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8 | [문화비평]
여성들이 진단하는 남성문제
『남성연구』를 읽고
여 성 문 학 연 구 모 임
(2004-02-03 16:30:28)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들에 의하여 ‘여자가’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의견이 묵살되거나 인격이 깡그리 무시되었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여성들의 발언 역시 ‘여자가 감히 남자한테’라는 식으로 묵살되었을 것이다. 대개의 경우 ‘여자가’라는 말로 싸움을 걸어오는 남성들은 뚜렷한 논리나 주관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감정에 의지한다. 그리고 마치 자신들의 권위와 권리의 많은 ㅜ분을 침해당했다는 듯이 ‘감히 여자가’라는 태도로 여성들의 도전(?)에 응수한다. 바로 이 부분, 즉 삶의 과정 속에서 체화된 남성들의 대(對) 여성의식과 남성의식의 본질을 밝히고자 한 것이 『남성연구 -- 때론 밉지만 함께 가야 할 반쪽에 대한 보고서--』이다. 이 책은 남성 중심의 역사 속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남성들의 현실에 대한 여성들의 이해와 남성 스스로의 반성을 촉구하는 보고서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모두 여자인데, 단지 그들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발언을 무시하는 남성들은 절대로 없기를) 먼저 현대 남성들의 문제를 “남성문제”라는 주제를 독립적으로 선정하여 그 해결을 모색해야 하며 ‘남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오늘날의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빚어내는 마찰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모색의 첫걸음이 남성 자신의 모습에 대한 고찰이라 하겠다.
이들은 먼저 남성문제가 여성문제의 꼭 반대편에 선 마치 동전의 서로 다른 면인 것처럼, 남성들에게도 일 곱가지 콤플렉스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마더 콤플렉스, 능력 콤플렉스, 온달 콤플렉스, 가장 콤플렉스, 허세 콤플렉스, 카사노바 콤플렉스가 그것이다. 이것들은 결국 가장 중심의 가족 구조와 왜곡된 성 문화가 만들어 낸 것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부당한 성별 분리의 해소와 편협한 남성상과 여성상이 아닌 가장 아름다운 인간상을 극복함으로써 극복 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여성의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들 또한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으로부터 ‘남성다운’남성으로 길들여진다. 남성들은 가부장제의 가족구조 속에서 온갖 책임과 의무(특히 경제적 부분에서)를 강요당한다. 남아선호 사상은 여성의 삶에 악영향을 끼침과 동시에 남성의 생애에서도 역시 가장 부담스러운 짐으로 작용해온 것이다. 남성다움의 관문이라 하는 군대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강화시키고 왜곡된 성윤리를 심어준다. 또한 권위에 대한 복종, 경쟁에서의 승리, 물리적 힘(폭력)을 통한 문제 해결, 적에 대한 정복 논리 등을 체득하게 한다. 이러한 것이 남성들의 중심적 가치관이 될 때 그 결정적인 희생자는 곧 남성 자신이 된다. 이러한 문제들은 또한 남성들이 전통적인 남성성을 지키고자 그들만의 놀이문화(술, 고스톱, 포카 등)속으로 그들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음담패설과 북어론을 즐기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과 관련된다. 결국 남성들은 이 다양한 문화 속에서 가정과 직장으로부터 소외 되는,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건강한 문화창조를 위한 남성들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남성상은 각 세대별로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강화된다. 보편적으로 부모들은 육아기와 유년기의 남아들에게 활동적고 능동적인 모습을 원한다. 따라서 이 시기에 남성들은 이미 성 역할을 고정화시키고, 이후 청년기에 보여질 경제적 의무와 가족보호의 무를 져야한다는 가장 콤플렉스와 장남 콤플렉스를 형성하게 된다. 국민학교 교육과정과 중 고등학령기는 보수적인 전통적 하회화가 진행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모든 교육과정을 통하여 유년기에 형성된 성고정관념을 내재화시킨다. 청년기의 남성은 군대와 결혼이라는 두 번의 변화를 겪게 되는데, 결혼 후의 남성들은 책임의식, 즉 가장의식을 심화시키고, 이것은 곧 남성들의 가장 큰 짐으로 작용하여, 이들을 위축시킨다. 중년기의 남성들은 직장 내에서의 갖가지 문제(예컨대 세대간의 갈등)와 가정 내에서의 소외문제를 겪는다. 노년기에 이르면 사회적 노동으로부터 괴리되어 경제력을 상시하고, 가정내에서의 정서적 소외로 대부분 고통스런 노년을 보낸다. 이렇게 볼 때, 이제 남성들은 남성다움의 허상을 깨고 건강한 가족간의 유대감을 이어나갈 것이 요구된다. 위 신세의 남성들에게서 보여지는 남성상, 남편상, 아버지상에 대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이며 발전 가능성을 드러낸다고 낙관하고 있다.
남성다움의 대표적인 이미지인 ‘강한남성’은 역사를 통해서 형성되었다. 수렵사회에 접어들면서 남성성년식을 통해 남성다움의 이미지는 통솔력있고 강한 것으로 고정되기 시작한다. 이 ‘남성다움의 형성은 사회적으로 강요되어 개개의 남성을 심리적으로 압박(’강한 남자만이 남자이고, 그렇지 않은 남자는 하찮은 남자‘라는 식의)하여 제반 육체적 정신적, 사회적 무제를 포괄하는 ’남성문제‘를 발생시키게 된다. 이것은 고대 노예제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를 거치면서 더욱 확대 심화되었고 자본주의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를 거치면서 더욱 확대 심화되었고 자본주의 사회로 들어와서는 복잡하고 다양한 남성문제를 양산해 내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 접어들면서 여자는 어머니이자 곧 가정부로, 남자는 노동자이자 경제력의 전담자로, 즉 돈을 버는 사람으로 성역할이 고정 강화되었다. 따라서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남선다움’은 보편적으로 책임감, 합리성, 자제력, 결단력 등으로 특징지어지는데, 이로인해 남성들은 자신이 부양해야 하는 여성과 가족에게는 보호적이고 지배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남성들은 가족 부양자로서의 역할수행을 위한 능력과 업적을 쌓아가는 동안 가정 내에서의 아버지 역할이 소흘해지면서 아버지 부재현상과 결부된다. 이는 남아들이 남성다움을 인식할 때 반(反)여성다움을 남성다움 것으로 규정하게 되는 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결국 사회생산과 가정내에서의 재생산노동이 분리될수록,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여성다움‘과 ’남성다움‘에 짓눌린 다양한 인간문제가 야기될 것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남성해방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1950년대에 히피족에 의해 가족부양이라는 남성역할이 최초로 거부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성해방운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미국에서 최초로 일정한 형태를 갖춘 ‘남성해방운동’이 출현하게 되었고, 독일, 스웨덴 등지에서도 다양한 집단적 노력을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남성해방운동이 맹아가 보이는데,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이나 부성회복을 위한 노력(예컨대, 일부기업에 국한된 애기이기는 하지만 배우자 출산시 휴가제도의 확보)이 그것이다.
이상과 같이 가부장제의 가족구조 속에서 그리고 성혁할과 ‘남성다움’에 대한 통념으로 인한 억압에 의해 여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달리는 것이 우리사회의 남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그라나 그렇다하더라도 현재 우리사회의 남성들은 여성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기득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권리는 권리가 아니라, 남성문제를 유발하는 총체적인 남성 억압 기제인 것은 물론 여성억압의 기제로 작용한다는 것을 이제는 깨달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또한 여성해방(궁극적으로는 인간해방)을 위해 깨뜨려야 할 남성들 내부의 벽은 여전히 많다는 점을 서로 인식해야 할것이다. 또 하나 직장에서 시달리고 가정으로부터 소외되는 남성들이 ‘강한 남성’과는 거리가 먼 불쌍한 몰골을 하고 있다 해서 (여성들의 일방적인 인내를 강요하는 식으로) 여성해방 운동이 제기하는 문제를 약화시키거나 무화시키는 논리로 악용될 여지를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여성들이 여성들의 자유롭고 자주적인 삶을 주장하는 것이 결코 남성들이 권리를 침해하거나 전복시키고자 하는 것이 나니라. 더불어 해방되고자 하는 것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남성문제와 여성문제는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므로, 우리는 서로가 때로는 정말 밉지만 결국엔 함께 가야 할 반쪽 들이다. 되도록 빠른 시일내에 남성들 스스로에 의한 남성해방운동의 주장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