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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9 | [문화칼럼]
쓰레기의 나라, 공해의 나라로 가고 있다
신조영/원광대 한의과 대학 교수(2004-02-03 16:44:42)
30여년전 태풍 노라호가 크게 그 위력을 떨칠 때였다. 기상정보 하나도 제대로 입수하지 못한채 화엄사를 찾아 노고단을 올랐던 지리산. 그로부터 10여차례의 산행으로 끈끈한 인연을 맺었든 백무동의 멍석바위․하동바위․망바위․장터목․제석산․통천문․천왕봉․세석평전․토끼봉․날라리봉․반야봉․뱀사골 등 정겹고 또 아끼고 싶은 구석구석이었으나 몇해전 자동차편으로 노고단을 다녀오면서 한없이 울고싶은 슬픈 마음을 간직하고 내려온 일이 있었다. 산이 좋아 산을 찾고 또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만이 다녀야 할 그곳이 상식밖의 행동을 취하는 어리석음으로 더렵혀지고 황폐화되는 자연경관이 비단 이곳 뿐이랴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땐 마음속 깊이 분노까지 치미는 것을 어찌하랴. 생태계가 어떻고 무엇이 어떻고 여기저기 전문가를 총동원해서라도 길하나 뚫는데도 신중을 기하여 자손만대 부끄러이 없는 유산을 남겨야 할 책임이 있는 데도 터널하나 만들지 않고 산을 갈라 아스팔트포장길을 내어놓으면 그곳을 보금자리삼아 기어다니고 뛰어놀던 짐승드이 불편을 느낄 것은 물론이려니와 산오르막길에서 새까맣게 내어뿜는 자동차의 매연이 사람에게도 해로운 아황산깨스와 벤조필렌이라는 발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연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상상만 하여도 끔찍한 일인 것이다. 뚫어놓은 길마저도 여기저기 위험천만한 곳이 많을 뿐 아니라 안전시설도 허술하여 대형사고를 부르고 있는 곳이 한두군데가 아닐진대 한심한 노릇이 아니겠는가? 지난 6월 19일 지리산에 가겠다는 젊은 직장동료들을 따라 백무동에서 일박, 20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어둠속의 한신계곡을 따라 산행을 시작하였다. 언제나처럼 울퉁불퉁한 크고 작은 돌맹이가 바닥에 깔려있는 계곡이라서 불편하고 어려운 발길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수많은 등산객을 위하여 등산로정비도 있을 법한 일인데도 이런곳 까지는 아직도 손이 미치지 않는가 보다. 하동바위에 이르니 하이얀 함박꽃 목본의 산목련(木本의 山木蓮)의 탐스럽고 은은한 향기에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이 여기저기 나타나기 시작한다. 도시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묘한 풀냄새․꽃냄새 그리고 무어라고 지즐대는 새들의 노랫소리․바람소리․물소리 이 모두가 자연의 어우름이 가져다 주는 산의 맛이 아닌가. 오랜만의 산행이라서 옛날보다는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조금 가다 쉬고 또 조금 가다 쉬고 동료들게 조금이라도 짐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마음으로 오르기 쉬운 등산로에서는 속도를 빨리도 하여보고 정상(천왕봉)에 이르니 먼저 도착한 동료들이 힘차게 박수를 치면서 함성을 지르고 있지 않는가. 장터목을 들르지 않고 제석봉으로 곧장 올라왔다는 선발대와의 시간차는 약 30분정도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0여차례의 산행으로 정이 들을대로 들은 지리산이라지만 종주등반다운 것은 2-3회에 불과할 정도로 일기가 고르지 못하고 태풍을 자주 만나 혼줄이 난건 한두번이 아니었다. 천왕봉에서부터 세찬 비를 맞으며 백무동까지 내려오는 곤욕도 두어번 치루었을 정도이니 말이다. 헌데 오늘같이 이렇게 맑은 날씨는 처음인 듯 싶었다. 반야봉․노고단․정령치가 훤히 보이고 멀리는 무등산자락까지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행운중의 행운을 잡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중산리계곡․칠선계곡을 훤히 내려다 보면서 오르던 길 다시 밟고 내려와 긴긴 산행을 마치고 꿀맛같은 막걸리로 목을 추기는 기분이야 어이 비길데가 있으리야. 대여섯살로 보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부부간에 열심히 오르는 모습, 60넘은 노인들이 구수한 농담을 주고 받으며 산에 오르는 모습, 몇 십만원짜리 보약과도 비길데 없는 산행이라고 격려해주는 젊은이들의 모습, 건강한 몸과 마음의 만남이라서 시싱한 녹음의 6월 산행이 더없이 즐거울 수 밖에 없었다. 제석봉에는 오래전에 불타 없어진 삼림이 하얀 고사목처럼 버티고 서있어 흉하게만 느껴지는데 구상나무인듯한 조그마한 나무들이 정성스레 심어져 있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였으며 천왕봉 가까이 설치된 쇠줄은 망가져 험상궂은 모습이었고 바로 옆에는 산사태가 전개될 조짐이 심상치 않게 보여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마구잡이 개발이 가져다 주는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크지만 차라리 개발을 안하면 다음 세대의 몫으로 넘어갈 수가 있지 않을까? 졸속행정의 탈을 벗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이 보다 여유있는 발걸음을 천천히 따복따복 내딛으며 신중론을 펴나가는 자세로 일관되어 왔다면 오늘과 같은 처참한 자연환경은 면했으리라 믿는다. 공중도덕이 토양화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 이산저산에 마구 길만 뚫어 놓으면 쓰레기의 나라. 공해의 나라를 재촉하는 결과를 면치 못하리라. 가보지는 않았지만 이웃 일본 등지에선 산을 찾는 사람들이 웃음소리․말소리도 크게 내질 않고 입산도 그 숫자를 시간대에 묶어 제한하고 있다는 소식이고 보면 조용히 자연을 즐기려 산을 찾는 자세부터도 후진국을 면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통감하면서 겸손한 산행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한 말로만 하는 자연보호, 공무원이나 자연보호단체에서나 외치는 그러한 목소리의 차원을 넘어 국민 모두가 스스로 알아서 자연보호를 몸소 실천할 때 우리의 산천은 보다 아름다워지리라 믿어 의심치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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