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12 | [문화저널]
한국사회의 정신적 황폐화 인성이 문제인가, 제도가 문제인가?
김의수 전북대교수 철학과 (2004-02-05 10:34:27)
들어가는 말 지난여름 시대착오적 매카시선풍이 한국사회를 한바탕 휘돌아간 이후 잇달아 발생한 일련의 엽기적이고 정신불열증적인 살인 사건은 한국사회 전반의 인간성 상실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연속적으로 터져 나온 인천직할시의 세무비리사건, 슬롯머신업체 뇌물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 등은 우리 사회 전체가 속속들이 부패사슬로 엮여 있음을 확인시키는 증거가 되고 있다. 그런데 부유층에 대한 살인집단의 비인간적인 적개심 표출에서 대리만족 내지는 공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민들이 정부와 언론, 그리고 전문가들의 처방에 대해 회의와 비웃음을 보내고 있다. 엽기적 살인, 비인간적 행태, 조건과 논리 없는 사회 파괴 행위 등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들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증상이며, 개선과 대안에 대한 냉소주의는 충격적인 사건들 자체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이다. 1. 개인의 인성과 사회 제도 후기 산업사회는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능력이란 본래 훌륭한 인성을 바탕으로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고 사회적 경험이 많은 정치가, 지식인, 기업인들도 올바른 가치관과 성실한 삶의 자세를 갖지 못하면, 평범함 서민의 경우보다도 사회에 훨씬 더 커다란 해악을 끼치게 된다. 이처럼 우리 삶의 현장에서 개인들의 인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들의 지적 능력에 비하여 훨씬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성을 어디서 어떻게 형성되는가? 인성의 형성에 있어서 부모의 정신적 신체적 건강은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태교와 유아기 교육이 중요하다. 그러나 인성은 일정한 시기에 완성되어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학교교육과정을 통하여 그리고 넓은 의미의 사회교육과정을 통하여 인성은 끊임없이 변하고 발전한다. 따라서 인성을 고정된 것으로 보거나 사회제도와 무관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사회일탈 현상의 원인을 사회 전체의 구조적 모순과 정신적 풍토와 무관하게 개인적 인성에서만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똑같이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인내하며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있다(예: 소년 소녀 가장)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반면에 남부럽지 않는 환경에서 자란 부유층 자녀 중에도 비행청소년과 반인륜적 살인범(예: 박한상)이 있다는 사실을 논거로 제시한다. 인성이 나쁜 사람은 어려서든 성인이 되어서든 범죄를 저지르게 되어 있고, 따라서 그들을 잡아내어 엄벌(극형)에 처함으로써 질서를 바로잡아야 하고, 재발의 방지를 위해서는 가정과 학교에서의 도덕(효)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주장은 타당한가? 개인적으로 순수한 품성을 가진 모범생들도, 풍토자체가 무규범화되어 있거나 탈법과 비리가 구조화되고 일상화되어 있으면, 거의 무기력하게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고, 정의와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사람들은 소수의 영웅적 실천의지의 소유자들뿐이다. 그러므로 불의와 부정의 구조와 풍토 자체는 문제 삼지 않고 모든 개인들에게 선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만 주장하는 사람들은 문제를 관념적으로만 모는 훈고적 보수주의자들이거나, 자신들은 훨씬 더 큰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합법을 가장하고 적반하장의 모순을 저지르는 사람들(군부독재 시대의 정치적 경제적 탈법자들)이다. 그러므로 양자택일의 형식으로 표현된 이 글의 부제(인성이 문제인가, 제도가 문제인가?)는 당연히 양자의 결합으로 정리되어야 할 것이며, 그것도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갖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2. 20세기 한국의 사회사와 정신의 황폐화 해방이후의 한국 정치는 민간인독재에서 군부독재로 이어져 결국 국민들에게 이념적 강박관념과 역사적 허무주의를 심어주었다. 그리하여 보신주의와 정치적인 무관심주의가 지배하게 되고, 지배세력이 내세우는 명분들에 대한 냉소주의가 팽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회가 주어지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득을 챙기며, 자리를 차지사고, 권력과 금력을 우선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게 되었다. 군부독재자들과 소수 자본가들은 긴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여 막강한 힘을 휘두르며 법과 규범을 무시하였다. 지배집단의 부패와 무규범화는 사회전체를 부패화시켰다. 공무원들은 고위직으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뇌물이 생기는 자리를 선호하게 되고, 기업가와 상인들은 대소를 막론하고 탈세와 규정위반을 생활화하였다. 이렇게 하여 배금주의와 한탕주의가 전 사회에 만연되었다. 이러한 전사회적인 부패 구조 속에서 끊임없이 추진된 성장위주의 경제개발 정책은 특혜와 투기, 그리고 노동력 착취를 통해 횡재하는 천민자본가들을 양산해 냈고, 이들은 군인 정치가들과 함께 부정축재와 퇴폐적 향락이라는 부패한 삶의 전형을 만들어 갔다. 결국, 한국사회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대화되고 부정과 부패가 구조화된 채, 군사문화(맹목적 복종을 강요하는 집단주의)와 퇴폐문화(예: 수많은 서비스업종과 매매춘의 범람)로 뒤덮여 버리게 되었다. 특히 사건의 조작과 비인간적 고문을 일삼아 온 정보기관의 반인권적 만행과 마피아 집단적 행태를 보인 최고 권력집단의 태도(예: 정인숙사건, 김형욱사건), 그리고 대량 학살을 서슴지 않은 파시즘권력은 사회전반에 인명경시의 풍토를 조성시켰다. 3. 해결의 길 지금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한 가능한 시도들 중 가장 커다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문민개혁 정책의 철저한 실천이다. 국민들은 문민정부의 민주개혁 정책에 대해 거의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었다. 그러나 문민정부는 이러한 국민의 기대와 희망을 배반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새로운 각오로 국민에 대한 약속을 지켜 나가야 한다. 정치권의 물갈이를 전면적으로 이루어내야 하고, 사회의 부패 고리들을 단절시켜야 한다. 부정 공직자들의 추방과 재산환수제도를 실효성 있게 확립해야 하고, 장기 독재 과정에서 철저히 훼손된 3권 분립 체제를 즉각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12 12군사 반란과 5 17내란음모에 대한 사법적 심판이 올바로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재벌 위주의 신경제정책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 대통령은 즉각적으로 새로운 개혁내각을 구성하여 신 개혁정책을 펼쳐야 한다. 국민들은 개인적, 집단적으로 실천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의 개혁정책 소생의 필요성을 반복하여 강조하였으나,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운동의 희생이다. 재야세력이 문민정부의 개혁정책을 지켜보면서 다양한 분야로 분산되어버린 상태에서, 수구적 극우세력이 대대적인 사상공세를 폈으며, 비인간적 살인사건들이 줄을 이었고, 고질적인 공무원비리가 꼬리를 물고 나왔을 뿐만 아니라 대형사고들까지 이어져 비상식적인 사건 사고들이 줄줄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특히 언론과 교육의 역할이 중요하다. 1년 전 언론문제에 관한 공개토론회에서 우리는 "시민언론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월갈 말,94.1월호). 그리고 최근에 인성교육, 도덕교육이 강조되고 , 명심보감 강의계획이 발표되기도 하였으나, 대학에서 뒤늦게 명심보감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초 중등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전인교육을 실시해야 하고,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대입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새로운 공동체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한국사회는 아직도 공동체적 요소를 많이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공동체적 현상들이 바른 의미의 공동체로 인정될 수 있는 것인지 점검되어야 한다. 군사문화가 공동체문화로 착각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단체의 왜곡되고 미숙한 공동체성도 전면적으로 시정되어야 한다. 모든 공동체적 모임들은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져야 하고, 사회 운동체들과 연계해야 한다. 나오는 말 끝으로 우리는 남한 사회의 부패구조가 자본주의 경제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가 비록 그 천민성을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공동체 성을 보장받기는 어렵다. 그런데 민족의 통일을 성실하게 추진하는 과정에서 오늘의 문제(정신적 황폐화 현상)가 상당부분 해소될 가능성도 있다. 왜냐하면 남한과 북한이 역사적 경험들을 상호 교환하여 변증법적으로 발전시킴으로서 모순과 부패가 극소화된 훌륭한 민족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