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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 | [한상봉의 시골살이]
농촌일기 막걸리에 관한 명상
김유석/시인 (2004-02-03 16:20:48)
정지나무 그늘과 모정(茅亭)마루가 그리워지는 철이다. 지리하고 끈적끈적한 장마가 끝났는가 싶더니 뒤대어 불개미같은 땡볕이 들판을 기어다니며 물기를 핥아댄다. 그 어떤 것의 그늘도 허락하지 않은 채 사나운 욕설처럼 퍼붓는 폭염. 그 아래 녹녹히 주늑든 배동바지 나락들 뿐 팔월 한낮의 들판은 비어있는 푸른 광장이다. 거기 누군가 길고 느릿한 걸음을 잰다면 따분함을 앞질러 고독감이 저려올 것 같다. 삶이라거나 허무라거나 어쨌든. 이맘때면 늘상 모자라던 일손도 한숨을 돌린다. 이삭거름은 다 주었고 논두령의 잡풀도 재벌 깍아서 이제 시둘러 날잡을 일거리라곤 들판에 없다(?). 농사꾼에게 “없다”란 빈발이고. 조석으로 참참이 농약을 치거나 일찍 팬 조생종 벼의 참새를 쫓는 일들을 차치하면 시쳇말 그대로 팔월신선이 된다. 몇몇 부지런한 농사꾼의 경우는 벌써 추수를 염두에 두고 농기계를 손질하기도 하고 들쑤시는 허리쯤은 질끈 동여매버리는 아낙네들은 일말의 짬도 없이 인근의 마대공장이나 밭농사지역으로 날삯을 팔러다니기도 하지만 이때만큼 마음이 넉넉하고 한가러운 시절은 없다. 그럴것이. 겨울철의 좀 무감각적인 휴면은 꼭 무슨 병치레하듯 허구헌날 구들을 지기 일쑤이고 때로는 마냥 놀고 먹는다는 자괴심에 긴밤을 새앙쥐 소리에 쫓겨다녀야 하는 등 쉰다는 것 자체가 여느 도시인들처럼 재충전을 위한 안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품삯없는 일거리가 되어버리곤 하는데 비해 짤막하나마 땡볕 아래서의 휴식은 잘자란 나락들이 있고 뭐, 삶의 의지랄까 본능이랄까 무더위 속에서 겨냥하는 한줄기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풀을 꺽느라 한창 조갈이 들때 허리 펴고 받아보는 소나기의 맛이란! 어둔 밤의 불빛들이 미세한 어둠의 입자를 끌어모아 응집력을 키우듯 한여름의 땡볕도 키작은 들판의 그늘들을 끌어다 헐벗은 사람의 마을 위에 내린다. 그 대명사가 정자나무 그늘과 모정마루다 대개 마을 초입을 지키고 섰거나 마을 한가운데 세월을 터심아 앉아있는 그것들, 고향을 버리고 떠난 자들의 빛바랜 추억이 되어 이따금 저미는 향수를 달래주곤 하는 그것들이 유감스럽게도 우리마을엔 없다. 다만 논머리 거리로 바투앉은 이 논배미를 휘돌고와 하루일과를 끝낸 남정네들은 날이날마다 그곳으로 마실간다. 으례 그렇듯이 모정마루엔 장기판 실금이 나있고 그늘 밑에는 허름한 멍석이 펼쳐져 있다. 거기 손때가 절어 반지르르한 탱자나무 윷에 귀떨어진 깍쟁이가 놓여있음은 물론이다. 모였나하면 화투패를 돌리는 요즘 사람들과는 달리 장기나 윷을 걸고 술추렴을 하는 지긋한 농투사니들. 대개는 이웃마을과 우리동네 사람들로 편을 서서 쌈지돈을 모은다. 곧잘 낙을 하고 훈수꾼 입김에 손끝을 떨기도 하지만 그들 모두가 고수요 한창때 가락을 모름지기 묵여온지라 서로의 말이 몰고 몰리며 한판을 돌리고나면 벌써 새참때다. 술이 나오고 진사람의 넉살을 섞어서 잔이 돌아가는데 웬걸, 술이 말갛거나 입술에 거품이 묻는다. 마시느니 쇠주고 헛배부른 맥주다. 흰사발에 뜨물빛 틉틉한 예의 그 막걸리가 아닌 것이다. 딴청을 부려도 막걸리는 없다. 오늘따라 술도가의 배달꾼이 늑장을 부리는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주막집에서 막걸리를 떼지 않은 탓이다. 새삼 되짚어보면 우리 농촌에서 막걸리가 주인 아닌 객노릇을 하게 된지도 꽤 된듯하다. 그러니까 민가의 밀수를 단속하고 위생상의 구실이었든가 어쨌든가 좀 감감하지만 통개술을 병막걸리로 바꿔버린 그 무렵부터 일게다. 미리 귀동냥을 해둔 터이지만 어느날 갑자기 병막걸리를 받아든 농투사니들의 반응은 좀 어설폈고 또 조금은 신선했다. 막걸리란 휘휘 내저어 퍼마셔야 제맛이라는 꾼들은 주전자에라도 부어야 들이켰고 배젊은 또래들은 용기만 바꾼 같은 술도가의 술인데도 한결 낫다는 선입견으로 병을 흔들어댔다. 하여튼 그렇게 세간에 나돌기 시작한 병막걸리는 맛의 유무를 떠나 여러모로 편리했다. 우선 예전의 통개술에 비해 시어터져 버리는 일없이 반품되어 좋았고 꼭이 주막집을 찾지 않더래도 웬만한 점방이면 구할 수 있어 그러했다. 그러나 그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병막걸리에 대한 반응은 머지않아 시들했다. 마셔 볼수록 맛, 가격, 운치 등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었고 그때마다 구관애 명관이라는 입방아가 오갔 으며 점차 혓바닥을 바꾸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때마침 농촌에 물꼬를 트고 공세를 취하기 시작한 맥주가 막걸리의 퇴조를 한 몫 단단이 거들었는데 우리마을에 맥주병이 나뒹굴게 된 사연인즉 참으로 어줍다. 아마 삼사년전 봄으로 기억된다. 온동네 사람들이 품앗이로 육묘종지을 치던 뉘집 앞마당. 부지런히 놀리던 손발이 더뎌질쯤 해서 은근히 고대하던 셋거리가 나왔다. 초장이요 부잣집 인심인지라 입맛을 다시기 전에 눈요기부터 거두어보기 잠시 이건 해물, 저건 육류, 대부분 익히 젓가락으로 집어본 적이 있는 것들이 금년에도 변함없이 올망졸망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반해 한가지 눈에 띄지않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상귀에 으례 포개어 놓여있어야 할 하얀 사발들이었다. 가만 살펴본즉 잔 뿐 아니라 컬컬한 목젖다시는 막걸리도 얼른 눈에 밟히지 않았다. 맨입에 안주를 집다말고 성급한 누군가 외장을 쳤다. 그러자 쟁반에 유리컵을 받쳐든 안주인의 객적은 낯빛이 소리를 쫓으며 달려나오고 생각난 듯 곳간문을 밀친 바깥주인은 달그락거리는 맥주상자를 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행여 무슨 날이라도 받았는가 싶어 주인을 향했고 날은 무슨 뒤끝 개운허것다 여편네들도 한잔씩 헐 수 있것다 혀서...라며 주인은 운을 땠다. 허긴 그려, 소경 잠꼬대하듯 맥주예찬론이 거품처럼 오갔고 그로부터 집집마다 막걸리 대신 맥주품앗이가 시작되었다. 뉘집네선 맥주를 대접했는데 우리집만 막걸리를 내놓을 수 없다는 생색내기가 공공연히 전염되어 일판마다 빈병들이 나뒹굴게 된 것이다. 처음엔 도통 비위가 상해 딴청을 부리던 꾼들이 요즘처럼 직수굿이 잔을 받아들게 된 것은 맥주에 그만 혀가 알량해진 탓이 아니라 막걸리가 귀해진 까닭이다. 웬만한 주막에선 찾는 이가 드물다는 핑계로 여간해서 막걸리를 떼놓지 않는다. 술도가에서조차 걸르던 막걸리량을 나날이 줄이고 맥주도매를 견하는 형색이고, 읍내를 나가도 녹슬고 찌든 드럼통 술상에 풋고추나 김치를 안주삼아 벌컥벌컥 들이키던 왕대폿집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니 세월 수상하기가 어디 우리 마을뿐이랴. 몇 판을 더 돌리고 독한 씌주에 취기가 달아오른 삭정이들은 모정을 기어오른다. 주사하듯 농삿일이며 뉘집 자식애기들 주고 받다가 한타래 서풍을 가눔하고 배꼽을 드러낸채 곯아 떨어져비리는 저들, 희미해져가는 저들의 피서법. 우리는 고독하다. 팔월의 태양도 그 아래 뿌리처럼 얽힌 들길도 고독하다. 생각할수록 모든 것들이 고독해지는 한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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