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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 | [시]
김용택 시인이 보내온 여름날의 사랑시
김용택(2004-02-03 16:20:12)
김용택 시인이 보내온 여름날의 사랑시 산도 들도 당신 앞에 서면 산도 들도 꽃도 지워집니다. 좋은 당신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 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 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 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해도 참 좋은 당신. 밤산 산들이 저렇게 잠안자고 어디를 보며 앉아 있었구나 산들이 저렇게 어둠속에 잠안자고 앉아 어디를 보며 나처럼 울고 있었구나. 길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는 새벽같이 옵니다 비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그 길가에는 흰제비꽃이 피고 작은 새들 날아갑니다 새 풀잎마다 이슬은 반짝이고 작은 킬은 촉촉히 젖어 나는 맨발로 붉은 흙을 밟으며 어디로 가도 그대에게 이르는 길 이 세상으로 다 이어진 아침 그 길을 갑니다. 먼산 그대에게 나는 지금 먼 산입니다. 산도 꽃피고 잎피는 산이 아니라 산국 피고 단풍 물든 산이 아니라 그냥 먼 산입니다. 꽃피는지 단풍지는지 당선은 잘 모르는 그낭 나는 그대를 향한 그리운 먼 산입니다. 음력 팔월 열이틀 달밤 부지런히 일하시는 우리 어머니 곁에 사는 기쁨과 행복을 아시는지요 지붕 위에 떨어지는 열이틀 달빛과 풀벌레 산 가득 우는 곳 산이 솟고 강이 흐르는 소리가 내 깊은 참을 흔틀어 깨우는 곳 그리고 나는 오늘 기난한 우리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어요. 밤이 깊고 어머니 곁에 풀벌레 울음 소리 고추 참깨 알밤이 쌓여가고 나도 그 곁에 곡식처럼 쉽니다 큰 복이지요 일해도 일해도 가난해서 일을 하시는 우리 어머니, 나를 낳아주신 우리 어머니 곁에 내가 사니까요 몇 개의 비오는 마을과 호박꽃 핀 돌각담을 지나 어머니와 마주 앉은 저녁은 늘 평화로워요 사랑 사랑은 혁명입니다 거기 사람들이 흰밥 먹으며 사는 아름답고 큰 나라가 있습니다 저 들에 저 들국 다 져불것소 날이면 날마다 내 맘은 그대 오심 저 들길에 가 서 있었습니다 이 꽃이 피면 오실랑가 저 꽃이 피떤 오설랑가 꽃 피고지고 저 들길에 해가 뜨고 저 들길에서 해가 졌지요 그대 어느 산그늘에 붙잡힌 풀꽃같이 서 있는지 내몸에 산그늘 내리면 탕신이 더 그리운 줄을 당신은 아실랑가요 데체 무슨일이다요 저꽃들 다 져불면 오실라요 찬 바람 불어오고 강물 소리 시려오면 내 맘 이디 가 서 있으라고 이리 어둡도록 안온다요 나 혼자 어쩌라고 그대 없이 나 흔자 어쩌라고 저들에 저 들국 지들끼리 다 져불것소. 국토 미시령, 비선대, 경포대, 낙산사, 오죽헌, 비룡폭포, 선교장, 용문산, 길마다 깔린 당신의 얼굴들이 속초 앞바다에석는 우루루 하얀 파도로 일어서서 달려오며 날 불렀습니다 한계령 지나 돌아오는 길목 산골짜기 마다에시 벌겋게 꽃으로 피어오르는 당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국토를 돌아보며 마음 매무새를 점검하게 됩니다 당신에게 가는 이 아름다운 발걸음처럼 삶이 조심스러워지고 경건해집니다 아, 내가 국토 안에 갇히듯 우리들의 사랑에 갇히고 싶습니다 집에 돌아와 누워도 당신의 얼굴 때문에 육중한 대문 밖으로 무조건 달려 나가는 나를 붙들어 뉘입니다 그대 생각으로 밤이 깜해집니다. 그이가 당신이어요 나의 치부를 가장 많이 알고도 나의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이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이 당신입니다 나의 가장 부끄럽고도 죄스러운 모습을 통째로 알고 계시는 사람이 나를 가장 사랑하는 분일 터이지요 그분이 당신입니다 나의 아흔아홉 잘못을 전부 알고도 한 점 나의 가능성을 그 잘못 튀에 놓으시는 이가 가장 나를 사랑하는 이일 테지요 그이가 당신입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사랑이고 싶어요 당신의 한 점 가능성이 모든 걸 능가하리라는 것을 나는 세상 끝날까지 믿을래요 나는, 나는 당신의 하늘에 첫눈같은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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