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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5 | [문화저널]
‘맹물에 자갯돌 삶은 맛’ ‘방귀에 초친 맛’ 싱겁기는 고드름 장아찌 맛이다
김두경/서예가.편집위원 (2004-02-03 15:19:57)
꽃바람이 불로 꽃비도 내리는 이즈음 따뜻한 햇살에 온 몸이 나른하고 눈꺼풀이 무겁습니다. 냉이, 달래, 두릅 머위의 쌉싸한 맛에 입맛 돋우었다고는 하지만 왠지 배는 고프면서도 밥은 많이 먹히지 않고 먹고 나면 뭔가 허전한 것이 요새 입맛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부들은 반찬 걱정을 유난히 많이 하지만 특별히 입맛 당기는 별식 찾기가 만만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조미료라는 이름의 화공약품들이 맛을 도와준다는 조미료 차원을 넘어서 맛을 주도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세상에 어떤 음식도 조미료를 넣는 그 순간 독특한 맛이 조미료 맛으로 포장되어 독특한 맛보다는 조미료 맛으로 포장된 맛을 먼저 느낀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새 조미료 맛에 길들여져 그 낱낱의 독특한 맛을 즐길 줄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물질 만능 풍요의 세상에 살다보니 아무날 아무때라도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 즉시 먹을 수 있는 세상인지라 날마다 뭐 맛있는 것 없을까 둘러보며 찾아가서 먹게되니 입맛 없다고 해서 무슨 독특한 음식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 옛날같이 명절이나 제삿날이 되어야 황우도강탕이라도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시절이라야 쌀밥에 고깃국이라면 씹지 않아도 녹아드는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옛 말씀에 ‘맹물에 자갯돌 삶은 맛’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맹물에 자갯돌 삶으면 무슨 맛이 있겠습니까. 싱겁고 맛없는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겠지만 우리는 맛없는 맛의 맛을 알 때 모든 것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느 시인의 싯 구절이 떠오릅니다. 전복을 따는 해녀들도 가장 좋은 전복은 따지 않고 님이 오시는 날을 위해 남기듯 시의 전복도 가장 좋은 것은 남긴다는 말씀 말입니다. 날마다 식탁 위에 넘치는 영양으로 혀끝에 감각적으로 달라 붇는 음식으로 익숙해지는 우리 아이들, 살다가 삶의 입맛을 잃었을 때 무엇이 약이 될 수 있을까요. 어느 한구석은 비워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고 좋은 것 최고 좋은 맛에 대한 희망을 남겨두는 것 또한 삶의 지혜인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없이 베푸는 풍요보다는 먼저 알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절제 없는 풍요를 누린다는 것은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여차하면 ‘방귀에 초친맛’이 되기 쉬운 것 아니겠습니까. 맛없는 맛의 참 맛을 음미 할 수 있을 때 진정한 맛을 알았다 할 것이요 이러한 맛을 아는 삶은 결코 방귀에 초친 맛이 될 수도, 싱겁기가 고드름 장아찌 맛이 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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