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2 | [문화시평]
전북의 음악현실이 보인 무대
호남 오페라단『춘향전』
문윤걸 우석대 강사 사회학
(2004-02-05 10:23:26)
지난 11월 9일과 10일 호남오페라단 제7회 정기공연으로 오페라 춘향전이 전북학생회관에서 3차례 무대에 올려졌다. 춘향전은 그랜드 오페라로서 오페라가 가지는 종합예술로서의 기능을 고려할 때 이곳 전북지역 음악의 현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금번 춘향전 공연에서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공동연출가로서 전문 오페라 연출가가 아닌 연극연출가를 기용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한국 연주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연기미숙이나 표정 및 몸짓의 어색함을 해결하고 무대장치나 세트 등에 연극적 요소를 도입함으로서 보다 역동적이고 사실적인 무대로 꾸며나가기 위한 방편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이런 기획 의도가 성공적으로 달성된 것 같지는 않다. 출연자들의 연기는 과거와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표정이나 동작의 어색함 등도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었다. 오페라는 기본적으로 연극에서 출발한 만큼 극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출연자들은 안정된 소리를 확보하는 일에만 급급했다. 더불어 오페라는 듣는 즐거움 못지않게 보는 즐거움도 대단히 중요해서 무대 디자인이나 의상, 그리고 출연자들의 안정된 동작 등이 청중에게 충분한 만족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오페라뿐만 아니라 어떤 공연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청중의 집중력을 최고로 끌어올려 연주자가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고 최상의 조건에서 모든 역량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일게다. 이는 연주자와 청중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암묵적으로 신뢰를 보일 때에 가능하다. 한국의 전통음악은 청중과 연주자 사이에 적극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연주가 계속되는 동안 청중은 수동적인 관람자의 입장이 아닌 연주 중간 중간에 추임새를 통해 적극적으로 연주에 개입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로 되어있다. 그러나 서양음악은 연주가 시작되면 청중을 일방적으로 연주자의 연주에 대해서 전적으로 수동적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절대로 연주자의 연주를 방해하는 어떠한 행동을 해서도 안 되며 연주가 끝나기 전까지는 청중의 어떠한 감정도 표현해서는 안 되는 폐쇄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각 음악이 보이는 특성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다.
이처럼 청중과 연주자 사이의 긴장된 관계는 서로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확보해야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런데 대개의 연주자들은 성공적인 연주회가 되지 못하는 원인을 청중들에게서만 찾으려고 한다. 물론 무례한 청중들이 연주자에게 얼마나 심리적 불안감을 가져다주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잘못은 연주자에게도 있다. 연주자가 항상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들 앞에서만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연주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세계를 널리 알리고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예술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선교사적 사명도 함께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연주자들은 어떠한 성향을 가진 청중 앞에서건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기량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이번 춘향전 공연에서는 밤공연은 그래도 조금 나았지만 낮공연에는 학생 청중이 많았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공연장을 찾았다기 보다는 현장학습의 형태로 동원된 듯 보였다. 이러한 운영을 절대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 지역에서의 오페라는 1년에 겨우 한차례뿐이고 이런 기회에 색다른 문화를 접하게 해주는 것도 교육적 측면에서 매우 건전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한 청중들을 어떻게 연주에 몰입하게 할 수 있을까이다. 필자는 이를 9월5일 같은 장소에서 있었던 양성원 첼로독주회의 경우와 비교해서 말하고자 한다. 그날도 학생 청중이 대거 동원되었다. 그래서 연주회가 시작되기 전까지 필자는 그날 연주회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갖지 못하였다. 그런데 소란스럽던 공연장이 연주가 시작되자 그 어느 연주회에서보다 더 좋은 분위기를 연출해냈다. 이는 전적으로 양성원의 기량 때문이었다. 양성원은 아무런 무대장치도 없는 썰렁한 무대에서 단지 반주자 한사람만을 대동한 채 어린 청중들을 압도해냈고 그날 공연은 매우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공연이 되었다. 이와 비교해서 춘향전 공연은 어린 청중들을 압도하는데 전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화려한 의상을 입고 버라이어티하게 등장한 제1막부터 전혀 청중에게 반응을 얻지 못하였고 청중도, 출연자도 모두 짜증스러워 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이것이 전적으로 어린 청중들의 잘못만은 아닌 것 같다. 객석의 분위기가 다소 어수선하기는 했지만 가수들의 성량이 풍부하지 못해서 청중들은 그 가수가 무슨 노래를 하는 것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으며 노래의 내용과 감정이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
또 오페라 음악을 담당한 시립교향악단은 연습부족임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무대 위의 가수와 호흡을 같이 하려는 노력은커녕 정확한 소리도 찾지 못해 밀도 있고 응집된 연주를 들려주지 못했다. 이날 시향의 연주 자세는 현재 시향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와 더불어 더욱 안타깝게 여겨졌다. 현재 전주시향은 상임지휘자 선정과 단원들의 복지문제, 음악적 기량향상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많은 시민으로부터 지원과 동의를 전혀 얻지 못하고 있는데 이러한 여러 가지 문제가 단원들의 동기유발에 저해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향의 구성원들이 진실로 시향의 발전을 원한다면 시향은 시민들의 세금에 의해 유지되는 단체이며 시향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기능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일의 전후 사정을 정확히 짚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향이 시민들에게 좋은 연주를 들려 줄 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문화예술단체들은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는 일이 행사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여길 만큼 문화예술행사에 대한 이 지역의 재정적 지원은 척박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할 사실이 있다. 충분한 재정확보가 성공적인 행사를 그것으로 다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단체들이 성공적인 행사가 되지 못하는 이유를 재정문제에서만 찾으며 행사의 실패를 지적받을 때마다 돈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면죄부처럼 사용한다. 마치 돈만 있으면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이다. "돈이 없어서"라는 말이 물론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긴 하지만 돈이 없어도 잘 해내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최근 전북지역의 연극과 무용단체들이 전국대회에서 거푸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들 단체들이 과연 풍요로운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 지내왔나?
전통적으로 다른 예술장르들보다 음악분야가 인식전환이 느리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사회의 다른 부분들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고 여타예술장르들이 건강한 사회문화 건설의 한 축으로서 그 역할을 인식하고 당당히 앞장서고 있는데 반해 여전히 음악분야는 왜곡된 엘리트 의식에 사로잡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양음악이 여전히 고급문화로서 위치하며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만을 대상으로 삼기를 고집한다면 서양음악은 우리의 일상과 영원히 유리되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음악인들의 적극적인 인식전환이 요구되는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