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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 [문화저널]
장인 기질과 예술 혼의 결합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 - 둘』을 보고나서
강석경 전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 3년 (2004-02-03 15:58:12)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은 모두 사서 보지는 않습니다. 어떤 책은 그저 그 책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에게 빌려서 읽으면 그만입니다. 후딱 읽고 돌려주면 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꼭 가지고 싶은 책이 아니면 책을 사는 일에 인색해지고 맙니다. 하지만 책을 사지 않음으로 해서 잃게되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디에선가 많이 들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구절은 『문화저널』의 한 구석에 실려있어, 볼 때마다 저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데라고는 한 군데도 없는 이 알찬 『문화저널』을 사서보는 경우보다 빌려보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문화저널』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표지에 어떤 할아버지가 두 개만 남아있는 치아를 살포시 드러내면서 웃고 계시는 1991년 11월호이었습니다. 그 때, 선배님의 책꽂이에 꽂혀 있는 겉표지가 허르스름한 책을 남몰래 살짝 빼서 조심스럽게 넘겨 보았습니다. 대충 훑어보면서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인상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다가, 그동안 빚 진 『문화저널』에 작은 보답이라도 할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펜을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문화저널이 기획하고 주관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 중에서 최근에 제가 참석한 것은 「전라도의 춤, 전라도의 가락-둘」입니다. 첫 번째 공연을 보지 못해 섭섭했는데 두 번째 공연을 통해서 잊혀저 가는 우리고장의 춤과 가락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것에 대해 우선 「문화저널」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 음악이 무속과 맺고 있는 관계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시나위는 심한 요성(搖聲)과 퇴성(退聲)을 사용하여 구슬프지만 유장한 느낌을 자아냈고, 이어 공연된 김광숙의 살풀이는 은은한 곡선미를 갖춘 한복에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며 연결되는 팔 동작과 고운 외씨버선 위에 사뿐이 얹어놓은 듯한 발동작을 통해서 그려내는 춤사위는 춤의 묘미를 한껏 더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본서사의 영산작법중에 나오는 바라춤이나 나비춤 등은 매우 장엄하고 우아하기 그지 없었고 불교 음악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락도 독특하였습니다. 특히나 일암 장상철 스님의 입소리 창은 비록 전문인이 아니었지만 그 소리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리민족의 예술혼이 우리생활의 구석구석에 아로새겨져서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뿌듯하게 확인 할 수 있었던 귀한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박병천님의 북춤과 김봉열 할아버지의 상쇠춤이었습니다. 두 분다 연세가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힘있게, 아니 신명나게 춤판을 이끄는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깨를 저절로 으쓱거리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박병천님의 북춤은 ‘한국남자도 저렇게 멋지게 춤을 출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해주었고, 김봉열 할아버지의 꽹과리 소리는 예전에 들어 보았던 꽹과리 소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맑고 깨끗하였습니다. 팔순이라는 고령을 무색하게 했던 그 분의 신명과 흥은 장인기질과 예술혼의 행복한 결합이 이루어낸 우리의 ‘멋’ 그 자체였다고 생각됩니다. 예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숨어 있는 문화를 찾아내고 그것을 기획으로 연결시키는 『문화저널』의 끈질긴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이제는 빌려 읽는 독자에게 사서 읽는 독자로의 변신을 꿈꾸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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