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2 | [문화시평]
형식치레, 그 벽이 의미하는 한계
제33회 「전라예술제」결산
전철우 전북도민일보 문화부차장
(2004-02-05 10:22:51)
전북 지역의 종합 문화예술 축제로 자부하는 전라예술제(全羅藝術祭)가 10월 21일∼27일까지 전북예술회관을 비롯한 전주(全州)일원에서 치러졌다. 올해로 서른세 돌을 맞은 이 행사는 '97무주 - 전주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 기념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21개에 달하는 많은 행사가 준비 됐음에도 예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연례행사에 그쳤다.
성년을 넘어서 장년으로 접어든 나이답게 성숙함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던 전북도민들은 이번 예술제를 보면서 실망과 함께 많은 비판의 소리를 쏟아냈다. "전라예술제는 더 이상 이 지역 문화예술의 대표적 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전북인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남은 것이라고는 '「예향(藝鄕)」'이하는 긍지 하나밖에 없는 전북인들로서는 당연히 나와야할 울분의 목소리인 듯하다.
예술인들의 자부심이 실린 이 행사가 진부함을 넘어서 뒷걸음질치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관계자들의 자성(自省)과 함께 발전적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에 와 있음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지못해 치러야하는 부담 때문에 졸속의 형식치레 행사로 그치는 예술제는 오히려 예술인들의 참여의식마저 짓밟는 것이다"는 것이 집행부에 대한 비난이다. 따라서 이 행사를 주관해오고 있는 예총전북도지회는 ‘행사 때마다 나오는 말’정도로 치부하기엔 너무 곪아버린 시점에 다다랐음을 인식하고 정중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이번 제33회 전라예술제에서 나타난 몇 가지 미비점을 되짚어 얘기해 보고자 하는 것도 주관처인 예총전북도지회를 매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발전의 계기를 모색해 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됐음을 밝혀둔다. 먼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미비점은 미숙한 기획력이다. 올 행사의 이슈로 내건 '97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기념 이라는 것 자체가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을 뿐 아니라 내용에 걸맞는 행사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또한 지난해 치렀던 행사를 대부분 그대로 답습했고, 다만 연예협회의 '전북가요제'정도만 새로 기획됐던 것도 안이한 기획 자세를 탈피하지 못한 점이었다.
다음으로는 행사 진행의 미숙함이다. 조직적인 체계가 결여됨으로써 유사시 대비는 물론 일부 공연이 취소되는 등의 문제점이 올해도 반복됐다. 본 행사 첫날 첫순서로 마련된 개막축하 거리축제의 경우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강행과 취소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인 끝에 강행을 했으나 당초 기획했던 것보다 부실한 구성과 악천후 등이 겹쳐 시민들에게는 하나의 해프닝쯤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또 군산 예총의 뮤지컬「진포대첩」공연은 예술회관 측과의 협조 미비로 낮공연이 취소됐고, 밤 공연도 엉성해 시민들의 기대에 못 미쳤었다.
특히 공연의 경우 가끔 야기되는 행정부서와의 견해차로 인한 문제 - 예를 들면 세팅(무대장치)시간이 필요한 공연팀과 근무시간 및 다른 공연순서와의 시간 조정에 애로를 겪는 행정관계자와의 마찰 -의 근본적 해결이 시급한 것도 올 행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중의 하나이다. 예술회관 설립당시의 편제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짐으로써 관리요원(기술직)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이런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참가단체들의 참여의식 부족과 일부 단체의 끊임없는 내분도 시정돼야할 점으로 지적된다.
이 행사의 특장 부문으로 12회 째 치러진 「전국농악경연」의 경우, 주관 단체인 국악협회전북지부가 행사 며칠 전까지 내분에 휩싸여 무산될 위기에까지 몰렸다가 이희수 현지부장이 가까스로 수습, 겨우 행사를 치러낸 것이 그 예이다. 미술 사진 건축 문학협회 등의 행사는 대개가 연례적으로 치러내는 전시위주로 새로운 것이 없었다는 것도 지적사항중의 하나였다. 다만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무난히 행사를 마친 국악협회의 전국농악경연대회, 도민들의 참여가 가장 컸던 연예협회의 전국노래자랑과 전북가요제, 정주예총의 정읍사 가무극 공연 등은 나름대로의 열정을 보여준 것들이어서 다행한 일이었다.
행사의 규모나 예산의 규모는 33년 전에 비해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러나 도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의식과 수준의 성숙도는 이보다 몇 배 더 상승해 있음으로써 양(量)보다는 질(質)의 문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전라예술제를 명실상부한 이 지역의 종합문화예술축제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집행부의 성실한 기획자세와 문화예술인들의 적극적인 참여의식, 그리고 행정당국의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색한 문화정책(예산지원 등)의 탈피 등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내년부터는 전면적인 지망자치시대가 시작되는데 이를 계기로 문화예술의 획기적인 반전 바탕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형식에 치우치기 쉬운 관(官)주도의 문화정책에 의존하기보다는 민(民)주도의 자생적 문화사회의 정착이 예향전북(藝鄕全北)의 맥을 이어갈 수 있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총전북도지회는 예산의 열악성만 탓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비판들이 예술인들의 대표적 단체로써의 「예총」을 인정하는 마지막 애정의 표현임을 냉철히 파악, 겸허한 자세로 전북지역문화의 내일을 위해 헌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