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2 | [사람과사람]
명고수 김 동 준 (3)
깊은 공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
최동현·군산대교수·판소리 연구가
(2004-02-05 10:42:16)
박봉술의「적벽가」는 전통적인 동편제 소리인 송만갑 바디「민적벽가」에 서편제 김채만 바디「적벽가」의 혼합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곧 도원결의, 삼고초려, 박망파 전투, 장판교 대전, 공명과 동오의 여러 선비와의 설전 대목까지는 서편제 김채만 바디를 따르고, 적벽 대전 부분의 군사 설움 타령부터는 전통적인 송만갑 바디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보면, 철저하게 동편제 창법을 지키고 있다. 이는 박봉술이 자기 유파의 소리를 배반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창조적으로 다른 유파의 소리를 계승하였음을 뜻한다.
김동준의「적벽가」는 박봉술의「적벽가」를 그대로 계승하였기 때문에 사실은 전체적으로 박봉술의 것과 동일한데, 순서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이는 박봉술의 제자인 송순섭의 것이 내용이나 순서 모두 박봉술의 것과 완전히 같은 것과 비교가 된다.
그러면 박봉술(송순섭 포함)의「적벽가」와 김동준의「적벽가」의 구성을 비교해 보자.
박봉술의「적벽가」: 도원결의-삼고초려-박망파 전투-장판교 대전-공명 동오 선비 설전-군사 설움-조조 호기를 부림-조조 제장 분발-칠성단-자룡 활 쏘는 대목-공명 제장 분발-화공(이하 같음)
김동준의「적벽가」: 도원결의-삼고초려-박망파 전투-장판교 대전-공명 동오 선비 설전-칠성단-자룡 활 쏘는 대목-공명 제장 분발-조조 호기를 부림-군사 설움 타령-조조 제장 분발-화공
박봉술의「적벽가」는 정광수나 임방울, 그리고 장권진의「적벽가」와 순서가 비슷하다. 물론 대목의 들고나는 차이는 많지만, 조조 진영의 군사 설움 타령에서부터 조조가 호기를 부리는 데까지가 공명의 칠성단 대목 앞에 끼어들어와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김동준의「적벽가」는, 공명과 오나라 진영의 얘기가 다 끝나고 조조 진영으로 이야기가 바뀌어 화공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김동준의「적벽가」는 박봉술의「적벽가」에 비해 서술 초점의 변화가 적어 이야기의 전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조조가 호기를 부리는 대목부터 끝까지는 조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앞부분의 공명 중심의 이야기 전개와 함께, 앞부분 공명 중심, 뒷부분 조조 중심이라는 분명한 대비를 이루고, 조조가 호기를 부리는 대목부터 패전하여 몰락해 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므로, 조조의 비중이 크게 부각된다. 반면에 박봉술의「적벽가」는 서술 초점이 왔다 갔다 하므로 이야기의 전개 파악이 어려운 대신, 공명의 군사들을 배치하자마자 적벽대전이 시작되므로, 적벽대전이 공명에 의해 주도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자연히 조조의 몰락을 통해 느끼는 쾌감이 반전된다.
그렇다면 김동준의「적벽가」와 박봉술의「적벽가」에 이러한 차이가 생긴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김동준이 스승으로부터 배운 대로 부르지 않고 나름대로 순서를 다시 짰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성근의 증언에 의하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이성근에 의하면, 박봉술이 나중에 순서를 바꾸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봉술이 다른 사람들의「적벽가」의 순서를 같이 하려고 나중에 바꾸었다고 보아야한다. 이는 김동준보다 훨씬 후에 박봉술로부터 소리를 배운 송순섭이 박봉술의 것과 같은 구성으로 되어 있는 데서도 증명된다. 그렇다면 박봉술이 애초에 불렀던 순서, 곧 김동준「적벽가」의 대목구성은 송만갑 바디에 고유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우선 김동준「적벽가」는 박봉술에게 이어받은 것이기 때문에 전형적인 동편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동편제 소리는 대마디 대장단을 위주로 장단을 짜며, 소리 끝을 쇠망치로 내려치듯이 끊어내며, 동성을 사용하여 우조를 중심으로 소리를 이끌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김동준의 소리에서는 이러한 동편제 소리의 특징이 그대로 다 드러나지는 않는다. 장단을 대마디 대장단으로 이끌어 간다는 점 말고는 오히려 서편 소리에 가까운 창법을 구사하고 있다. 소리 끝을 끊어내지도 않고, 계면 성음을 쓰는 것이 자주 눈에 띈다. 그래서 송만갑이나 강도근, 박봉술, 송순섭 등 전형적인 동편 소리꾼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꿋꿋한 맛은 아무래도 약한 편이다. 결국 그는 동편 소리를 하면서도 서편 소리의 특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녹음에서도 화공 이전의 전반부보다, 조조가 패전을 거듭하여 계면조 대목이 많은 후반부가 훨씬 좋게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이제 김동준의‘목소리’에 대해 알아보자.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목소리는 거친 소리이다. 그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맑은 소리를 천구성이라고 하고, 보다 거친 소리를 수리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맑은 소리는 양성이라고 해서 좋은 소리로 치지 않으며, 지나치게 거칠기만 한 목소리는 지나치게 맑거나 지나치게 거칠지 않은 소리이다. 또 애원성(哀怨聲)이라고 해서 슬픈 느낌이 있는 목소리여야 한다. 애원한 느낌은 천구성에서 더 발휘되기 쉽다. 수리성은 씩씩하고 힘찬 느낌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그런데 판소리는 다양한 상황을 노래하는 예술 양식이기 때문에 애원하게 불러야 할 부분이나 씩씩하게 불러야 할 부분이 공존한다. 따라서 최상의 성대는 천구성과 수리성을 다 낼 수 있는 성대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목소리를 다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소리꾼들은 자기목소리에 적합한 소리를 장기로 삼아 주로 부르는 것이다.
현재 남아 잇는 김동준의 목소리는 거친 편이다. 그저 거칠기만 해서 답답할 정도는 아니고, 구성을 갖춘 수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고음이 자유자재로 나지 않으며, 애원한 느낌의 표현에도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소리의 질만으로 본다면, 김동준의 목소리는 일단 판소리를 하기에 썩 좋은 목소리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애원성으로 불러야 할 곳이 많은「춘향가」나「심청가」에는 더욱 적합하지가 않다. 김동준은 이러한 판단에서, 애원성으로 부를 곳이 많지 않아 자기 목소리에 어울릴 것 같은 동편제「적벽가」를 배우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 훗날 김동준이 판소리를 버리고 고수로 전환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판소리는 목소리의 질만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판소리사에는 목소리는 나빴지만 명창으로 이름을 길이 남긴 사람들이 많다. 보성소리를 가꾸어낸 정웅민이 그랬고, 박동실이 그랬으며, 최근에는 박봉술이 그랬다. 현재 남아 있는 녹음을 보면 정웅민의 목소리는 떡목에 가까운 소리였다. 박동실은 목소리가 나빠 공연은 거의 하지 않았다. 박봉술은 고음이 전혀 나지 않아서, 암성이라는 가성을 개발하여 겨우 소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명창으로 길이 이름을 빛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무엇 때문에 높이 평가를 받는가. 이들은 판소리에서 말하는 소위‘공력’에 의해서 높이 평가를 받는 것이다. 공력이란, 판소리의 예술성을 깊이 이해하고 부르는 소리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은 맛을 가리킨다. 비록 목소리는 나빠 시원하게 부를 수는 없지만, 잘 들어보면 참으로 훌륭한 소리꾼만이 표현할 수 있는 깊이와 폭을 느끼게 하는 그런 소리를 판소리에서는 공력이 있는 소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목소리만 좋은 젊은 소리꾼에게서는 느낄 수 없다. 김동준의「적벽가」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공력이다. 그리고 그 공력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판소리다운 맛이다. 김동준의「적벽가」는 바로 공력으로 들어야 하는 소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