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7 | [서평]
한 시대를 감싸안고 변혁을 꿈꾸던 알튀세르
알튀세르 자서전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
(1993, 루이․알튀세르. 도서출판 돌베개)
지역사회연구모임
(2004-02-03 16:05:05)
최근들어 새삼스럽게 알튀세르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있다. 소련 및 동유럽 ‘현존사회주의’의 붕괴와 때맞추어 한국 사회에찾아온 이른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가 난해하기 짝이 없는 알튀세르를 무덤으로부터 불러낸 듯 하다.
알튀세르는 1918년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약혼자가 전쟁에 나가 죽게 되자, 당초에는 자기 동생과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그의 형과 결혼하게 되었다. 1940년 그는 2차 세계대전중 전쟁에 징집되어 5년동안 포로 생활을 보낸 후 1945년 프랑스의 특수대학인 윌름 고등사범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여 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1948년 고등사범의 철학과 지도강사로 임명되었으며 바로 그해에 프랑스 공산당에 입당하여 1980년까지 당을 떠나지 않은 충실한 공산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80년 그가 정신착란상태에 빠져 그의 아내이자 튀어난 활동가였던 그의 아내 엘렌느를 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즉각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리고 그가 젊은 시절부터 조울증에 시달리며 계속 정신분석을 받는 동시에 20여번이 엄게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81년 2월 그는 정신착란 상태의 면책권을 인정받고 면소판결을 받음으로써 즉 정신병자라고 진정됨으로써 정상인의 권리를 박탈당한 다음 기나긴 침묵속으로 빠져들었고 10여년이 지난 1990년10월 22일 심장수ㅚ약으로 사망하게 된다.
그는 그에게 강제된 그리고 죽음보다 더 절망적인 긴 침묵속에서 그의 자서전인 바로 이 책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를 집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알튀세르가 살아왔던 시대와 그가 가졌던 세계적인 철학자로서의 위치 그리고 프랑스의 열렬한 공산당원으로써 살아왔던 그의 삶으로 인해 독특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이책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알튀세는 더 이상 위대한 사상가도 또는 각관받는 마르크스주의 이론가도 그리고 철저한 공산당원도 아니다. 구조주의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주자로서 그리고 소련과 공산당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자로서 한시대를 감싸 안고 변혁을 꿈꾸고 번민하며 분노하는 지성은 이미 간 곳이 없다. 오히려 이 책에는 한없이 나약하고 평생을 끝없는 콤플렉스속에서 살아간 석학의 부끄러운 고백들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세를 전후하여 이미 첫 번째 우울증 증세를 경험하엿으며(그러나 그의 지사선정서 그는 굳이 이 사실을 고백하지 않는다. 이책의 편집자들에 의하면 이 자서전이 그가 살았던 객관적 사실과 몇가지 점에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책은 그자체로서 완결된 하나의 상징적 체계를 갖는 문학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결코 아름답지 못한 사랑과 참음으로 난해하고 복잡한 콤플렉스속에서 거듭되는 조울증으로 시달린다. 과연 이책은 바라보기에 따라서는 정신 분석학의 특히 그중에서도 외디푸스 콤픅렉스의 훌륭한 교재로서도 손색없다는 점에 동의할수 밖에 없다. 어찌보면 처연하기까지한 알튀세르의 그 끝없는 자신의 정신세계에 대한 독백은 독자들을 정신세계의 미로로 빠져 들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ꡒ예컨대 어머니와의 관계가 알튀세르의 삶을 결정지어 버렸다는 식의 관점에 의지해서 자서전을 읽어서는 안된다ꡓ고 하는 발리바르의 말처럼 알튀세르를 그렇게 놓아둘 수만은 없다. 적어도 알튀세르가 마르크스를 접했을 때ꡒ내가 마르크스와 만났을 때 나는 내 육체로 거기에 가담해했다.ꡓ는 말처럼 ꡒ수동적이고 사변적인 의식에 대해 활동적이고 부지런한 육체의 우위성을 인정하는 사상을 발견했으며 그런 관계를 유물론 그 자체로 생각ꡓ했으며 그것도 아마도 그의 삶을 진정 살아있게한 동력이었는지 도 모른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80년대 중반 이후 우리 사회의 폭발적인 민족민주운동의 열기가 90년대를 경과하면서 정치권력의 지속적인 공세에 밀리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세계사적 질서의 변화가 우리 운동의 조건을 강제하고 있을 때 알튀세르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되다. 동시대의 저명한 철학자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프랑스 공산당의 활동적인 당원으로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를 진단하고 그 위기속에서 마르크스주의를 전화시키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자적 태도의 전점으로 그는 비추어 졌다.
아마도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알튀세르의 복잡하고도 난해한 정신세계가 아니라 그의 이른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속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보여주었던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적 구성적 모순들’을 발견하고 마르크스주의를 전화시키고자 하는 그의 노력일 것이다.
몇 차례의 패배를 거치면서 우리에게는 극심한 좌절과 혼돈이 주어져 있다. 진정 우리 시대의 사상적 지표는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현상적이고도 지엽적인 몇가지 변화속에서 성급하게 마르크스주의의 종언을 고하고, 변혁에 대한 모든 가능성이 이미 가버렸다고 하는 이 각박하고도 천박한 오늘의 세태에 알튀세르를 비추어보다. 한사회의 객관적 구조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알튀세르의 연구자적 자세가 이제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최소한의 방어가 최선의 선택이 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속에서 그야말로 ‘살아남음’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약간의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알튀세가 말한다 그 ‘미래’를 찾아내는곳은 독자여러분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