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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 | [문화가 정보]
사람 속에서의 끝없는 교신 인문협 문예창작교실에 참가하고
김 진 (2004-02-03 16:22:54)
지극히 용렬한 재주를 가졌으면서, 이 나이 되도록 버리지 못하는 문학에의 집착 때문에 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보다는 훨씬 고상한 고민을 하나 더 갖고 있다는 자기도취적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적어도「창작 교실」을 만나기 전까지는. 지난 봄 초입, 거리의 벽보의 유혹이 너무나 가깝게 느껴진다. 벌써 다섯 달 전의 일인데도... 나는 그날 그 벽보를 만나려고 외출했던 것 같다. 딱히 볼 일도 없으면서. 겨울이 다갔다는 속단은 성급한 것이었음을 바람 끝에서 깨달으면서. 작은 아이는 포대기로 둘러업고 큰 아이의 손을 잡은 채, 눈에 들어오는 대로 거리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었다. 그때, 건물 벽인지 전봇대인지에서 문득 고딕 글자들이 내 눈으로 달려들었고, 나는 그 앞 에 멈춰섰다. 「당신도 작가가 될 수 있다」내 안의 현(鉉)이 강하게 피치카토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강렬한 유혹이었다. 내 갈망을 연주할 수 있는 좋은 무대다 싶었다. 혼자 자유롭고 싶을 때는 더 욱 큰장애로 여겨져 온 아이들. 볼 일을 위해 화장실에 앉아 있는 체 어미에게, 그때만큼이라도 절대 자유를 주지 않는 아이들 화장실 문을 열어 놓고라도 제 어미 얼굴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어린것들에게서 어떻게 몸을 빼낼 것인지 나는 그 점이 가장 자신 없었다. 수강 등록 여부를 놓고 망설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냉철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고작 한 해 한두 편의 습작을 해 놓고, 좋은 작품이 반드시 씌어지리라는 맹랑한 꿈을 갖고 있는 자신이 되돌아보아졌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유보되어 온 쓰는 일을 대체 어디까지 끌고 가다 놓아 버릴 것인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슴이 아파왔다. 힘써 투신하지는 않았지만, 내 1O대와 2O대를 줄곧 관통해 온 일념인 문학에의 길을 어느 날 포기한다는 건 정말이지 악몽일것이었다. 그래서 내 용단은 훨씬 쉬웠다. 토요일 오후면 만사 젖혀놓고 두 아이의 극성을 도맡아 견뎌 준 남편 덕분에. 다섯 달동안의 나의 토요일 오후는 꽉찬 쌀통을 보는 듯 뿌듯했었다. 오랜 세월 버리지 못한 고민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든 창작교실에서의 시간들을 지금 반추하면서. 글 속의 문장 부호들처럼 도드라져 보였던 몇몇 얼굴들이 먼저 생각난다. 그리고 2O대가 부끄러워할 정도로 의욕적이고 열정넘치는 선생님. 출결이 지극히 선택적이었던 특징있는 얼굴들 몇도 떠오른다. 모친 상으로 출석하지 못한 첫시간과 그분의 삭일을 위해 하향했던 몇시간, 그러니까 내 어머니의 운명(碩命)과 관련하여 몇 시간을 결강했을 뿐 참 열심히도 강좌를 경청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토요일마다 만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관계를 생각해 보았고, 내가 읽은 소설들과 써 온 소설들의「관계」까지도 짚어 보았다. 그것들은 어느쪽이나 사람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었다. 홀로 있는 게 더 속편하고 생산적인 시간을 운용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드는 나 같은 사람들도 결국은 자신의 경험 을 원고지로 끌어들여 형상화하는 일을 하자면 사람 사는 세상을 비껴갈 수 없다는 깨달음이 다시 한번 왔던 것이다. 낯가림 심하고 겁이 많아, 사람과의 교분을 트기가 언제나 쉽지 않은 나지만, 강좌를 들으러 나오는 이들과의 허심한 만남은 꼭 성취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 잣대로 다섯 달이라는 기간은 다른 사람과 마음을 트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길이었다. 처음부터 어색했던 기분이 아직도 다 가시지 않은 채인 것이다. 짧았으므로 아쉽기만한 다섯 달이다. 그나마 습작을 두 편이나마 한 나는, 예년의 1년분을 다섯달 안에 해냈다는 자위(自慰)를 짐짓 해볼 만도 하나, 애당초 수필을 공부하고 싶었던 이들은 시작 시간부터 지금까지 혼란스러음과 두려움을 종내 지우지 못하고 있는데 .. 강좌의 성격이 처음부터 소설 창작으로만싸잡아 몰아 가는 것이었던데 그 이유가 있다. 수필을 쓸 작심이었던 이들은 강좌를 들을수록 소설이라는 것의 무게와 어떤 진지함에 위축되어 버렸고 그래서 강사가 부여하는 과제인 소설쓰기를 아예 못하고 만 경우도 있는 것이다.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가 아쉬웠다. 또한. 강사들은 현역 작가이자 동시에 직업을 갖고 있어서 그분들의 시간중에서 강좌를 위한 시간을 어렵게 쪼개어 할애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늘 시간에 쫓기는 인상이었고, 어쩐지 일관성 없는 깅좌라 여겨질때도 있었다. 원고지 공포를 못 벗어난 수강생이 있는데다가. 대부분이 습작에 게으른 탓도 있겠지만 애초의 계획대로 이론보다 실기에 증점을 두는 강좌도 이루어지질 않았다. 강사의 적극적인 시간 투자가 전제된 강좌었다면, 강사가 수강생에게 시간이나, 그밖에 자신만의 귀증한 무엇들을 일방 빼앗기지만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많이 가진 쪽이 적게 가진 쪽에게 더 많이 줘야 함은 자명한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 관계는 상호 보완적이라는 내 믿음대로라면 강사도 수강생에게 가외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싶은 것이다. 강좌에 대한 어떤 불만보다도 나는 스스로를 먼저 꾸짖어 마땅하다. 창작욕에 불을 사르는 일은 어디까지나 나의 의욕에 결부된 것이며. 다른 모든 외적 요소는 소극적 도움을 제공할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번 강좌를 진정 소중한 경험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강좌중 내가 만난 사람들과. 순간적 영감(鎭感)들과. 새로운 각성들은 어느 순간 내 의식의 저변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며. 어떤 계기에서 그것들은 내 소설들에 모양을 갖춰 드러날 것이다. 사람사는 이야기를 떠난 소설이 없다고 볼 때. 강좌에서 만난 사람들과 내가 이룬 작은 공동체가 그래서 여간 고맙지가 않은 것이다. 이즈음의 「가벼운」 소설들의 잔치에 현혹되지 않는 이른바 진지함과 성실함이 습작하는 자의 바람직한 자세임을 나는 이번 강좌에서 확고히 했다. 쓰는 일이란 결국 혼자 하는 외로운 작업이며, 인식 확장을 위한 뼈 깎는 고통과 절망을 남모르게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헛되이 나이만 더해 온 세상살이는 아니었음을 나는 참말이지 다행으로 여긴다. 많은 사람들이 벌써 사용을 포기한 촉수를 나는 이 나이가 되도 독 닦아 윤 내는 몸짓을 깜냥에 멈추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 속으로 향한 더듬이로 세상을 감지하는 일을 나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소설이라는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아내어 다시 세상 가운데로 환원하고자 하는 열망을 나는 불태울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고민을 짊어진 사람들과의 끝없는 교신을 나는 꿈 꿀 것이며. 나의 문학에의 집착은 결코 고상한 여흥(餘興)도. 자기도취적 우윌감의 표현도 아님을 확인해 나갈 것이다 진주시 호성동 동신아파트 3동 8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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