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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7 | [교사일기]
우리들이 가고 싶은 길
이순선/고창 공음중학교 교사 (2004-02-03 16:09:34)
선생님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희망하는 것을 설문조사해 보면 대체로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아이들과 신나는 수업을 했으면, 교사의 자주성과 교직의 전문성을 시원하게 인정하면 어떨까? 교사도 숨통을 트고 싶다. 학교 운영은 민주적으로, 학교 행정은 관료성에서 탈피하고, 교사 처우도 개선하면 어떨까? 아마도 학생들을 향한 한줌의 열정이 있다면, 이 시대의 교육을 생각하는 교사라면 누구나 공통적인 대답일 것이다. 실제 나의 동료들만해도 수업방법과 학생들의 수업태도, 특성 등 아이들에 관한 의견을 나누는데 시간가는 지 모르게 즐거워하며, 교육 현장에 뿌리박힌 비민주, 비합리적인 문제를 서로 지적하고 개선하면서 고민한다. 때로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몇 밤을 지새가면서 … 그러나 하루하루 겪는 수업과 학교 행정 속에서 선생님들의 열정과 관심은 그야말로 무참히 깨져가고 짓밟히고 허물려 나가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 사회는 구석구석에서 고학력자를 요구하고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 고학력자가 되려면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어야 한다. 실제, 높은 점수는 중위권 학생을 기준으로 볼 때 70%는 단순 혹은 조금 변형된 지식의 암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미 우리는 입시 통과를 위한 지식 암기 위주의 공부가 학교 졸업 후 사회 생활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도움을 주었는지, 코피 터지며 공부했던 내용이 이 정도의 가치밖에 없었던 건지 큰 회의를 거듭했었다. 입시에 바친 땀에 비해 우리가 거둬들인 수확은 너무 보잘 것 겂었다. 또한 시대가 갈수록 골치 아픈 일, 스트레스 받는 일은 아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나타나 학생들의 스트레스인 시험, 그리고 이를 위한 단순 지식 쌓기는 어제 교실에서 푸대접을 너머 수용시키기 힘들 정도로 거부당하고 있다. 총명한 아이들은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며, 이를 지켜보는 교사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도 사슬처럼 옭아 맨 입시 중심의 교육 제도를 풀지 않고 학교 교육의 가장 큰 목표가 성적 신장이 되어 직원회의 때는 교사의 목을, 학급 조회 시간에는 학생들의 목을 조이고 있으니 학생과 교사는 어쩌란 것인가? 그 이유를 기성인들의 정치적 이기성과 이에 편승하여 무원칙한 이익을 챙겨 가는 사람 때문이라고 언제까지 탓만 하며 욕만 하고 기다릴 것인가? 현장 교사들은 안타깝고 재미없고 비참하고 급하다. 아이들은 수업 시간마다 말을 한다. “시험에서 해방되고 싶어요” 그래, 자식이 최고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관심 때문에 슬픈 시험,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자랑스러운 목소리와 행동마저도 가로막는 시험, 학교 오기 싫게 만든 시험으로부터 해방이겠지.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은 교과서 진도에서 해방되고 싶어요” 출제 빈도가 높은 내용은 의무감 때문에 반복하게 되고, 그러나 할 것이 많은데, 이야기 마당도 열고, 토론 수업도, 연극으로 해보는 수업도 하고, 하루는 야외로 나가 시도 짓고, 시낭송 테이프도 만들고 해 줄 이야기도 많은데, 진도는 끝내야 되는 실정이고, 나는 속으로 갑갑해 한다. 정상 수업 후에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보다는 선생님과 비디오도 한 편 보고, 고민도 나누고, 탁구도 피아노도 치고, 교실 환경도 다시 꾸며 보고, 그림도 그리고 아직은 미혼으로 자유로운 선생님 관사로 찾아가 밥도 같이 먹고, 긴 만남 깊은 친분을 갖고 싶은데, 아이들과 나는 많은 수업과 하루 일과에 시달려 일개 지식 전달자와 전수자에 머물고 만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교실에서 나오면 교무실이 또 하나 큰 산이 되어 선생님을 고민하게 하는 공간이다. 학교 운영이 믿기지 않지만 아직도 철저히 베어 있는 상명하복의 체제 속에 돌아간다. 교사의 의견 교장 선생님은 이미 짜여진 운영계획에 찬성하는 말만 선택적으로 받아 들이시며, 그래서 회의는 절차상 의미밖에 가지지 못한다. 이의 부당하고 비합리적인 점을 말하는 교사는 버릇없는 교사, 제거할 교사, 불이익을 주어서 해결해야 할 교사로 몰아 부치고, 찬성하는 말이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운영 계획의 20~30%에 불과한 긍정적면만 강조하고 주입하려는 실정이다. 10건의 운영 계획 중 5건은 모두 이런 식이다. 주임급 선생님들 조차 이런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이 더구나 여교사가 여성의 목소리가 아직도 터부시 되고, 한 차원 아래로 무시되는 껄렁한 태도나 언어적 폭력을 감당해야 되는 억울한 차별이 깔린 사회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크게 눈총받는 일이며, 우연히 학생들이 있는 경우라면 어린 아이들에게 모든 내용을 차분히 설명해 줄 수 없는 정황에서 스스로 더 답답하고 죄스럽고 비참하며 외롭다. 민주적인 의사 전달 통로와 방법이 필요 이상 억압되어 있는 곳이 교육 현장이며 타당한 의견이 권위 하나에 흔적없이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유난히 너그럽게 용서하는 곳이 교육 현장이다. 불필요한 기안으로 교사의 정신적, 육체적 노동력을 소모시키는 교육 행정의 관료성도 큰 문제점이다. 경우에 따라 결재를 미루거나, 도장을 찍어 주지 않아 교사를 귀찮고 힘들게 하는데 이용하고 있다. 요즘 사정 바람이 학교에서는 학부모와 교사간의 노물, 금품 수수 내용에 까지 불어, 소풍날 점심도시락도 교사 개인이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소도시 내지 시골 학교의 영우에 더 불어야 할 바람은 학교 내부 재정에 대한 바람일텐데, 그 바람은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무엇보다 가장 아프게 돌아 보아야 할 교육 현실은 역시 교육의 문제점을 말하는 교사를 소외시키고 축출해 버리는 점이다. 교무실 안에서 몇몇 주임급 선생님들을 통해, 육성회를 통해, 교육 관료 조직을 통해, 정권을 통해, 교육 관료 조직을 통해, 정권을 통해, 작게 크게, 알게, 모르게 선생님들은 희생당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주위 해직 선생님들을 볼 수 있다. 나는 그 선생님들의 꿋꿋함과 어찌보면 숭고하기까지 한 의식 세계에 감탄할 때가 있는데 고민과 고통의 질이나 양은 달라도 몇 년 안된 교직 생활 속에서 공유할 수 있는 점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이해하고 안아주고 싶은 동료애 탓이리라. 하루라도 빨리 교단에 같이 서시기를 바란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며, 첫발령을 받은 새내기 교사인 나는 그럴듯한 교사관을 가지고 싶어서 풋내나지만 한 편의 시를 써 본 적이 있다. 아마, 교육 제도니 정치적 역학 관계니, 주도권 등 갖가지 바람 속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을 꿈꾸며 적는다. 한 순간이라도 눈을 감으면 가슴이 까맣게 변하기도 한단다. 앞인가 끝인가 어린 새가슴들 부스러질 듯 아직 자라지 못한 한가닥 털끝을 가지고도 안아야 하는 날들이 많은데 마냥 서서 크게만 웃는 아이들 웃음 한 구석에 고인 울음은 허리 굽혀 길어 올리고 너희들 이마에 없어도 좋은 이름은 새털만큼 따뜻한 손으로 닦고 딱아서 어둠을 이겨내는 눈빛과 가슴으로 돌아가는 너희들 꿈길에 새알같은 웃음을 하얗게 깔아 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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