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3.5 | [교사일기]
풋내기 영양사 1년
권현주/무주 부남국민학교 영양사 (2004-02-03 15:22:45)
봄이 올 것같이 않더니 오랜만에 4월의 따스한 봄볕이 창틈을 비집고 나의 머리에 내리 쬐고 있다. 한 장의 발령장과 4년동안 배운 전공 지식만을 가지고 생전 처음 이곳에 온 때도 4월이었다. 알려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 터득해야 하는 업무에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마음의 여유도 없이 1년이 흘러버렸다. 1년전 어머니와 함께 자취 도구를 챙겨 이곳에 왔을 때 바닷바람을 맞으며 살아온 내가 산중에서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 걱정하시며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셔E고, 곱게 키워온 막내딸이 걱정스러우셨던지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하셨다. 무슨 오기인지 난 어머니의 성화를 뒤로한 채 무작정 이곳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집으로의 해방감도 자기며, 책도 읽고, 항상 나를 기죽게 했던 영어공부도 열심히 해서 보란 듯이 실력을 쌓아 이곳을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그러나 1년동안 딴곳에 신경 쓸 틈도 없이 오직 나는 어린이들이 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연구하고 어린이들과 사귀며 현재 나의 위치를 얼마나 더 전문화 시키느냐하는 것에만 신경이 가있었다. 항상 시간을 만들어 요리책을 뒤적였고 서점에 가면 음식에 관한 책만 사다 보았다. 신문이나 잡지책에선 새로운 요리법이 보였다하면 여지없이 가위질을 했고, 여의치 않으면 커다란 신문을 가지고 복사기 앞에서 복사를 해 스크랩을 해 두었다. 또한 140여 아이들의 이름을 모두 알고 그들과 사귀었다. 1년 180일의 급식일에 되도록 다양한 요리, 어린이들의 식성에 맞는 조리법을 만들기위한 생각과 맛있게 먹는 어린이들의 모습과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을 기대하며 일주일의 식단을 짜놓고 또 다음 일주일의 식단을 고민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노력에는 아랑곳 없이 특히 저학년 어린이들은 식판위의 음식에 젓가락질만 해대며 도대체 먹지를 않는 것이었다. 자신이 전에 먹어보지 않았거나 싫어하는 음식엔 전혀 손도 대지 않았다. 이곳의 어린이들은 많은 식품과 접할 기회가 적어 거부감을 일으키는 식품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강압적으로 음식물을 남기지 말 것을 요구했고, 정 못먹겠거든 맛이라도 보라고 했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싫어하는 것은 먹질 않았다. 이러다보니 점심 시간에 마음 약한 아이들은 울고 더러는 토하기도 했다. 정말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이 오고, 나의 직업에 대한 회의가 왔다. 체계적으로 식품에 대한 인식을 확실하게 세워주고 그 음식물의 영양소가 자신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함을 인식시켜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게 배당된 교육 시간은 점심시간뿐이었다. 그래서 선생님들에게 양해를 구해 시간을 얻는 수밖에 없었다. 저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1시간을 얻어 식사중의 기본적인 자세 및 예의 그리고 5대 영양소에 대해 알려 주었다. 그랬더니 만족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다음식사 시간부터는 제법 효과가 나타났다. 정말 아이들의 인식과 태도를 바꿔주는 데는 꾸준한 인내력과 노력이 필요했다. 한 가지를 알려주면, 그런점은 고치는데 다른 문제점이 또 발생하고 정말로 힘들고 불만족과 부족함을 느껴야만 했다. 또한 음식물로 충분히 맛을 낼 수가 없었다. 이곳은 벽지형 급식 학교라 전액 국고 보조로 급식비가 지급되는데 학생수가 적다 보니 어린이 수에 비해 식품비와 운영비가 많이 부족하다. 여유 없는 생활에 학부모들도 급식 봉사외엔 학교에 도움이 되어 주질 않아 어려움이 많다. 먼저 학부모들을 어린이 급식에 관심을 갖게 하는게 필요했다. 급식 봉사 당번날 학교에 나오면 평소 그집 어린이에게 느꼈던 나의 의견을 얘기해 주고 집에서도 노력을 해달라고 부탁을 드리면 농사일에 바빠 아이들에게 제대로 신경써 줄 수도 없고 양질의 식품은 정말 줄 수 없었노라고 어머니들은 말씀한다. 1년이 지난 지금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한 덕분에 내가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나름대로 찾아냈다. 어린이 급식 지도 카드를 만들어 수업은 할 수 없지만 개별상담을 해서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어린이들의 잘못된 식사습관을 고치고 어머니들에게도 어린이의 문제점 및 그 가정식생활의 문제점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고쳐보도록 할 것이다. 또한 나의 편협된 의견에 치우친 학교 급식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 전학년에서 2-3명의 대표를 뽑아 급식 평가 모임을 갖고 어린이들의 의견을 받어 나의 잘못된 점도 시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가끔 난 생각한다. 10년후 건강한 몸 건전한 정신을 가진 훌륭한 성년이 된 아이들의 모습을....... 난 우리학교 전교생의 엄마다. 그래서 140여명 이곳 어린이들을 알기 위해 급식 봉사나오는 어머니들과 이야기하고 항상 어린이들과 대화하려 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 어린이들을 위해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 지도 항상 느끼고 있다. 나의 경험이 쌓이다 보면 나의 일을 좀 더 체계화시키고, 할 일은 많은데 아직 확실히 자리를 잡지 못한 학교급식의 교육적인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를 남기리란 소망도 가져본다. 1년간 나의 생활이 풋내기의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지만 쉼없는 노력을 한다면 많은 시간이 흐른 뒤 진짜 전문인이 되어 순수한 어린이들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리라.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