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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5 | [문화저널]
공소를 찾아서 -교우촌의 취락 특성-
최진성/남원여고 교사 (2004-02-03 15:27:19)
전라도에 분포하는 교우촌들은 조선시대 후기에 박해라는 사회적 환경에 의해 형성되었다. 이 교우촌들을 대상으로 그 취락 특성을 밝혔다. 먼저 교우촌들의 형성과정은 천주교의 종교경관(교우촌, 공소, 성당)들이 형성되는 시기별로 구분하여 지형과의 관련성을 밝혔다. 각 시기는 교우촌 형성 이전기(1795년), 교우촌 및 공소 형성기(1795-1895), 성당 건축기(1895-1963)등으로 구분하였다. 교우촌들의 입지 특징은 하천자수 분석, 지명의 분석, 십승지 입지 모형과 비교 분석하였다. 그리고 교우촌과 공소의 취락형태 및 기능 분석을 하여 교우촌 신자들의 생활 모습을 밝혔다.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전라도 교우촌들의 형성과정은 종교경관의 형성시기에 따라 지형 분류형이 다르게 다타난다. 먼저 교우촌 형성 이전기(1784-1791년)에는 전파자들의 연고지를 중심으로 천주교가 전파되었기 때문에 뚜렷한 지형분류형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교우촌 및 공소 형성기(1791-1985년)에는 박해 때문에 은신처가 필요하였으므로 평야와 산잔분지가 제외되고, 변경지역(frontier region)인 산지에 신자들이 이동하면서 교우촌들이 형성 되었다. 특히 공소가 있는 교우촌들을 중심으로 천주교가 전파 및 보존되었다. 성당 건축기(1895-1963년) 이후에는 평지나 산간분지의 읍이나 도시에 성당이 건립되면서 이를 중심으로 천주교가 전파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지의 교우촌들은 신자들의 집소도 계속 없어지거나 규모가 작아지고 있다. 둘째, 전라도 교우촌들은 피란지적 입지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교우촌 및 공소 형성기에 형성된 교우촌들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신자들의 주거지는 저치수의 하천 상류였으며, 지형 분류에 의하면 ‘산지 입지형’이다. 평지나 산간분지 및 고원에는 거의 분포하지 않았다. 지명의 명명에서도 산지를 기반으로 한 유형이 대부분이다. 또 교우촌의 입지는 양택으로는 불리하나, 피란지로는 유리하였다. 셋째, 교우촌의 취락형태는 공소를 중심으로 교우촌들이 이중적 집촌 형태를 나타낸다. 즉 교우촌 내부에서 공소를 중심으로 1차적 집촌이, 그리고 교우촌들끼리는 공소가 있는 교우촌들을 중심으로 2차적 집촌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공소가 종교적 정권의 지표(landmarks)로서 성소의 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공소의 이러한 기능을 위해 그 가옥 구조는 넓고 크게 개축되었다. 그리고 공소가옥 천장의 ‘+’ 모양의 상량은 박해를 피해 살면서 종교의식을 했던 장소를 나타내주고 있다. 넷째, 교우촌들은 신앙을 보존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었다. 또한 박해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을 완화시켜주는 기능을 하였다. 그리고 경제적 활동을 제공함으로써 교우촌 형성 및 유지에 공헌하였다. 다섯째, 교우촌들의 주요 생계유지 수단은 담배농사와 옹기점 운영이었다. 담배농사는 옹기점에 비해 수입이 나았기 때문에 입지가 자유로운 반면, 옹기점은 소비시장과 적색토양의 입지조건 때문에 도시 주변의 적색토가 있는 곳에 입지 하였다. 이런 경제활동을 통한 생활은 전라도 (frontier region) 개척이라는 지리적 의미가 있다. 여섯째, 천주교 문화는 전통문화와 함께 남아 있다. 풍수지리사상의 영향이 음택에 영향을 주고 있으나 성당 입지에는 거의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 또 유교분회의 흔적이 공소와 성당의 초기 가옥구조에 나타나고 있는데, 남녀 구별을 위한 방의 구조에서 나타난다. 이와 같은 결론과 더불어 전라도에 많이 분포하는 특수취락들과 생활모습을 비교 분석하며, 유교 및 전통문화의 관계에 대한 연구, 그리고 교우촌들의 취락구조에 대한 사례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본다. 또한 교우촌의 경제활동은 분지 개발의 연구자료를 제공할 것이므로 이에 대한 연구도 있을 것으로 아울러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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