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5 | [서평]
객관성 돋보이는 역사학자의 충실한 기록
『역사앞에서』 (1993. 김성칠. 창작과비평사)
문화저널(2004-02-03 15:24:11)
역사를 만드는 것은 민중이지만 역사를 쓰는 것은 개인의 몫인 것 같다. 기록의 의무와 책임이 모든 개인에게 주저질 수도 있지만 대게가 약간의 특출한 능력을 지닌 개인에게 주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앞에서』의 저자 김성칠님은 (호칭을 붙여주는 것이 고인에 대한 예의인 것 같아) 특출한 능력을 지니신 분이다.
『역사앞에서』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한 역사학자의 6.25 일기이다. 개인의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로 되어 있는 일기가 대중에게 공개된다는 것은 꺼려지는 일이기는 하지만 일기의 내용에 따라서 예외의 경우도 있다. 『난중일기』와『안네의 일기』가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난중일기』,『안네의 일기』『역사앞에서』는 모두 보통 일기지만 읽는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좋은 사료로써 쓰이기도 한다. 또한 세편 모두가 임진왜란,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흔히들 하는 말로 전쟁은 읽을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는 말을 입증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이 발생하지 않아야 되고,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며 얼마나 소비적인 일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김성칠님은 경북영천에서 1913년에 태어나 51년 괴한의 저격으로 작고하기 전까지 짧은 생애에서도 많은 일을 하였다. 그분의 『조선역사』(1946)는 당시로서는 아직 한자와 한문용어가 많이 쓰이던 상황임에도 한글위주로 평이하고 순탄한 문장을 사용하여 우리의 역사를 많은 이들로 하여금 읽게 하였다. 또한 펄벅의 『대지』, 박지원의 『열하일기』등을 번역하였다. 이 책은 1945년부터 46년까지의 일기와 1950년 1월의 일기, 그리고 1950년 6월25일부터 1951년 4월8일까지의 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 시기는 현대사의 근원이 되는 시기로서 그 당시에 쓰여진 모든 것이 역사의 귀중한 자료로써 쓰일 수 있는데, 더구나 이 일기는 사학자가 개인적인 일은 물론이요 그 당시의 사회전반에 대한 것을 사실대로 묘사 또는 평가하여 사실대로 묘사 또는 평가하여 더욱 귀중한 자료로써 사용될 수 있다.
일기의 전반적인 내용과 책의 후반부에 나와있는 여러 사람들의 개인적인 회고에서 짐작컨데, 그분은 조용하고 과묵하며 온유한 성격을 지녔던 것 같다. 또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자식에 대한 사랑도 남달리 깊었던 것 같다.
그분이 이 일기를 쓸 때 한국전쟁이라는 한 역사적 사건을 자기가 놓여진 상황에서 충실히 기록해야했다는 역사학자로서의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보통의 일기보다는 충실하게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50년 7월26일 자신이 살고 있던 동네의 인민위원회선거에 대한 자세한 묘사를 보면서 조선인민공화국에서의 선거의 문제점과 장점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전쟁 때 남의 호박밭에 들어가서 호박 따는 이를 뭐라고 할 수 없었던 상황, 자신도 문간방에 살던 학생들이 남겨놓고 간 보리쌀을 염치불구하고 먹은 이야기, 도토리 따다가 껍질을 벗기고 물에 담가서 오랫동안 유독성분을 우려낸 후 말려서 가루로 빻아 떡도 해먹고 묵도 만들어 먹은 이야기 등에서는 그 당시 삶의 궁핍함과 어려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해방 후 집값이 10만원 했는데 전쟁이 나자 사과 한 개에 700원 하였다는 일기에서는 전쟁이 가져온 인플레현상의 심각성과 그 당시의 경제생활을 엿 볼 수 있었다.
그밖에 그는 사회전반적인 일을 자신이 아는 한 꼼꼼하게 적을려고 애썼다. 그의 일기에도 그의 그런 의도가 적혀있다.
‘신문기사의 허위보도라고 하면 반드시 어떠한 사실을 날조한 경우에만 한하지 않고 어떠한 사건의 연속 중에서 일부분을 고의로 묵살해버린다거나 그와 반대로 강조해서 표현하는 것은 독자의 판단을 어긋나게 함에 있어서 허위보도와 조금도 다를 것 없을 것이다. 일기를 쓰는것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나는 늘 가지게 된다. 거짓말을 쓰는 일기는 일기가 아닐 터이니 아예 말할 것도 없거니와 . .’ 즉 일기를 쓰는 데에 있어서도 사건의 일부분만을 드러내지 않고 배경과 진행과정을 적어줌으로 해서 사실과는 동떨어진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하였다. 이것은 인문과학(사회학과도 포함된 넓은 의미)을 하는 학자의 길로서도 바람직한 모습일 것이다.
‘. . 그 호소의 내용은 세상에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으니 다른 것은 모르거니와 신문지상의 전하는 바에 의하면, 대통령 이승만 박사를 비롯하여 이남의 정계 요인 아홉 사람을 제외하고 통일하자는 것이라니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대통령 이하 아홉 사람의 정치인에게 큰 오류가 있을는지도 모르나, 그러나 그것은 별개의 문제다. 이남에서 통일을 제안하면서 김일성 수상이하 이북의 정계 요인들을 모두 제외하고 그러자면, 글세 이북에선 이를 들을 법한 일인가. 그러나 이북의 소위 조국통일 호소에 대한 이남의 처사도 온당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 .’
그의 1950년 6월25일 일기다.
그는 이렇듯 북과 남 양쪽에 객관적이며 민족의 이익을 생각하려고 노력하였던 것 같다. 호칭에서도 북은 조선인민공화국, 남은 대한민국이라고 쓰면서 양쪽정부의 하는 일을 못마땅하여 했다. 예를 들면 조선인민공화국의 한글전용을 칭찬하면서 한문에서 나온 문자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도리어 새 문자를 만들어서 쓰는 공화국의 어문정책을 정확하게 비판하였다.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그분의 새해 맹세를 보면서 다시금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말로나 글로나 수다를 떨지 말일, 겸손하고 너그러우며 제 잘한 일을 입밖에 내거나 붓 끝에 올리지 말일, 남의 잘못과 학설의 그릇됨을 탓하지 말고 제 바른 행동과 제 깊은 공부로써 이를 휩싸버릴 것, 약속을 삼가고 일단 승낙한 일은 성실히 이를 이행할 일, 쓰기보다 읽기에, 읽기보다 생각하기에 , 사소한 일이라도 먼 앞날을 헤아리고 인생의 깊은 뜻을 생각해서 말하고 행할 일, 날마다 무엇이든 읽고 생각하고 그 결과를 일기로 적어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