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2 | [문화와사람]
전북연극, 미래가 탄탄하다
전북대 연극동아리『기린극회』
김연희 문화저널기자
(2004-02-05 10:26:41)
전북 연극계에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왔다. 젊음과 패기로 연극의 참맛을 알아가고 있는 젊은 연극인들이 전국대회에서 대상의 영예를 안아왔다.
전북대학교 연극동아리 기린극회가 제 12회 전국대학연극제에서 가져온 이번 쾌거는 전북연극의 탄탄한 힘과 밝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기린극회 33년의 역사에도 처음으로 기록에 남게 될 이번 수상은 단순히 대학 내의 동아리 한 단체가 전국대회에 참가하여 좋은 결실을 가져왔다는 보이는 현상보다 더 큰 의미를 담아 바라보고 싶다. 기성극단이 수상했을 때보다도 더 많은 축하와 격려를 받은 기린극회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연극의 순수한 맛을 진하게 전해주는 극단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61년 박동화 원작『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를 창단공연으로 극회 활동을 시작해 매년 세 차례의 정기공연을 가지면서 극단 활동력을 다져온 기린극회는 연극이 무엇인지를 한창 느껴가며 배우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기린극회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극단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여서 그런지 이번 수상의 기쁨은 더욱 컸다고 한다.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공연을 하자는 막연한 생각을 올해 초 이창목 원작 『하늬』로 작품을 결정하고 연습, 예선, 본선은 공연을 치러내기 까지는 유난히도 무더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9월말 드디어 『굼벵이벌의 천지』라는 제목으로 학우들에게 첫선을 보이고 심사위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연을 마치고 전국 48개 대학 중 예선을 통과한 9개 대학 대열 속의 일원으로 국립극장소극장 무대를 뜨거운 열기로 달구어냈다.
"서울에서의 대극장공연은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학교 안에서의 대강당 무대 공연과는 느낌이 달랐습니다. 서울공연을 위해 예선 통과 후 설계도를 놓고 무대배치와 배우들의 동선을 다시 수정하고 많은 시간 연습을 했습니다. 조명이나 의상 등 그 밖의 연극무대 감각을 익히는데 좋은 기회였습니다." 서울의 무대 감각을 앞으로 공연에 활용하겠다는 연출가 유덕철씨의 말이다.
굼벵이가 고구마순을 갉아먹듯이 백성들의 고혈을 짜냈던 동학농민혁명 당시를 보편화된 썩어있는 사회로 은유적으로 표현한 『굼벵이벌의 천지』는 지난 5월 전주에서 연린 동학연극한마당에 부산의 「열린무대」가 이 지역 관객들에게 먼저 선보였었다. "갑오농민전쟁, 5.18등 진보한 운동의 흐름과 젊은이들의 강한 자성의 메시지, 젊은 세대들의 비판의식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무대미술, 조명효과, 의상 등 세심한 부분도 놓치지 않으며 좀더 완숙한 연기에 주력하였습니다." 이 작품의 정신적 고리를 실험정신에 두고 좀더 효과적으로 이어내는데 힘을 모았다고 유덕철씨는 말한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조금은 흐트러지고 분산되어 있던 극회를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했다고 즐거워하는 기린극회는 대상 수상 이후 연일 계속되는 언론사의 인터뷰, 방송 출연 등으로 무척 바빠지고 갑자기 유명해졌다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마음 놓고
정회원 27명과 준회원 20여명 등 총 47명이 힘을 모아 매년 3번의 정기 공연을 가지는 데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특히 마음 놓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야외무대, 노천극장, 합동강당 등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하는 어려움을 겪으며 한 작품씩을 무대에 올린다고 한다. 재정확보는 물론 극회회원들이 발 벗고 뛰어야 한다. 학교 앞의 후원처를 물색하고 티켓 판매에 총력을 다해야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고.
요즈음 신세대라 불리는 신입생들을 연극동아리로 모으는 풍속도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신세대들의 전반적인 변화이기도 하지만 학과생활과 동아리활동에 어려움 느끼면 그만 두는 것은 물론 사고나 시각의 차이가 심해 새로운 인재를 키우는 일은 쉽지만은 않다고. "지금의 기린극회가 있기까지는 선배들의 힘이 컸습니다. 기린극회를 떠나 있어도 보이지 않는 힘으로 버티어 주었고 극회 단원들끼리의 사랑이 오늘의 결과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선후배들의 정과 사랑이 큰 힘이 되었다며 끼 있는 전북연극의 대들보로 함께 할 것이라고 유덕철씨는 말한다.
연극은 단지 관객들이 웃고 보고 가는 청량제적 역할보다 우리의 삶을 반영하고 고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기린극회는 순수의 연극을 통해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는 비판 작품을 무대화하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또한 연출자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실험정신과 도전의식으로 과감한 무대를 선보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연극을 통해 젊음의 패기와 용기를 보여주며 끼 있는 연극인들로 전북연극의 대들보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기린극회는 기성극단의 활력이 될 수 있는 자질을 힘 있게 키워나가고 있다.
기린극회의 커다란 성과물이기도 하지만 전북지역 젊은이들의 패기를 눈여겨 볼 수 있도록 이번 작품을 전북도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빠른 시일 안에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