의의 경쟁을 통한 연기와 스텝분야의 발전을 꾀하는데 발판을 확고히 다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부터 추진돼온 극단끼리의 교류는 이 〈코카서스의 동그라미 재판〉을 통해 완벽하게 자리잡게 되었고 더욱이 「시립극단」의 위상 강화를 도모하는 방향으로 정립되는 바람직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섣부른 전망이 될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전북연극의 발전을 위해서, 그리고 갈수록 어려워지리라 예상되는 연출과 연기자의 확보와 재교육을 위해서, 기존 극단들이 고수하고 있는 동인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극단 운영체계로 각 극단이 변모해야 한다는 것은 필연적이라 생각된다. 역량있는 배우나 연기자를 한 극단에 매어두는 일은 서로를 위해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또한 양질의 연극을 원하는 관객의 욕구에 부응하지 못하여 외면당하는 불행도 상정해 볼 수 있다. 여기에서 우려되는 것은 동인체제로서의 극단이 갖고 있는 장점의 파괴이다. 그러나 각 극단이 나름대로의 특색을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범위내에서 보다 활발하고 의욕적인 교류가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그 교류의 가교 역할을 「시립극단」이 충실히 해내준다면 전북의 연극은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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