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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 | [문화가 정보]
"적어도 쓸 수는 있겠다" -인문협의 제1기 문예창작교실을 마치고-
김선경/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 간사 (2004-02-03 16:22:10)
작년엔가. 어느 단체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공모했던 문학상 응모작올 안도현 시인의 어깨 너머로 슬쩍 엿본 적이 있다. 별 생각없이 그것을 들여다보던 나는, 작품의 우열과는 상관없이 굉장히 층격적인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나이가 지긋이 들었을 어느 아주머니가 쓴 글이었다. “못난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처옴 써보는 글입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글을 쓰자고 해도 지식이 부족하고 쓴다고 해도 누가 읽어주지도 않는 글줄들을 보듬고 몸둘 바를 몰라했을 아주머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문학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내면을 그곳에다 쏟아붓기를 원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토록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써보기를 열망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문학을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한다는 사실과, 그러기 위해서는 참으로 크나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함께 깨달았다. 을해 3월부터 전북민족문학인협의회에서 실시한 ‘제 1기 문예창작교실ꡑ(이하 창작교실)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한번쯤 ‘용기ꡑ을 내보라고 등을 떠미는 자리였다. 과연 몇 사람이나선청을 해올 것인지 전혀 예측을 할수 없는 상태에서 우리는 사뭇 가슴을 졸였다. 문학이라는 게 워낙 개인적인 작업에 속하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그것의 ‘기술적인 측면’을 설명할 수 있으되 완벽한 뭔가를 손에 쥐어줄 수는 없으리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우리의 우려와는상관없이 시 창작반에 2O명. 소설-수필 창작반에 21병이 수강신청을 해옴으로써 사기도 드높게 창작교실은 시작되었다. 소설 강의에는 우한용, 이병천 선생님. 시 강의에는 김용택, 박남준 선생님이 맡아주셨다.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서 6시까지 진행됐던 창작교실은 그러나 한 두달을 고비로 수강생들의 도중 하차 현상이 눈에 두드러졌고, 시나브로 그만둔 사람들을 합하여 거의 반전 이상의 인원이 결국 수료를 받지 못했다. 그 원인이 이디에 있는가들 묻는 질문에 수강생들은 다양하게 답변을 해왔다. 개인사정이 바빠서. 초여틈이 시작되면서 권태가 찾아왔기 때문에. 원래 생각했던 내용과 창작교실의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에... 등 정작 주최측의 짜임새 있는 운영이나 체계적이고 유혹적인(?) 강의 내용이 없있기 때문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두 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수강생들의 지나친 겸손이었을 것이다. 사실 ‘즉흥적안 강의’ 내용에 실망을 느꼈다거나, 실제 창작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추상적인ꡑ 강외가 많았다는 지적이 다른 질문항에서는 많이 발견 되었다. 강의 내용에 관한 질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은 수강생 모두가 한결같이 ‘실제창작ꡑ을 원한다는 것이다. 이론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지만 실제 작품을 내보이고 그것을 평가받 고 다시 그 작품을 수정, 보완해서 한 편의 완결된 작품을 써낼 수 있기몰 희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련 바람에 대해서는 주최측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의 습작 기를 거친 숙련작들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문단 나누기나 부호의 사용 등에 전혀 일관성 이 없는 글들을 함께 놓고 막무가내로 ‘창작 우선ꡑ을 부르짖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창작교실의 목적에도 어긋나는 일일 뿐더러. 문학일반에 대한 이해와 시대적 흐름을 살피는 문제. 나아가 기존 작품들의 공과를 따지고 읽기에 충실히하는 문제도 문학수업에서 빠뜨려서는 안될 기본적인 항목이기 때문이다.(물론 개별지도까지 보장되는 충분한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런 이론 일반과 창작의 실제들 현실감 있게 연결 시켜주고 그럼으로써 개개인의 창작 의지와 자신감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이번 창작교실은 일정 실패한 측면이 있다. 특히 소설반의 경우 -시와 소설은 창작의 과정이나 생산 결과가 다르기 때문에 똑같이 얘기할 수는 없다-일기만 쓰던 사람이 뭔가 써보겠다고 강의를 들었을 때. 초기에는 마냥 떨리기만 하다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슬슬 자신감이 붙는다. 그러나 정작 종반으로 갈수록-즉 강의 내용이 깊어 질수록 오히려 현저하게 자선감을 잃어버리고 만다 알면 알수록 쓰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다. ‘무식하게ꡑ 쓸 때가 좋았지. 5개월이 지난 지금에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으니 ‘재수ꡑ나 해야겠다고 자책하는 수강생도 여럿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5개월만 지나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어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런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져줄 수가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럼에도 모든 수강생들이 ‘일단은 써야겠다ꡑ‘적어도 쓸 수는 있겠다’ ‘쓰는 버릇을 길들여 주었다ꡑ는 것을 한결같은 성과로 꼽았딘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전에는 막연히 ‘내가 글을 쓸 수 있을까? ꡑ‘이런 하찮은 이야기도 시나 소설이 될 수 있을까?ꡑ을 고민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모든 이야기를 쓸 수 있고, 써야 한다ꡑ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운영 면에서 볼 때 이번 창작교실은 그 구성인원의 다양함과 폭넓은 나이차로 인해 어디에다 초점을 맞춰야 할지 난감한 면이 있었고, 각기 다른 지향들을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지 가늠할 수 없는 어려운 짐이 있었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있을 2기 창작교실에서도 여전히 드러날 문제점이다. 전체 수강생들이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 운영으로 ‘공동체적ꡑ 분위기를 창출한다면 이런 문제점은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별 활동의 활성화가 그것인데. 1기 창작교실에서는 이런 노력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가장 아쉬운 점으로 남았다. 9월 중순부터 시작될 2기 창작교실은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논의한 상태에서 새롭게 출발할 것이나 그동안 1기 창작교실에 참여하고 성원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 거의 헐값의 강사료들 받고, 때론 받지 못해도 아무런 항의도 못하시던 네 분 강사님의 헌신적인 노고에도 감사드린다. 문학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치열한 노력은 언제 보아도 눈부신 것이다. 이 눈부심을 간직한 사람은 언제라도 창작교실의 문을 두드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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