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5 | [서평]
삶의 소리, 죽음의 소리
희곡 『너덜강 돌 무덤』
박환용/ 희곡작가
(2004-02-03 15:18:46)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가 용이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난감하기까지 하던 소재를 얻고 작품을 만든 과정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우는 그이사의 가지 고백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이다.
「너덜강 돌무덤(전5막)」을 선보인 것은 1983년, 몇 번의 낙방 끝에 공보 희극이 당선된 덕분이었지만 그 이전의 방황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문학을 짝사랑하면서 그 언저리를 맴돌던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열 살 무렵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국민학교 학생이 박용수의 연재소설 「계룡산」같은 것을 보았으니 지금 생각해도 위험했다.
문학소년이 문학청년이 되고 대학의 국어국문과까지 다니게 되었지만 정작 문학으로부터 소외된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던 기간이 십수년간이었다.
나의 얼굴과 냄새와 소리를 가질 수 없었던 탓도 있었겠지만 시인사의 그늘과 굴절 속에서 기를 손상시켜가며 암중모색하던 골방이 더 다정하였다.
그 시절 시와 소설, 아동문학이나 평론 그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문학은 늘 나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지만 유독 희곡만은 껄끄러운 거리감을 지닌채 저만큼 서있었다. 내게 일찍이 셰익스피어나 몰리에르 교과서적 고전 속에서 서구적 제스추어의 과장된 몸짓과 이국적 치장으로나 어렴풋 만져질 뿐 잘 포장된 외제물건 같은 것으로나 느껴졌던 것이었다. 지금은 좀 다르지만, 허다한 이 나라 연극의 그 어색한 서양 냄새는 나의 이런 선입견을 더욱 경직되게 몰고 갔었다.
우리 문학으로서의 희곡이 도대체 가능한 것인가, 그렇다면 그 모양과 빛깔은 어떤 것일 수 있는가를 조금은 외롭게 모색해 보기도 하고 민요와 판소리, 무속 등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우리가 우리의 독자적인 역사를 가진 민족인 한, 시대에 울려질 이야기 역시 뿌리 없는 외래의 것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삶을 담은 것이어야 하리라는 확신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광조의 충성과 함께 무너진 가슴을 불고 적상산 안국사(安國寺)에서 피난하던 그 여름 난세를 피해 방관자가 되었지만 상심은 깊었던가, 극락전 꽃무늬 문살을 쳐다보아도 눈물. 그 때의 칼자국 생각하며 수국꽃은 법당 앞에 서럽다 고개 수이고 있고......
주지스님이 출사한 절에서 자칭 주지 대리를 보면서, 달밤에는 절 앞 개울위에 놓여진 삐걱거리는 나무다리 위에 걸터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가을이 되어 학교에 돌아오니 「불가항력」이라는 이름의 몰역사성이 지배하는 역사를 우회하는 발걸음들을 보며 「서모의 죽음」을 떠올렸다. 그 발걸음들 속에 묻혀 교문 쪽으로 걷는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예전에 들었던 소리가 아닌 그런 소리, 시나위 가락 같기도 하고, 상여소리 같기도 하고, 가사도 없이 구음(口音)으로만 들리기도 하였다. 공중에 떠돌던 소리들, 무수하게 널려있으나 주목되지 않았던 우리의 先代, 그 아프게 앓았던 한스러운 사연의 편린들이 빛을 보게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그렇지, 해원(解寃)을 해달라고 그러는구나. 얼마나 원통할까.
서투르더라도 정성들여 제사를 지내듯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다 쓴 뒤에 붙이는 작가도 있다지만 나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정해 놓고 쓴다. 제목이 정해지지 않으면 붓이 전혀 나가지 않는다.
어느날 우연히 낡은 신문 쪼가리에 눈이 가지 천한 신분이나 패역자 혹은 동구 안에 못 들어올 사연을 지닌 시신을 돌이 많이 흩어져 덮인 비탈에 묻었다는 구절이 눈에 띄었고, 순간 「너덜강 돌무덤」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제목이 떠오르면서 줄거리가 거의 다 되어 완성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개화세대, 식민지세대, 해방후세대 등 삼대의 짓밟힌 민중의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작품이 발표된 후, ㅈ교육대학 학생들이 공연하려고 작품 선정을 했는데 학교측에서 말렸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유인즉 작품 가운데 나오는 ‘의병장’이 내란음모 사건의 주범으로 재판을 받은 김대중 선생을 비유한 것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실소를 하고 말았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의병장 : 지금은 천지가 암흑이다.
네놈 홀로 살아 남을 수는 없어
그보다는 나는 ‘덕보’라는 인물에게 애정을 기울였고 그의 아내 ‘월례’에 대하여 마음아파했다.
덕보 : 나, 나는.......나라를.........구, 구하러........논, 논사고...........밭 밭사면..........무, 무엇하겠는
가 나, 나라가.......무, 무, 무 너 지 는 데.............그러니........나, 나는........ 나, 나, 나라 를 건지러 ........ 구, 구하러........
(마치 어른이 시켜 하는 어린아이처럼 서툴고 더딘 목소리, 덕보가 선 앞으로 어디로인가 몰려가는 어수선한 발자국 소리.
보국 안민! 광제 창생! 외치는 소리도)
그 후 박병도 연출로 전국연극제까지 나갔지만, 무대화되어 육성으로 하는 대사들을 들으면서 나는 또 다른 느낌을 가졌다. 내게서 나간 ‘소리’가 극장을 울리고 한바퀴 돌아서 내게로 다시 돌아와 나를 흔드는 것을 느꼈고, 그것은 작품을 쓰고 나서의 기쁨과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었다.
소리들의 잔치요, 빛의 이면에서 반란을 꿈꾸던 그 연극에서 연기자들이나 관객들도 함께 놀 수 있었던 것은 혼례식, 씨름, 무당굿, 풍물, 민요 등 볼거리, 들을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힘세고 우직하기만 하던 장사 덕보, 월례, 부네 등 극중 인물들의 역할을 하던 연기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지등(紙燈), 관솔불들로 어우러진 한마당, 하늘이 쏟아질 것처럼 떨어지는 불똥과 사람, 그림자로 어지럽던 그 무대가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