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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12 | [저널초점]
본전생각이 굴뚝같더라
문화저널(2004-02-05 10:33:13)
국제화 세계화를 향한 행보가 분주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는 세계적인 추세라니 그 분주해진 행보에 달리 토를 달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근래 갑작스럽게 등장한 우리의 세계화를 향한 구호가 남의 옷 빌려 입은 것 같이 어색함은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 분위기가 덕분인가요? 이 지역 문화예술판에도 근래 들어 국제화 세계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러시아 볼쇼이 아이스쇼단이 한바탕 바람을 불어놓고 지나가더니 그 뒤를 이어 찾아온 북경예술단 바람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바람을 맞은 사람들은 극히 일부분이었고 또한 따로 있었습니다만 이들 공연 입장권은 공연일자 훨씬 전부터 매진되었고 '놓치고 나면 더 서운한 법'인 심리가 발동된 많은 사람들이 그 입장권을 구하려고 사방팔방 뛰어야 했다는 소문도 들립니다. 어찌됐든 문화예술에 대한 관객들의 큰 관심은 바람직한 풍경일 수도 있겠습니다. 아마도 이쯤 되면 배고픈 예술인들에게는 누이 번쩍 뜨이는 변화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썰렁한 객석 마주하기에 이제 진력이 나버린 이 지역 공연예술단체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공짜구경 좋아하는 순서로 치자면 둘째가라면 서운할 이 지역 관객들이 몰렸던 그 공연의 입장권이 얼마였는지 아십니까? 자그마치 특석은 5만원이요, 일반석도 3만원 아니면 2만원이었답니다. 설마 했던 주최 측도 기대이상의 판매성과에 놀랐더니 그 열기를 짐작하곡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공연 뒤에 이어지고 있는 그들 무대에 대한 평가들입니다. 아무리 '남이 가니 나도 한번 가보자'는 심리가 발동하여 투자한 돈이지만 3만원 5만원 어디 만만한 액수이겠습니까? 한사람의 국민소득이 곧 오천 달러가 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해도 우리의 경제 사정은 공연 한편에 몇 만원씩 쓸 수 있는 그런 형편을 아닌 터에 말입니다. 더욱이 웬만하면 본전 생각하는 우리들의 정서로서는 두말한 나위가 없겠지요. 문제는 그들 공연이 바로 '본전 생각이 굴뚝같이 나게 했다.' 는 데에 있습니다. 난생 처음 그런 공연을 구경했다는 한 중년 남자는 도무지 요새 세상은 믿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탄했습니다. 그 사정은 이랬습니다. 도무지 살기에만 바빠 영화 몇 편 빼놓고는 음악회나 연극 구경 가기는 자기일 아닌 것처럼 여겼던 아내가 날이면 날마다 불어대는 「선전」에 넘어가 하도 졸라대기에 부부동반으로 구경 갔답니다. 그것도 이왕 쓰는 김에 '보는 것처럼 보자'하여 특석을 구했답니다. 꽉 찬 공연장을 둘러보니 '나도 문화인'이라는 생각에 마음 뿌듯(?)하더랍니다. 남들 따라서 박수도 열심히 쳤고 탁월한 기량으로 눈을 빼앗는 무대 위의 배우들에게 감탄도 했답니다. 그러나 정작 그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드는 생각은 자신이 생각했던 그런 '구경'은 아니었다는 것이었답니다. 광고처럼 그렇게 감동적인 무대도 아니었을 뿐 더러 어렸을 적 동네 어귀에서 천막 치고 서커스 보았던 그 때의 경이로움보다 오히려 감동의 여운은 오래가지 못했답니다. 모처럼 방송을 통해 날이면 날마다 불어대던 광고에 솔깃하여 '나도 문화인이 되겠다'고 나선 자신의 문화적 허영심으로부터 보기 좋게 당한 것 아니겠느냐며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그이 말고도 그 공연 뒤에 쓴웃음 짓는 사람들은 또한 많습니다. 고액의 입장권이 동나는 것을 지켜본 이 지역 예술단체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이 받은 충격을 훨씬 심각합니다. 몇 천 원 하는 입장권 파는 일에 그렇게 열심히 매달렸건만 늘상 객석을 채워지지 못하고 제작비는 적자투성이인 자신들의 신세가 한심스러워서만은 아닙니다. 외국단체들이 떼돈 벌어 가는 것이 불만스러워서는 더구나 아닙니다. 충동적이고 즉물적인 우리의 문화적 허영심이 도대체 언제나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외국』이라면 맹목적으로 선호하는, 그래서 그 단체들이 어떤 수준에 있던지 무조건 환호하는, 예술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의 무지도 이들에게는 적지 않은 불만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불만을 내놓고 터뜨릴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에 버금가는 역량을 쌓아 너희도 입장권 비싸게 팔아라』면 또 달리 할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역예술단체의 배고픔이 어디 우리 책임 뿐 이냐고 다그친다해도 변명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울분이 터진 답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처럼 귀한 외국단체 모셔다가 이 지방 문화예술발전을 위해, 또 시민들의 문화의식을 높이기 위해 자리를 펴준 주최 측을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더욱이 지역의 발전을 선도해가는 언론사들이 국제화에, 세계화에의 행보에 함께 나선 데 대한 비난은 망발일 밖에요. 그 깊은 뜻의 한편은 아마도 『지역예술단체』에 자극을 주기 위하는 데에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이렇게 위안하면서도 한편으로 서운한 점은 아무래도 가시지 않습니다. 입만 벌리면 지역문화시대 운운하며 지역문화가 살아야한다고 외쳐대는 언론사며 방송사건만 정작 지역예술 단체들을 지원하는 일에는 도무지 인색하기 만한 까닭입니다. 홍보덕 좀 보겠다고 주최 주관 의뢰하여 당첨(?)되기가 어디 쉽기나 합니까? 이리 재고 저리 재서 장사가 될만해야 눈길이라도 받을 수 있는데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간신히 객석 채우는 정도에 그치는 지역예술단체들의 공연이야 언론사 눈에는 불 보듯 빤한 처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이름 주는 일에도 인색할 밖에요. 아무튼 이런 서운함은 그런대로 묻어둘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회를 빌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국제화도 좋고 세계화도 좋습니다만 이름만 걸어놓은 마구잡이식 초청 공연으로 이 지역 사람들의 순박한 문화적 허영심을 자극시키는 일만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좋은 양질의 공연무대야 얼마든지 환영할 일입니다만 근래 들어 올려진 무대들은 분명 그런 무대는 아니었습니다. 근래의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신조어가 있습니다. '비싸면 몰린다'는 말이 그것입니다. 공연의 예술성이나 수준은 차지하고라도 남이 가면 나도 가는, 비싸면 더욱 보고 싶어 하는 이 지역 관객들의 문화적 허영심을 빗댄 말이라는 것쯤은 눈치 채실 것입니다. 국제화나 세계화가 맹목적인 사대주의 근성을 부추기는 것은 분명 아닐 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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