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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6 | [저널초점]
진실을 밝히는 용기가 먼저 필요하다
윤덕향/발행인 (2004-02-03 15:32:49)
아침저녁 사정의 칼날에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언론매체를 통하여 들을 때마다 처음 느끼던 후련함과 통쾌함이 은근한 분노로 바뀌는 날들이다. 그 분노의 바탕에는 드러나지 않은 부정과 부패가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큰 고기는 유유자적할지도 모른다는 몸에 배인 의심이 자리한다. 그같은 의혹은 문민정부의 의지에 대한 의심이 아니라 기왕에 구축된 막강한 기득권 세력의 수면하 움직임이 자칫 문민정무의 의지를 압도할지도 모른다는데 기인한다. 더구나 최근 이런저런 경로로 전해지는 기득권 세력들의 발언은 그같은 의혹을 증폭시키는데 부족함이 없다. 역사란 ‘일반적으로 과거에 이러난 일, 또는 그 기록, 서술’이라는 것이 우리나라 국어 사전의 1차적 의미이다. 2차적으로는 ‘인류가 과거에 행하여온 일, 또는 그 기록과 서술’로 정의 될 수 있다. 역사에는 분명 2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역사를 독일어로 번역하였을 때 도출되는 ‘일어난 일, 사건’이며 다른 하나는 영어적인 의미인 ‘기록’인 것이다. 일어난 일이나 사건은 주관적인 것이 아니며 누구도 어찔할 수 없는 객관적인 것이다. 이에 비하여 기록이란 주관적인 것이며 기록을 하는 사람에 의하여 얼마든지 다르게 기록될 수 있다. 동학농민전쟁 백주년을 맞으며 문화저널에 연재되고 있는 박맹수 선생의 자료를 보면 동학데 대한 매우 상반되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인식하는 동학과는 달리 동학도를 ‘동비’(동학의 비적)으로 기록하거나 폭도로 취급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만약 이같은 기록들만 남아있을 경우 오늘 우리가 인식하는 동학의 개념과 의미를 파악해 낼 수가 없는 것이 역사의 맹점이다. 역사는 극단적으로 말하여 기록된 것만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 점에서 기록되지 않는 것, 잘못된 기록에 의하여 사실의 왜곡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이런 저런 비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사교과서에는 ‘환단고기’나 ‘산해경’등에 기초한 역사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그같은 기록에 기초한 역사는 야사라 하여 정통적인 역사와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광주 민주화운동 또는 광주사태로 인식되는 사건에 대한 후세의 역사인식은 자칫 기득권 세력에 의한 기록이 ‘소위’ 정사로 인식되고 여타의 기록은 야사로 처리될 개연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12.12사태에서 비롯된 5월 광주에 대한 판정을 역사에 맡긴다 하더라도 바로 이런 점에서 그 진실이 역사기록으로 남을 수 있도록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말로 아무리 광주사태가 의거였고 민주화를 위한 조치였다고 떠들어도 정부측 공식문서에 그 진실이 기록되지 않는 한 역사상 광주의 의미는 한낱 폭도들의 난동에 불과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역사에 맡기는 것도 좋고 민족화합의 차원에서 모든 것을 대승적으로 용서하고 화합하는 것도 좋으나 그에 앞서 역사의 판단을 위한 진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기록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 길만이 먼 훗날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두 없어진 다음 광주사태 100주년 또는 200주년 되는 때 보다 명확한 역사적 진실에 입각하여 의미를 부여하고 역사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길이다. 역사에 대한 2차적 의미에 ‘인류사회가 독자의 운동법칙에 따라 발전하여 온 과정’이 있다. 최근 집권 여당의 대표가 역사발전을 소설의 기승전결에 따라 설명한 바가 있다. 그분의 궤변은 익히 알려져 역사발전에 소설의 수법을 도입한 것을 새삼 탓할 가치도 없으니 다만 역사에는 퇴행성 발전, 또는 역사의 흐름에 거스르는 행위도 있음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5.16이 역사적 필연에 의한 산물이라고 할지라도 쿠데타라는 여사발전에 반하거나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전근대적 행위의 단초였으며 그 이후 12.12에서 5.17로 이어지는 일련의 군사쿠데타는 5.16이라는 반역사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문민정부를 자처하는 지금의 집권세력이 쿠데타가 아니라 쿠데타적이라는 용어를 고집하여 12.12를 규정한 것도 의심스럽다. 사건의 의미에 대하여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를 수 있지만 쿠데타적이라는 표현의 뒤에는 ‘쿠데타적 혁명’도 있을 수 있으니 말이다. 역사의 심판은 매우 준엄하다. 그러나 역사의 심판은 진실이 제대로 전해졌을 때 그리고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있을 경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위 12.12가, 광주민주화운동이 쿠데타이든 쿠데타적이든 아니면 혁명이나 의거이든 진실의 구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역사발전을 거스른 것으로 역사의 준엄을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지금이라도 진실을 낱낱이 밝히는 용기뿐이다. 역사의 심판은 어물쩡한 말장난으로 끝나거나 호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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