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5 | [서평]
삼십대 여성들의 직설적 심리묘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1993. 공지영. 문예마당)
정애자 / 전북의대 교수
(2004-02-03 15:25:33)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혜완이 영선의 장례를 치른 후 그전에 영선과의 대화중에서 기억해 낸 말이고, 원시 불교의 경전에서 나온 글이고, 또한 비구니 스님의 방 앞에 쓰여졌던 글이기도 하다. 누가 세상을 모두 잊고 그렇게 갈 수 있을것인가?
공지영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으면서 늘 느끼는 여성 문제란 무엇일까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여성학’을 듣고, 지적이며, 여성의 위치에 대하여 고민하고, 글쓰는 여자는 모두 가정을 지탱할 힘이 없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똑똑한(?) 여자는 이혼을 해야만 할 만큼 남성들은 그렇게도 여성을 이해 못 하는 족속들인가.
여기에 나오는 혜완, 영선, 경혜 등 세 주인공은 대학시절 같은 과와 대학 방송국에서 함께 활동했던 친구들이다. 졸업 후 이들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 인생을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영선이가 자살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자살 소동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것은 그들의 결혼생활이 모두 행복하지 않은데다, 남편들도 한결같이 바람직한 인간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선 혜란의 남편을 보자, 대학원에 다니고 시간 강사를 하고 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그는 아이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그것이 부인이 가정을 지키지 않은 대가로 생각하고 구타하기까지 이른다. 가정에서 구타를 하고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한 그는 새사람이 되어 가사일도 돌보고 애기도 본다. 얼마나 환상적인가.
구타하는 남편은 성격 특성이 그렇다는게 보편적인 연구 결과이다. 상황 때문에 구타하는 남성이 있다면, 그 남자는 부인을 잘못 얻었기 때문이다.
경혜 남편을 보자. 그는 의사이고 해외 여행에 정부를 동반한다. 현재도 미국에 출장을 가있는데 왜 가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의사란 그런 직업이 아니다.
영선의 남편은 부인의 덕에 감독이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알콜중독, 우울증이 되게한 장본인은 외도를 하고, 그 정부 앞에서 부인을 혼낸다.
왜 그렇게도 모든 남성은 부인에게 나쁜가. 그리고 그 부인들은 그 남자들을 나쁘게 만드는데 일익을 하였는가. 우리의 모든 여성들의 적은 꼭 남성이여야 하는가. 이 소설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는 없는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부정할 수 없이 존재하는 그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이용하느냐는 것이 더 큰 과제일 것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심리 묘사에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이십대에서 삼십대 초반의 여성들의 변화는 그 시대 상황과 함께 변화하고 있다. 남성들이 근거 없이 미신적인 성격 묘사를 여성에 대해서 마구 해대는 소설에서 느끼는 모멸감이 이 소설에서는 훨씬 적었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남성들은 남성들이 읽으면 너무나 허구적일 것 같다. 그렇게도 여성에게 나쁜 남자들 중에서 이혼녀를 사랑하여 기다리는 독자의 위치에 있는 선우는 누구인가? 여성의 해방의 깃대를 든 백마탄 기사인가 말이다. 작가의 말대로.
그리고 또 가끔 등장하는 정신과 의사는 진정한 친구 하나만 있으면 해결되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과 의사는 전문가이지 친구일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문제 제기 외에도 영선이 아들을 진정한 남성으로 키우는데 대한, 또 혜완이 아들에 대해서, 남성이란 갈등이 전혀 묘사되어 있지 않고 오직 한 풀이의 대상으로서 남성만이 묘사되어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 외에 칭찬해 주고 싶은 면도 많았다. 삼십대 초반의 여성들이라서 중후한 멋이 없는 대신에 신선하고 직설적이어서 시원하였다. 또한 미약하긴 하지만 단지 현재의 문제점만 가지고 해결하려 하고 그 문제점만 확대시키면 기존의 여성 소설 이렇게 봐도 된다면 비해서 어린 시절의 문제점이 과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문제가 어른이 되어서도 반복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은 세대를 두고 윤회한다는 아주 평범하면서도 무서운 사실을 어느 정도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소설에서 그 이상으로 그 연쇄의 고리를 끊어야 하고,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 해결책은 독자에게 맡기고 있지만.
셋째, 우리들의 어머니는 딸에게는 나처럼 되지 말라고 하고, 그 아들들은 그렇게도 당신 아들을 떠 받았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비난은 마땅히 비난하면서도 여성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남성과는 다르게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본능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그녀는 자신이 여성임을 자랑스럽게 아는 여성이라는 점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