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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8 | [서평]
백범 암살을 국제적 사건으로 보는 시각 『김구의 나라』 (1993. 박구홍. 도서출판 지리산)
정철성 / 전북대 강사․편집위원) (2004-02-03 16:28:51)
『김구의 나라』에서 작가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한반도의 분단을 고착화하던 시기에 민족주의자 백범이 어떻게 살해되었는가를 추적하고 있다. 작가는 백범이 단순히 이승만 정권의 장애물이었기 때문에 살해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못박고 있다. 물론 우리는 당시 포병 소위였던 안두희가 백범을 저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는 하수인일 뿐이고 배후가 누구인가는 이제껏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작가는 이승만과 그의 수하들이 왜, 어떻게 백범을 암살하려고 광분하였던가를 세밀하게 묘사한다. 백범과 암살자들이 대립할 이유는 많지만 이 소설에서는 부로 반민특위의 활동을 둘러싸고 갈등을 일으킨다.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용납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반민특위의 열성적이었던 민족주의자들의 성향이 무었이었는가는 당시의 정치적 노선이 “당장에 헤아려 보아도 수십 가지가 넘는”형편이었으므로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위의 위원장 김상돈과 백범의 연계는 우리가 민족주의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들이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합의에 도달했음을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노덕술과 같은 인물처럼 친일 행적이 드러날수록 자신이 피해를 입는다는 망상에 사로잡힌 집단이 이승만을 등에 업고 백범 암살을 획책하는 과정의 필연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승만의 정권에 대항한 또 다른 부류에는 남노당이 대표하는 좌파가 있다. 거의 내전의 상태였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당시의 사상 대립은 물리적 충돌이 빈번한 지경이었고, 『김구의 나라』역시 이런 사태를 반영하여 남노당의 활동묘사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백범은 그러나 공산주의자와의 거리를 분명히 한다. 불행하게도 작가는 백범과 남노당의 노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별되는가를 이 소설에서 다루지 않았다. 백범은 사석의 연설에서 “어떤 훌륭한 사상이나 이념일지라도 한가지만 가지고서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것입네다”라고 말한다. 좌파 청년들의 눈에 비친 백범은 “고집불통 이상주의자”였다.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의 양군이 철퇴한 후에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내는 백범은 친일파의 눈에 빨갱이로 비친다. 백범의 태도가 미국의 이익을 저해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작가는 씨아이에서 요원의 입을 빌어 약소국의 민족주의를 미국이 반미로 해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범의 암살에 외세가 어느 정도 개입했는가에 대하여 작가가 내린 결론을 요약하자면 미국 정보부의 방조(傍助)와 일본 보수우익의 교사(敎唆)이다. 일본 우익이 백범제거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이유를 작가는 우리가 흔히 육이오라 부르는 한국전쟁에서 찾고 있다. 피폐한 일본의 전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야 하는데 통일꾼 백범이 결정적인 장애물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암살을 조장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 한국전쟁의 원인이 명확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이런 해석을 통하여 우리는 백범 암살이 국제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백범 알살의 국제적 성격을 밝히기 위하여 작가는 여러 인물을 국내뿐 아니라 북경, 동경, 워싱턴을 비롯한 국제도시에 늘어놓는다. 이들의 상당수는 밀정, 첩자, 요원들이다. 명칭을 무엇이라 하건 이들의 존재는 『김구의 나라』에 첩보영화의 분위기를 담아놓는다. 작가는 백범 김구가 희구했던 통일조국이 어떤 모습이었고, 그것을 되찾기 위해 백범이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밝히기보다는 이미 진부한 의문이 되어버린 ‘누가 김구를 쏘았는가?“를 추적하는데 더 튼 노력을 기울인다. 이런 질문은 독자의 흥미를 끌어내기에는 그만이지만 추리소설이 범인을 지목하듯이 백범 암살의 범인을 찾아내기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암살의 배후는 언제나 모호하다. 이 소설에도 이승만은 결코 암살을 직접 지시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특유의 가래가 스미는 소리를 내더니 “백범은 ....언제나 걱정이야.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줄까?”라고 말했을 뿐이다. 첩보전이 전쟁의 중요한 부분임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전쟁의 결과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첩자의 눈에 비친 세계는 공작의 대상일 뿐이다. 이런 인물은 작가가 그리려는 “살아 숨쉬는 인간과 자연”을 오히려 왜곡시키기 쉬운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김구의 나라』에는 백범 암살이라는 중심 줄거리 외에도 몇 개의 부수적인 줄거리가 더 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이 이동순, 정이경, 허병호의 삼각관계이고, 그밖에 여순반란사건 이후 입산한 빨찌산의 활동, 재일 조선인 노동운동가들의 투쟁, 그리고 씨아이에서 씨급 공작원이 되는 이종범씨의 이야기 등이다. 이동순, 정이경, 허병호는 작가가 창조한 인물들이다. 이동순은 남노당 연락책이 되고, 정이경은 아버지 정교남과 백범과의 교분으로 경교장에 출입하며, 허병호는 암살자의 눈에 들어 하수인이 된다. 이 세 사람이 백범을 둘러싸고 각기 일정한 세력을 대변한다는 구조는 흥미로운 배치이다. 그러나 동순과 이경의 연애담은 시대상황에 걸맞지 않게 대단히 한가하다. 정이경에게는 현실을 파악하는 능력이 거의 없다. 그려는 대책을 세울수 없게 사랑에 눈먼 처녀일 뿐이다. 게다가 이동순은 의지를 지닌 인물이라기 보다는 어쩌다가 상황에 쉽쓸려 버린 인물로 그려진다. 그의 운명에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는 몇가지 사건은 정말 “운명적”이다. 형사에 쫓기던 그는 우연히 정이경네 담을 넘는다. 남운사에서 토벌군에게 걸려들었다가 다시 빨찌산의 지서 습격으로 그들을 따라 입산한 것도 전혀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남노당이 와해 직전이었던 탓이기도 하지만 상당히 빠른 기간 내에 남노당의 핵심부까지 상승했던 그는 갑작스레 탈당하고 백범 앞에 와서 전쟁을 막기 위해 월북하겠다는 결심을 털어놓는다. 이런 사건들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필연성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백범 알살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소설화한 작가의 노력을 높이 사면서도 우리는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김구의 나라』에서 작가 박구홍이 시도하는 해석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는 것인지 평가해야 할 때이다. 분단을 가져온 이데올로기 대립의 세계질서가 이미 와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분단이 엄존하는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면 적어도 우리에게는 이념의 문제가 과거의 일이 아남이 분명하다. 다시 광복절이 다가오는 이 여름에 백범 김구가 꿈꾸었던 나라를 곰곰이 생각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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