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0 | [시]
전라도 아짐
양정자(2004-02-05 11:03:19)
전라도 아짐
양정자
담양 추월산 근처
한 허름한 여관의
뭐라 말할 수없이 맛깔스런 음식맛도 음식맛이지만
그 음식들 만드는
허름한 용모에 허름한 옷에 다 늙은 식모 아짐
어쩌다 술상에 끼어든
그녀의 꺾이고 휘이고 돌아가는 육자배기 노래와
온몸 마디마디 절절이 녹아나는 듯한 그 춤 속에는
남도의 타는 듯 뜨거운 햇빛과 푸른빛 바람
시뻘건 황토 위로 눈 아프게 아물대던
진초록빛 나무들의 진한 열기가 가득하여
남도 사람들의 참 징한 슬픔이 느껴졌네
지금은 비록 떠돌이 홀몸으로
식모 아짐으로 일하고 있는 밑바닥 인생이지만
젊어서 조선 팔도 안 가본데 없고
안해본 일 없다는
"쎄빠지게 일해야제 노는 맛도 제맛이랑께"
그 힘들고 바쁜 틈에도 느긋하게 풍류 즐길 줄 아는
듣도하고 화통한 그 아짐
가끔씩 손님들 동냥술로 밤늦게까지 만취되어도
아침에는 늘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앞뒤 너른 마당 정갈하게 쓸어놓고
노래하고 춤추던 그 절절한 솜씨로
뭐라 말할 수 없이 감칠맛나는 아침상
조촐하게 한상 잘 차려주던 멋진 아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