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7 | [특집]
학생의 의기가 죽으면 나라가 어둡다.
정송자/전라북도 교육위원
(2004-02-03 16:12:38)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마치 대학가에 학문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듯한 보도를 가끔 보게 되었다. 70~80년대의 어둠과 질곡의 늪을 지나 이젠 대학도 대학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와 희망과 떨림과 같은 우려를 같이 해 보면서 사회의 기성인으로써 대학생을 지녀를 두었던 한 어머니로써의 감회도 적지 않았다. 70~80년대의 정통성 없는 정구너에 대한 문제 제기로부터 그 정권이 일궈 나가고 있는 현실정치는 불법과 비리, 탈법, 무법, 편법 등 근원적인 원칙에서 벗어나는 모습들 뿐이었으니 우리 국민들 보기에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을길 없을때가 많았거늘 더욱더 양심과 용기를 다하여 정의로운 민주사회를 이루기 위한 갈망에 가득찬 대학생에게는 젊음 자체가 갖는 순수함과 정직함으로 하여 그들 대학생들이 거리를 투쟁현장으로 나갔고 돌과 화염병, 각목을 들게 한것이라고 생각한다. 최루탄에 맞선 화염병도 분명 폭력일진데 그 폭력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은 이차적인 것이다. 드러난 현상적인 모습만 보는 기성인들엑게는 취루탄과 화염병을 동시에 바라봤고 마치 교실안에 들어 앉아 책장이나 넘기는 모습이 바람직한 대학생 상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 학문을 추구하고 지성을 닦아가며 보다 나은 사회를 추구해 가는 대학생이라면 현실에서의 모순과 괴리들을 맞받아 치는 항변이 그들에게는 분명히 있어야 했다. 그랬기에 눈으로 피부로 보는 모순은 그들을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케 했고 그런 사회를 이루어 보기 위한 안타까움으로 몸부림 치기도 했던 것이 아닐까. 어느 한시대나 그 사회의 현실속에서 이상도 사상도 재구성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70~80년대의 전도된 가치와 굴절된 삶의 모습에 어두웠던 시대를 통렬하게 괴로워한 사람들의 투쟁적인 외침 그것이 바로 대학생 운동이었고 그 희생과 넋으로 하여 인간 존엄에 대한 각성과 그것을 저해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기 위한 90년대에 들어서 있다고 본다. 이젠 우리 사회 변혁의 문턱에서 중지를 모으고 문민정부라는 가능성있는 불빛 그 빛이 온누리를 밝힐 수 있는 빛으로 확대되기 위한 조심성과 정성을 모아야 겠다. 독재와 군사문화를 청소하기에는 30년 뿌리깊은 악의 요소들을 일거에 투척하기란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먹이사슬에 괘를 같이 하면서 현실안주하고 있는 기득권 층의 교활한 반동과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패턴을 잃어 버린 황금 만능 주의자들에게 의식을 전환 시켜주는 작업도 우리 대학생들이 맡아줘야 한다. 캠퍼스 도서관에 불이 켜지고 그 불빛 아래 진리를 밝히는 모습이 많아진다는건 분명 생동감과 비젼있는 국가장래의 약속인 것 같아 흐뭇하다. 그러나 한거풀 벗기고 그 내면을 바라보면 한심한 생각도 떨쳐 버릴 수 없다.
대학생을 겨냥했던 이론서의 번역이나 집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사회과학 서적이 대학가에서 필독도서로 읽혀지던 암울한 시대를 이제는 벗어났다. 이념의 붕괴와 한 시각으로만 세계를 보지 않고 폭넓게 사회를 해석하려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독서라면 얼마나 바람직 할까? 그러나 관심자체를 갖지 않고 가볍게 자기 이해관계에만 매몰되고 약삭바르게 학점이나 취득하고 표피적인 지식습득을 취하면서 다만 취직을 하기위한 도구로서의 대학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시험이 지나고 나면 쓰레기장에 수북이 쌓이는 일회성 지식 프린트물 잘못돼도 한참 잘못이다. 도서관 불빛은 마냥 켜져야 한다. 그러나 분명 채워져야 할 알찬 학문의 도장으로 말이다.
대학을 이야기 하면서 대학의 조직체를 바라보자. 이 땅에 반독재 반분단 운동을 주도하며 이 나라의 민주화에 역동적인 역할을 해주었든 전대협의 위상에 대해서든 일단 긍정해주고 싶다.
한총련으로 재편되면서 더욱더 성숙된 학생운동의 모습을 기대해 봤다. 한총련은 현시점에서 사정과 개혁을 이뤄가는 현정부의 추진과정에서 채찍과 격려를 아끼지 말았어야 한다. 물론 법과 제도화보다 정치적 결단에 의해서 사정을 앞세울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이해해야 하고 이런식으로는 지속성과 추진의 폭에서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촉구하면서 온 국민의 합의를 추출해 내는데 한총련이 기선을 잡았어야 된다고 본다. 허나 결단식과 더불어 시위 현장에서 쇠파이프의 등장은 너무 놀랍고 이러한 출범으로 국민에게 보여준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정말 시위문화가 정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거늘! 한총련은 국민의 정서를 읽어내야 한다. 시대가 달라지고 국민 의식이 성숙되어가는 차제에 의사의 개진과 표출은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국민의 정서와 행위가 같이 가야 한다. 정부와 한 약속은 지켜야 한다. 물론 과잉 진압이 있고 진압의 형태가 전연 변화가 없을 수 있다. 지금은 관(官)이나 민(民)이 사정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한 움추림만 있을뿐 진정한 개혁과 의식전환이 없기 때문에 암울한 시대와 똑같은 진압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때 우리 대학생들은 전향적이고 점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비폭력 평화시위를 했어야 한다. 두 눈을 부릅뜬 우리 국민이 지켜보기에 잘잘못은 우리 국민이 알고 있다. 한사람이 열걸음보다 열사람이 한걸음 앞서가는 우리 국민적 시각안에 학생운동이 있어줘야 한다. 이건 또 웬일인가? 왠 말인가! 한 경찰의 죽음은? 수비의 분지가 없었든 우리가 막다른 길에서 취할 수 있었든 저항 아이였느냐는 궁여지책의 변명도 나오는 걸 안다. 그러나 잘못은 곧 인정하자 인정하고 뼈를 까는 아픔으로부터 다시 출발하는 거다. 온 국민의 시선이 차갑게 느껴지며 협곡에 몰린 움추림이겠지만 그 협곡이 현 위치임을 알고 현명한 지헤가 등장되어야 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피폐한 모습으로 남아있지 말고 역사의 전면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야한다. 학생의 의기가 죽으면 나라가 어둡다.
이제 대학생활을 돌아보자. 이제는 대학생활에도 윤기와 낭만이 출렁이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 30여년 잘못되고 뒤틀린 지도자들의 국가경영으로 하여 우리의 대학생들은 거칠고 산만하며 피곤해 있지 않는가. 30여년 발빠르게 닦쳐오는 불의와 모순들의 걸림돌을 온몸으로 받으며 치우기에 급급했던 우리 학생들에게 여유와 넉넉함을 일구어 가는 대학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우리 기성인들은 그들앞에 올곧게 서야한다. 비록 정신적 유산을 남겨 줄 수 없는 시대 상황에 살았다 하더라도 옮고 그름, 아름다움과 추함, 선함과 악함을 판별할진데 행하는 양심으로 살아야 할것이고 우리의 선대들이 남겨준 문화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나는 가끔 대학주변을 가는 때가 있다 갈적마다 달라지는 외적 환경과 내적 분위기에 구토를 낸다.
대학 문화와 어울리지 않게 퇴행적이고 외양적이고 화려하게만 변해가는 모습 그걸 택하고 취하기 때문에 변신 하는건 아닌가. 대학가는 문화의 선진지로 문화를 창출하고 재구성하는 장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인간과 인간의 만남, 친구가, 남자와 여자가, 선배와 후배가 동호인들이, 교수와 학생이 그 만남의 장이 가슴 트이는 교감의 장이어야 한다. 시대의 아픔을 놓고도 상황의 반 논리를 보고도 우정의 배신을 보고도 아파하지 않고 귀찮아하고 고민하지 않고 이기주의의 우물을 파기에 급급하고 일회적인 유희와 감성에 탐익하고 학생에서 무관심하고 스스로 연구하기를 게을리 하는 지식팔이 교수들에 편승하며 비위 맞추기를 경쟁하는 학생들이 있다는 건 너무도 서글픈 일이다. 이 현실이 있는한 우리의 대학가는 더 건조해지고 추해지고 비틀어 진 피사체로 남게 될 것이다. 뜨거운 가슴 냉철한 머리 일하는 팔다리로 대학 문화를 일궈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