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8 | [저널초점]
아름다움을 사고 파는 미인대회
윤덕향/발행인
(2004-02-03 16:31:35)
지리한 장마가 끝난 다음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푸르고 따가운 햇살도, 끓는 도심의 아스팔트도 산바람, 바다바람속에서는 부질없는 기승일 뿐이다. 각급학교의 방학에 때맞춘 바캉스에서 삼복더위는 한물갈 수 밖에 없다. 이름난 피서지로 향하는 길마다 넘치는 차량을 보면 선진국 문턱이라는 말이 실감나며 젖과 꿀이 넘쳐 흐르는 가나안이 정년 이 땅인가 싶다. 피서여행이 보편화된 지금 국내 피서지를 다녀올 것이 자랑일 수 없고 못간 것이 화제일 수 있으니 체계빚을 얻어서라도 피서여행을 떠나야만 한다. 그 명분이 찌든 생활에서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내고 새로운 활력을 채우겠다는 것이든, 눈에 넣어도 아프지않을 자식들의 성화이든, 눈치를 힐끔거리는 여우같은 마누라의 소리없는 압력탓이든 최소한 가장이라는 체면과 위신을 위해서는 피서를 떠나야만 한다. 하긴 피서지에 가면 세상사 즐겁기만 한 선남선녀들이 지천이니 눈요기로라도 좋을 법하다. 아마 그 탓으로 붐비는 피서지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돈 주고 미인으로 뽑힌 사람은 없지만 미스XXX 진이나 선보다도 더 미인인 사람도 많다. 재수좋으면 돈이야 개입되었든 말았든 미인 선발대회나 연예인들도 구경할 수 있으니 너도나도 짐싸들고 피서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다.
최고의 가치인 진선미중 아름다움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우가 다르지만 예술작품의 경우 돈으로 거래되는 실정이고 보통 사람들에게는 비싼 그림이 좋은 그림인 것같고, 개런티가 비싼 음악가가 훌륭한 음악가인 것처럼 보이는 판이니 아름다움은 돈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미쓰 코리아 선발에 돈이 개입되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것이 비공개로 진행되었다는 것이 문제인 것같다. 그러니 아파트 채권입찰처럼 최저가격을 정해놓고 입찰 금액에 따라서 미인의 등위를 정하여 선발하면 공정할 것이다. 세계 대회에 파견할 경우에도 당첨금액을 공증하여 보내면 그곳 심사위원들이 참작할 것이니 참으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인 것 같다.
억지소리라고 비난하지 말지어다. 미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하여 밥을 굶고 코를 높이고 턱을 깎아내고 오이와 달걀을 얼굴에 처바르고 다리를 방망이로 문질러 각선미를 가꾸고 샴푸와 맛사지를 하는 돈이면 당첨에 필요한 돈이 될 수도 있다. 미인선발대회라는 것이 타고난 아름다움을 겨루는 것보다는 누가 더 손질을 더 많이 했는가를 겨루는 것이니 아예 현찰 액수로 결정하는 것이 그같은 수고를 아낄 수 있어 합리적이 아닌가? 그도 아니면 어차피 한국적 미인을 뽑는 것이 아니고 세계속의 미인. 즉 외제 미인을 뽑는 것이니 미인 대회를 없애고 아예 서양미인을 수입해서 한국의 여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방안도 있을 법하다. 그러면 깎고 높혀서 굳이 서양여자에 가까운 여자를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니 말이다.
화폭을 현란한 색채로 빈 틈 없이 채운 그림은 아름답지만 이중섭의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리다 만듯하다. 색기가 흐르는 마돈나의 노래에는 흥겨움이 당겨있만 나나 무스쿠리의 노래에는 절제된 훈계만이 있다. 어느 것이 아름다운가를 물을 필요는 없다. ㄴ운을 시퍼렇게 칠하고 화운데이션, 오이 마사지, 콜드크림, 크린싱 크림, 밀크로숀, 레몬로숀, 이런저런 로숀과 크림으로 얼굴을 보대하고 향수를 물파스처럼 뿌려댄 여성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것은 성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일 뿐이지 남자와 더불어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또다른 존재로서의 여자는 아니다. 공장에서, 밭에서, 부엌에서 힘든 일로 콧잔등에 함초롬이 땀방울이 맺힌 그런 여자가 아니다. 한없는 사랑으로 아이를 둥켜안은 어머니로서의 여자가 아니다. 남성우위의 사회와 언론매체가 이런 저런 상업종사자들과 어울려 만들어낸 작품일 뿐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본성의 하나로 비난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이유와 동기야 어떻든 제자식이 남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싫어할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미인대회에 제자식을 내보내는 심정을 이해 못할 바 아니오 잘난 사람이 잘난 것 자랑하는 것을 시비할 일도 아니다. 다만 인간 본성의 하나로서의 미를 겨루는 일에 돈이 개입되고 여자를 깎고 다듬어 외제에 가까운, 상품으로서의 여성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하긴 아름다움보다 윗단계인 진과 선도 돈으로 좌지우지되는 세상이니 미에 돈이 개입되지 말란 법이 없다. 정의 사회구현이 부정 사회의 총체적 추구였던 것처럼 드러나고, 민족적 민주주의를 부르짖던 사람이 반민족적 군사독재체제를 구축한 사회이니 말이다. 이 땅에 군사정치를 도입한 주역중의 하나가 유신 독재체제이후 주어지는 민주주의로 이행하려 하였다는 말을 뻔뻔스럽게 할 수 있고, 굴욕적 한일회담을 성사시킨 공으로 일본통을 자처하며 집권당의 최상층에 포진하고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그런데도 사회의 목탁이라는 방송국의 우리 현대사의 사건들을 재조명하는 연속극에서 고뇌하는 정치인, 박해받은 정치인으로 미화되는 판이니 미인대회에 출전하는 여성들이 온갖 화장품을 덕지덕지, 켜켜로 얼굴에 덧바르는 것쯤은 차라리 애교있는 분장일 뿐이다. 또 뉴스를 진행하는 여자도 실력보다는 우선 얼굴이 예뻐야된다는 모 방송국의 얘기도 들리는 판이니 얼굴이 납섞인 화장품을 처바르는 여성을 탓할 수도 없다. 그처럼 얼굴에 화장품을 처바르고 돈으로 미쓰 코리아를 사도록 만든 것은 그보다 더한 분장이 통용되는 사회, 여자가 아닌 여성이기를 바라는 사회의 총체적 책임인 것이다. 미인대회든, 일본 것을 쏙빼닮은 방송물이든, 국민학생 책읽는 것처럼 어색하고 불안하게 진행하는 뉴스이든 우리 앞에 나서는 여성들을 비난하지 말자. 켜로 앉은 얼굴 화장을 비난하지도 말자. 그들의 화장보다 더 두꺼운, 깎아도 드러나지 않을 분장과 한국인으로서의 제살이라곤 한점도 남아있지 않을 정신적 외국인이 지도층에 앉아있고 여자가 아닌 여성이기만을 요구하는 사회이니 말이다.
분장되지 않은 진선미를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사회를 꿈에서라도 보고싶다. 아니 참으로 서양여자가 아니라 한국 여자가. 얼굴을 깎고 높이고 화장으로 켜를 이룬 여성이 아닌 여자가 미쓰 코리아에 뽑히는 것만이라도 보고 싶다. 어쩜 이 여름 피서 가자는 성화에 졸리다 못해 꿈꾸는 백일몽에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