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0 | [문화저널]
빛 좋은 개살구
김두경/서예가 편집위원
(2004-02-05 11:04:49)
이상저온, 폭염, 폭우, 홍수, 우박, 태풍, 지진, 해일 등 기상이변을 말하는 단어들이 유난히도 부지런을 떨며 오르내려 불안한 예감들이 끊이지 않으면서도 어느새 팔월이라 한가위 추석명절이 지났습니다. 빛나는 자동차에 빛나는 구두, 빛나는 양복을 걸치고 풍성한 선물셋트 가득 싣고 고향으로 달려갔습니다. 민족 대이동의 참모습을 보이며 고향으로 고향으로 달려갔습니다. 껍질만 남은 고향의 허기진 뱃구리와 정에 굶주린 가슴에 쓸데없이 거푸집만 멀정한 종합선물세트를 종합 처방처럼 디밀며 달려 왔습니다. 등 굽은 오촌 당숙의 손에 제 아비 무덤의 벌초를 맡기고 양주한병을 무슨 은혜처럼 디밀며 달려와서는 성묘를 합시다. 아니 도시에서 자란 귀하신 아들 딸 현장학습 여행을 합니다. 눈이 어두워 어쩌다 박힌 머리카락을 핑계잡아, 송편속에 어쩌다 잘못 낀 돈부벌레를 핑계잡아, 어머니의 맛, 할머니의 맛, 우리의 맛이나 먹거리는 밀쳐두고 콜라와 빵을 사나르며 초코렛과 바나나를 사나르며 현장 학습 여행을 합니다. 논 밭에 익어가는 곡식들이 어떻게 열매를 맺고 익어가는지 사람의 손은 언제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는 아랑곳없이 고깃국에 물린 아이들에게 토장국맛 먹거리 이야기로 입맛의 탐닉을 가르칩니다. 산과 들에 어울어진 풀과 나무와 곤충들이 우리와는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가 아니라 학교 성적을 올리기 위한 자연 관찰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즘음 우린 삶이 그렇듯이 밤하늘에 별을 헤이거나 둥근달을 가슴에 품으며 삶을 누릴수 있으신 분 몇이나 될런지요. 최소한 명절 하루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도구가 아닌 자연, 고깃국에 물려 토장국 찾는 마음이 아닌 우리의 문화, 우리의 정신을 가슴에 품을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을런지요. 빛나는 것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빛을 가슴에 품고 안으로 안으로 다스리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것임을, 밤의 편안한 휴식이 없이는 빛나는 아침의 활기는 무의미 하나는 것을 느끼게 할 수는 없을 런 지요.
번쩍 번쩍 빛나는 것들에 가려 우리의 눈이 멀어갑니다. 화려한 포장지에 싸이고 쌓인 부실한 것들에 우리의 가슴이 황폐해 갑니다. 빠르고 빠른 것에 우리의 정신이 질서를 잃어 갑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우리의 모이 형편없이 퇴화해갑니다. 우리가 켜놓은 문명의 환한 불빛에 별도, 달도, 밤하늘의 추억도 자꾸 멀어져가고 우리가 쌓아올린 시멘트벽의 높이 만큼 우리의 마음에 드리우는 그늘도 늘어 갑니다. 또 멀어져 가는 만큼, 황폐해져 가는 만큼 우리는 이상기후, 괴질, 이상정신 등"이상" "괴이"라는 말씀들을 들어야할 기회도 늘어가겠지요.
살구철도 지났는데 빛 좋은 개살구이야기를 꺼내놓고 보니 요즈음 우리들의 삶이 빛좋은 개살구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여 넉두리 처럼 몇 말씀 늘어놓았습니다. 철이 지났는지 철이 덜 들었는지 모를 이 사람의 철지난 개살구 이야기가 짜증스럽지는 않으셨는지요. 하지만 놀기도 좋고 일하기도 좋다는 이 가을에 자신들의 삶이 아니 우리의 모든 삶이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삶이 되지 않도록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집시다.
참으로 좋은 옛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