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8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관심과 애정에 배신감 안겨준 영화
「101번째 프로프즈」
장세진/방송평론가
(2004-02-03 16:47:33)
올 여름 우리 영화계엔 두가지 사건이 터졌다.『101번째 프로포즈』의 조기종영파문과 『서편제』의 최다관객동원 기록 경신이 그것이다. 전자는 지난 7월 『101번째 프로포즈』를 상영하던 중앙극장(서울)이 제작사 신씨네에게 계약을 어기겠다고 션전포고함으로써 비롯되었고. 후자는 단성사(서울) 상영 1백 22일만인 8일 9일. ’90년 『장군의 아들』이 세운 67만 8천 9백 46명의 기록을 깨고 지금도 계속 상영증인 것을 말한다.
앞에서 ‘터졌다ꡑ는 서술어를 쓴 것은, 물론 전자 때문이다. 중앙극장측이 상반기 한국영화 상영으로 인한 손해를 만회한다는 이유로 미국직배영화인「쥬라기 공원」개봉을 위해 “하루 관객 2천명 이상이면 계속 상영한다ꡓ는 계약 내용을 위반한 것이다. 개봉 한 달도 안된 「쥬라기 공원」의 관객동원수는 60만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씨네의 반발은 말할 나위도 없고 한국영화인협회(이사장 유동춘)가 중앙극장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협회는 “이번 문제는 제작사인 신씨네와 중앙극장만의 분규가 아니라 우리영화의 사활이 걸린 싸움ꡓ으로 규정하고 강경 대응키로 했다.
또 민주당의 조윤형의원과 노무현의원은 2백만윈의 격려금을 전달하고 “한국영화들 지키는데 앞장서달라ꡓ고 위로한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결국 신씨네가 줌앙극장측이 제시한 “차루제작 영화 1편을 원하는 날짜에 상영해 준다ꡓ는 안을 받아들여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칭체된 우리영화의 현장과 맞닥뜨린 처참함과 당혹감을 감출 길이 없게 되었다. 이래저래 우리영화는 채이고 찢기기만 하는 것이다. 『101번째 프로포즈』 는, 이를테먼 사연이 있는 우리영화인 셈이다.
배 위에서 요란하게 제작신고식까지 치루었던『101번째 프로포즈』(오석근 감독)는 『결혼 이야기』 흥행성공에 힘입어 쏟아지고 있는, 이른바 라이트 코미디 영화 가운데 한 편이다. 부담없이 볼 수 있는게 장점이지만 사실은 봐도 그만이요 보지 않아도 큰 탈 날일 없는 그런 영화인 것이다.
「101번째 프로포즈」의 서자구조는 지극히 간단하다. 회사의 만년 대리이며 39살 노총각 영섭(문성근)이 우여곡절 끝에 첼리스트 한지원(김희애)과 결합하게 되는 것이 주요 얼개다 그런 이야기는 예고처럼 대단히 ‘웃기게ꡑ펼쳐진다. 「결흔 이야기」, 「미스터 맘마」등으로 재미를 본 젊은 영화인 집단 신씨네다운 틀과 기법이라 할 만하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것은 약간 꼬인 말이다. 한 감독의 작품세계가 다양하게 펼쳐지듯 남다른 기획력과 참신한 아이템으로 계속 새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제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젊은 영화인들이 벌써 세번째나 같은 꼴을 우려먹고 있는게 한심해서 한 말이다.
어쩌다 소문을 듣고 그 가운데 1편쯤 본 관객이라면 혹 모를까 더 없는 관심과 애정으로 3편 모두 만난 사람에게 『101번째 프로포즈』는 심한 모욕과 함께 배신감 마저 안겨준다. 이제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자. 그 점은 『결혼이야기』와 『미스터 맘마』에 대한 차별성이 되기도 할 것이다.
너무 심한 과장과 회화로 진지함이 결여되었지만 이른바 신세대의 사랑법과는 거리가 먼 이
야기들이 우선 눈에 띤다 이 시대에선 사실상 찾아보기 힘든 구영섭의 헌신봉사형 사랑이 그것이다. 차라리 못났다고 표현해야 할 구영섭의 사랑은, 그러나 나이든 관객들에겐 옛적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구영섭이라는 성격창조가 돋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가령 실내복으로 있다 한지원의 전화를 받을려고 양복 상의를 걸치는 영섭의 모습에서 과연 사랑하는 여자는 지상 최고의 존재였던가를 묻게 된다. 고급레스토랑에서 지갑 사정을 확인해보고 양주 이름을 더듬거리는 모습은 한번쯤 그런 경험을 했다는 공감의 웃음을 짓게 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결혼 이야기』,『미스터 맘마』 보다 훨씬 현실적 세계를 보여준다. 물론 비가 오는데도 양복차림으로 길바닥에 주저 앉는다든가 달리는 트럭 앞에 멈춰서는 프로포즈 등 회화와 극대화가 거슬리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런 대로 소시민의 일상적 모습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하는 말이다.
또 지원이 목욕하면서 비눗물에 몸이 미끄러져 전화기를 물 속에 빠뜨리는 등 ‘박진감ꡑ 넘치는 코미디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웃음이야말로 진정한 코미디 영화의 요체라 할 만하다. 웃기기는 하되 억자가 아닌 자연스러운 웃음 말이다.
그러나 『101번째 프로포즈』는 역시 신씨네 아류에 머물고 만 영화일 수 밖에 없다. 영섭의 구애에 反한 한지원의 성격창조가 단적인 예다. 첫사랑에 대한 상처를 간직하는 것까지는 그런대로 지켜볼 만한데, 절정을 다시 뒤집으로써 그런 인상이 든다. 외모가 같다고 새로 나타난 남자에게 빠져들 만큼 한지원을 형편없는 여성으로 그려놓은 것이다.
공사판에서 일하는 영섭을 찾아나서기 위한 복선쯤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 결말
도 견강부회였다. 이야기를 적절하게 맺지 못한데서 온 스스로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영섭의 지극정성만으로도 지원은 옛사랑의 사슬로부터 벗어날 충분조건이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조기종영 파문에도 불구하고 『101번째 프로포즈』의 관객은 1O만명을 약간 웃돈 것으로 알려졌다. 2O대 관객의 취향에 영합한 때문으로 보이지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아무리 더운 밥 찬 밥 가릴 게재가 아닌 우리영화 침체현실이더라도 완성도를 통한 작품으로 승부를 걸어야지 값싸게 특정계층의 입맛에 맞추는 영화여선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