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네비게이션


분야별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1994.12 | [특집]
학술 전문성의 부각과 새로운 방향모색
원도연 『문화저널』편집장 (2004-02-05 10:41:07)
사회전반의 무좌표적이고 과도기적인 경향이 학술영역에도 여과 없이 반영되었던 한해였다. 대학의 경우 내부적으로는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한 대학평가제의 여파가 상상 밖으로 큰 힘을 발휘했고, 외부적으로는 대학사회의 사회적 영향력과 활동범위가 점차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 반면 개별연구자들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높아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또한 5년 동안 재야에 머물러있던 전교조 교사들의 현장복귀와 그로 인한 각급 학교의 교육현장에서의 변화도 주목되었다. 먼저 창립 7년을 맞이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온 호남사회연구회(이하 호사연)의 활동이 여전히 두드러졌다. 호사연은 10월 회원투표를 통해서 사단법인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하면서 중요한 정책방향의 변화를 예고했다. 물론 그 같은 결정은 학술적 진보성과 사회적 실천성이라는 창립 취지를 재확인하면서 이와 더불어 일반인에 대한 개방과 활동기금의 안정적 확보를 통한 활성화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호사연의 이 같은 결정은 시민운동의 영역확장이라는 외적조건과 지역학술운동의 한계적 상황에 대한 방향모색이라는 내적요인이 결합된 것으로 또 다른 형태의 학술운동이 될 것으로 보인다. 94년 호사연의 활동은 4차례의 월례발표회와 5개 분과의 분과활동, 그리고 하계수련회 및 연합공개토론회 등으로 전개되었다. 월례발표회와 공개토론회는 대중적이고 시사적인 주제들이 다루어졌으며 보다 전문적이고 집중적인 토론이 분과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전문성과 대중성이라는 양자적 과제가 한층 적절하게 배합되었다고 하겠다. 그러나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대중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던 월례발표회나 공개토론회에 일반시민의 참여가 낮았고, 심지어 대학 내 연구자들의 참여도가 현저히 낮아지는 현상은 호사연의 진로와 관련하여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내용적으로는 잇달았던 사건, 사고와 그로 인한 사회전반의 황폐화가 역시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이전의 한층 정치사회적인 주제들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정치적 냉소주의 또는 무관심으로 인해 학술영역에서도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으며, 몇 년 전부터 유행병처럼 번졌던 포스트모더니즘류의 접근방식도 그 자체의 완결성을 얻지 못한 채 중심적인 논쟁으로 서지는 못했다. 그런 가운데 11월에는 「한국사회의 정신적 황폐화 : 인성이 문제인가 제도가 문제인가」라는 주제의 공개토론회가 호남사회연구회와 전북민교협의 공동주관으로 열려 맹목적이고 감성적인 도덕론의 부상에 대한 적절한 평가를 이끌어냈다. 전반적인 침체에도 불구하고 가장 돋보인 활동은 역사를 매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나타났다. 특히 동학농민혁명 백주년을 맞이하면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형 학술대회가 이 지역에서 잇달았다. 우선 백주년 기념사업의 학술사업으로 「동학농민혁명의 지역적 전개와 사회변동」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이 지역역사학 연구자들의 참여로 열렸다. 동학 심포지움은 그간 동학농민혁명의 총론적 접근에서 지역성이라는 주제를 따로 부각시켜 각 지역적 상황을 분석해낸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또한 호사연이 지난해에 이어 발간을 준비하고 있는『호남사회연구』2집은 지역학술운동의 성과를 대중적으로 확산하고 사회적으로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주목되는 작업의 하나이다. 이 같은 비교적 학술영역의 본령에 충실한 작업들과 함께 연초부터 밀어닥친 이른바 '신공안정국'의 파장은 대학사회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신공안정국과 관련하여 올해 학술영역에서 가장 정치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킨 사건은 역시 이른바 '경상대 사태'에 관한 것이었다. 경상대학의 교양교재인 『한국사회의 이해』에 대한 검찰수사와 언론 보도에 관련하여 호사연과 광주, 전남의 전남사회연구회, 부산, 경남의 지역사회연구회가 공동으로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정부당국과 언론의 매카시적 태도를 비판하고 학문사상의 자유에 대한 의지를 표명한 것은 시기적절한 것이었다는 평가를 얻었다. 진보적 학술운동의 활동 범위가 지속적으로 위축되고 세가 약해지는 와중에도 전북지역의 학술운동은 나름대로의 제몫을 해낸 셈이나, 그 사회적 영향력이나 파급력에 있어서는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조직적이고 집합적인 활동영역을 벗어나 대학사회의 전문성이 지방정치나 지역 문제, 환경문제 등의 각 개별영역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경향도 학술영역의 활동에 포괄한다면 전반적으로는 상당한 질적 발전의 단서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와 함께 5년 만에 각급 학교로 돌아간 전교조 교사들의 활동은 아직은 두르러지지 않는 실정이다. 그러나 개별 활동가들의 적응기간과 구조적인 교육현실의 문제를 감안한다면 이 문제에 관한 평가는 당분간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고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대학사회의 제도적 변화를 선도해나갈 다양한 개선(?)프로그램이 대학에서 폭넓게 기획되고 그에 따른 대학의 변화방향도 내년쯤이면 보다 구체화된 형태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94년 한해의 학술운동을 소극적으로 평가한다면 과도적 모색기로 정리될 수 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