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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6 | [새책 및 새비디오]
천구백 오십칠년에서 천구백구십이년까지 -시집「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을 묶고 나서
김영춘/시인 (2004-02-03 15:39:48)
이번 3월, 참으로 참혹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고, 더불어 다급하기조차한 마음으로 시집 한 권을 묶어 내었습니다. 저도 물론 첫 시집 내는 일이 첫 시집 가는 일과 비슷하다는 말씀을 선배들로부터 여러 번 듣기야 했었었지요. 하지만 그때의 내 기분이나 정서상태라고 하는 것들은 시집 처음내는 사람들이 갖는 그만 그만한 마음 말고도 사는 이릐 처참한, 그 무엇인가였습니다. 민주정부수립이 좌절되고난 이후의 세상이란 참으로 요지경이었어요. 물론 이 글을 쓰는 오늘도 그러하지만 말입니다. 개혁의 「개」자만 나와도 살갗에 소름이 돋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나서서 새 세상이 왔다고 개혁하자고들 외쳐대니 시끄럽고 미운 것은 그만두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 떠드는 소리에 넋이 달아나서 ‘참말로 그러는 갑다’하고 믿게 되어버리니 가습이 터지는 것이지요. 이제 아주 ‘숙청’은 당당한 역사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만 그게 얼마나 가겠어요 금년 말이나 내년 쯤엔 본색이 드러날 수 밖에요. 하여튼, 그 즈음 저는 줄곧 3.1운동이 왜놈들 총칼앞에 무너진 후의 1920년대의 사람살이이나 생각하면서 시집을 받아 들게 되었습니다. 마치 아버지 돌아가신지 1년도 안되어 결혼하는 그런 기분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저와 제 시집을 읽은 사람들의 가슴에 안기게 된 것이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라는 놈입니다. 이제 석달여쯤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들도 제법 안정이 되어가고 오히려 그렇다면 나는 무슨일을 하고 어떤 시들을 써야할까 까지 정돈되어가고 있습니다만 화장실 같은 곳에서 저의 시를 스스로 읽다보면 서글퍼지기는 아직도입니다. 저는 1957년생입니다. 1979년 박정희가 죽던 무렵에 대학에 들어가 문학에 뜻을 두고 전두환의 폭정속에서 문학도 하고 선생도 되었습니다. 1988년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어달리기를 하듯 국민을 속이며 정권을 바꿔치기 할 때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을 한 후 노태우 밑에서 아이들과 격리되었고 그리고 오늘입니다. 물론 57년부터 79년 사이의 세월은 할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을 탕진하고 집에서 책만 읽는 무능한 아버지와, 그 속에서 체통 잃지 않고 살림을 꾸리려 애간장이 녹아버린 어머니와 살며 좋은 대학가서 출세하고 싶었던 소년 시절이었습니다. 시집 이야기를 하다가 느닷없이 1957년부터 1992년까지의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 놓게 되었는데요. 그것은 다름아닌 제 시집에 대한 아니 문학에 대한 저 스스로의 평범한 각성 때문입니다. 전혀 그러 의도 없이 게으름을 부리는 중에도 가슴이 터지면 한편씩 10년 넘게 써온 이것들을 한테 모아놓고 읽다 보니 그것이 어느덧 제개인의 일상사나 소견을 넘어선 뼈아픈 그 시절 역사가 되어 있더란 말입니다. 사실 우리 어머니가 1919년 생이므로 「천구백십구년부터 천구백구십이년까지」로 확대했어야 옳으나 별것도 아닌 시집이야기를 하면서 좀 건방진 것 같아 제 지금까지의 생애로 제목을 잡았답니다. 하여튼 79년 무렵의 것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좋은 시쓰고 싶던 그런 모습이 보이고, 전두환 시절의 처음 선생이 되어서는 좋은 선생도 아닌 봉급생활자 소시민으로 굳어져가는 자신을 탄식하는 시가 보이고, 88년 등단직후에는 그래도 뭔가 알아가면서 희망을 움켜 쥐려는 몸부림이 보이고, 89년 학고에서 쫓겨나게 되는 시절부터는 아이들과 주변의 삶을 사회구조적인 모순에서 접근하며 싸워가는 그런 시들이 보이게 됩니다. 거기에다가 유년기와 소년기의 체험을 담은 가난에 얼룩진 어머니와 누님의 시편들이 덧붙여져 있는 셈이지요. 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해가는 것처럼 문제스럽고 볼상 사나운 것이 없는 법인데 스스로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시집을 또 스스로 이야기하느라 매우 쑥스러웠습니다. 다만 바램이 있다면, 아직 좋은 세상이 오려면 한참도 더 가야하는 이런 때의 내 시집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 하고 어루만지기보다는 쥐어뜯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첫시집 정리한 후 처음으로 쓴 시 한편 덧붙이면서 재미없는 글을 마칩니다. 다시 복사꽃 피고 저 언덕배기에 동네 어귀에 물 머금은 땅바닥 위로 꽃망울 맺혀 잊었던 복사꽃 다시 피겠네. 상처가 아물지 전에 뿌리를 박고 피고지는 것이 글쎄 꽃이런가 꽃그늘 번져가는 길목을 오가며 쓰러지고 일어선 동지들을 만나 나는 어떤 눈빛을 하고 새로운 일을 이야기 해야 할까 옛사람들 좋은 일 닥치면 하염없이 눈물로만 이어가던 사정이 직통으로 가슴을 꿰뚫어 복사꽃 준비하는 2월 말 일의 쨍쨍한 오전 해놓은 일이 턱없이 적은 모진 세상 언저리에 서서 다만 복사꽃 피어나려 하는데 무너진 가슴들이 어떻게 일어섯는가. 종일 새로워 정신 없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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