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3.8 | [문화저널]
작은 생명을 통해 들여다보는 원형의 세계 최초의 작업에 대한 노트
이철량/한국화가, 전북대 미술교육과 교수 (2004-02-03 16:25:54)
아침. 이른시간에 눈을 뜨고 건너편 호수에서 물안개가 피어오르는지를 봅니다. 그리고 나무의 싹은 얼마나 자랐는지 언제쯤 꽃눈이 망울을 맺을지를 들여다보는 재미로 삽니다. 풀잎새 사이를 비집고 춤을 추는 바람소리가 벌레들의 숨소리와 함께 큰 합창으로 들립니다. 돌담위로 힘겹게 기어올라 피어나는 노란 호박꽃이나 하얀 박꽃들은 특히 빛이 깊은 달밤 아래에서는 그대로 눈물어린 감동입니다. 또한 밤깊은 하늘의 별빛들은 또다른 축복이지요. 이런 시간이면 하늘도 땅도 따로 없고 모두가 하나가 됩니다. 이런것들은 모두 지금 내가 살아가는 현실이머 또한 환상 그 자체입니다. 작은 생명들을 통해 어떤 원형의 세계를 보고 싶은 것입니다. 제가 이런 하찮은 것 -이를테면 들꽃이나 풀잎이나 돌덩이나 벌레들과 같은-사소한 것처럼 느껴지턴 주변에 대해 새롭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습니다. 한 5년전, 그러니까 88년에 작업실을 전주 동물원 근처 시골마을로 옮기고나서 조금씩 조금씩 새롭게 보기 시작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기실은 내 속 깊은 곳에는 어린시절 산골에서 만지고 들여다 보았던 그 모습이었습니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같은 감동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그림에 이런 제목을 달기 시작했습니다.「봄을 먹은 산」이 그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또한 나의 일상에 대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후에 「신시(神市)」라는 제목이 등장합니다. 신시는 우연히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그무렵 개인적으로 꽤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때는 세상도 좀 시끄러웠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직장으로 있는 대학에선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허구헌날 길거리로 뛰어다녔지요. 연구실 창문앞에서도 최루탄이 터져 눈물흩리며 흥분했었지요. 더욱이 발령을 빨리 내달라고 제자들은 교실을 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제가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미술계도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제도권이니 민중이니 하면서 쌈박질하고 몰려다니는 꼴도 제겐 어리석게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잘하는 짓인지 모르지만 그저 좀 멀리 떨어져있고 싶었습니다. 큰것을 볼려면 더욱더 멀리 떨어져야 하는 이치는 아닐 것이나 그저 한걸음 떨어져 관조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한 작가에 있어서 「우리그림」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앞세워 몰려다니는 일은 내겐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내겐 새로운 비판이 필요했습니다. 순수한 내적 자아비판이 일고 있있습니다. 저는 그무렵까지 한 10여년 줄곧 먹만으로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먹에 대한 새로온 인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리하여 먹으로 무언가 오늘을 사는 헌대인들의 이상을 꾸며보고 싶었습니다. 마치 옛날 사람들이 자연에 대한 독특한 관념을 먹으로 그려왔듯이 말입니다. 말하자면 현대인들의 새로운 관념의 세계를 형상화하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시(神市)는 그런 것입니다. 현대인들이 가슴 깊은데서 기다리는, 그리고 환상으로 가지고 있는 어띤 이상향의 세계가 신시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모든것들의 근원인 생명의 세계일 것입니다. 모든 생명. 이를테면 인간이나 풀꽃이나, 여치나 지렁이나 이들의 생명은 똑같이 아름다운 것일 것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그저 신시라고 붙여 본 것입니다. 현실세계의 갈등과 고통 그리고 공허를 메꿀 수 있는 이상향을 보여보고 싶었던 맹랑한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88년경부터 그림이 좀 복잡해졌습니다. 화면에 사람도 있고 새도, 꽃도, 나무도 또 알 수 없는 어떤 원형질의 형태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함께 조화롭게 꾸며진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나는 인간이 다른 것듣 보다 더 위대하다고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는 나름대로 살아가는 생존의 독특한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어떤 것들은 인건보다도 더욱 길게 살아가거나 엄청나게 오랫동안 생명의 불꽃을 끄지않고 지내는 식물의 씨앗들의 이야기는 정말 충격적입니다. 이러한 사실들 생명의 위대한 사실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떻든 한 4-5년간 이런 생각으로 다양한 형상의 생명체들몹 주어담아 보려는 그림을 그렸는데 그림이 다소 복잡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에는 조금씩 단순화 되어졌습니다. 물론 일부러 그런건 아니었고 저절로 그렇게 되어졌습니다. 색채사용도 빈번해졌습니다. 화면이 단순해진 것은 표현되어지고 있는 사물들이 정리되어진 느낌이며 사물들이 조금은 구체화되이지고 개변작으로 나타났습니다. 풀이면 풀. 새면 새. 꽃이면 꽃 등으로 설명이 단순화되어 나타납니다. 색채도 3가지만 사용합니다. 붉은 색, 노란색. 그리고 백록색입니다. 이는 불당의 단청이나 민화 등을 통해서 옛날에 아주 많이 사용되어졌던 색입니다. 화려하고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하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색상대비입니다. 어찌보면 가장 조용한 서정적 믹빛에 가장 감각적 빛깔의 조합입니다. 어떻든 생명이라고 하는 우리 삶의 본원적 원형의 모습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어찌보면 항상 시작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그림을 대합니다. 그것은 그림이 항상 새로워야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