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1 | [문화시평]
50년간의 고독, 사랑
창작극회 「꼭두, 꼭두!」
김정수/연극인·편집위원
(2004-02-05 11:16:09)
위도 앞바다 여객선 침몰 사건은 우리에게 어이없는 죽음의 한 전형을 보여줬다. 일주일 내내 신문과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는 ′사체찾기′에 몰두해 있을 즈음. 예술회관 공연장에서는 유랑처럼 반세기를 훌쩍 넘어 나타난 어이없는 사랑 이야기가 싸드락 펼쳐지고 있었다.
꼭두, 꼭두! 지난 9월 제 11회 전국연극제 대통령상, 연출상 수상, 참가 작품 중 유일한 창작 희곡, 11년 동안 전북 극단 3회 대통령상 수상기록 등의 화려한 찬사와 함께 창작극회가 수상 축하공연을 가졌다.
물론 「꼭두」가 단순한 사랑 이야기만은 아니다. 외세 강점과 분단으로 이어진 우리 현대사의 격량속에서 처절하게 찢기고 할퀸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것이 아님은 무엇보다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꼭두」는 거창하게 조국애니 민족의 비극이니를 말하지 않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다. 그들의 그리움의 대상은 사사롭다. 늘 보아오던 고향의 산천이 하늘이다. 그리고 그땅에서 자신을 기다릴 사람들, 아내 , 아들, 부모,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다. 또 닮음꼴에 대한 동경이다. 대일본 제국, 쏘비에트 연방, 북조선, 남조선이 거론되지만 그들에게는 모두 그들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러기에 역설적일지 몰라도 「꼭두」는 정말 지순한 사랑이야기가 될 수 있다.
「꼭두」가 담고 있는 이야기를 끌어나기는 힘은 당연히 꼭두극에 있었다. ′우리의 전래인형극인 꼭두 표현양식을 인용해서 전라도 사투리 특유의 더없이 질팍하고 리드미컬한 요설을 한껏 자랑해 보이면서 그것을 매우 해학스레 과장된 인형의 아가리의 개폐동작과 절묘하게 조화시킴으로써 관객을 압도해버렸다′는 전국연극제 심사위원들의 말처럼 「꼭두」의 형식실험의 핵은 여기에 있었다.
「꼭두」에서 꼭두극은 서양에서 흔히 말하는 서사극 형태와 유사하다. 그러나 꼭두극이 갖고 있는 몇가지 특이점은, 먼저 고정된 시점의 해설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공연되고 있는 현장을 중요시하는 서사극과는 달리 꼭두극이 보여주는 해설의 시점이 무대국의 시간을 이끌며 유동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꼭두극 자체가 독립적인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사실로서 무대극의 단순한 해설이 아닌 필례라는 또다른 주인공의 삶을 짧은 막간극을 통해서 투영해 보여주고 있는 점이다. 산받이와 질퍽하게 주고받는 이야기에서 필례의 50년동안의 고독이 묻어 있음을 놓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꼭두극은 무대공간 구획을 적절히 안해하는 완충지 역할을 해내고 있다. 즉 1막의 조선의 무대가 2막 이후 일본으로 사할린으로 옮겨갈 때 필례가 남아 있는 조선땅의 공간을 고스란히 이어 받는다. 또 일본 탄광촌에서 북해도로 탈출, 무대가 이동될 때 풍랑과 난파장면을 보여주면서 공간설명을 돕는다. 극의 마지막 장, 노부부의 상봉이 표현될때는 꼭두극이 안고 있던 공간이 무대공에 다시 쏙아지면서 보다 생생한 현실감을 부여하게 되는 것이다.
극형식의 독자적 표현 성취는 내용 전개와 언어 구사에 있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현대사 이해에 관한 중복된 설명을 피하고 상황의 전댈에 더 많은 비중을 둔 대서 전개라던가 최라도, 장상노, 허원도 등 대표성을 부여한 개성있는 성격 창조가 눈에 돋보이게 들어왔다.
무엇보다 「꼭두」를 지탱하는 내면적 기둥은 비극을 표현하는 방식에 있다. 반세기의 세월, 그 한의 시간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와 증오의 나날들을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몸서리치게 그립고 그리운 하루하루를 해학적 처리로 역이용하고 있다.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행동은 비극적인 작품치고는 너무 화극적이다. 사실 그들의 운명과 행적이 한마디로 비극적이기엔 너무 어이없기에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특히 장상도의 희극적 모습. 그가 문득 문득 던지는 ′조선 사람 맞지에′는 그 힘없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관객들 가슴 가장 가까운 곳에 던져지는 주제의 함축어로 들렸다.
작품에 참여한 모든 배우가 작품에 애착을 갖고 몰입하는 모습이 역력했지만 특히 이번 작품을 통해 두각을 나타낸 배우는 김정표가 아닌가 싶다. 그가 맡은 장상도 역은 그 자신이 아니면 표현하기 힘들었을 만큼 비교적 단역인데도 천연덕스럽게 소화시켜 맡은 역을 부각시켰다. 또 무대밖 꼭두극을 이끈 두 주역, 류장영과 전춘근의 활약도 눈부셨다. 음악의 작곡부터 시작해서 현장반주팀을 지휘하며 무대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산받이와 가수 역을 소화한 류장여으 언제나 진지하고 안정된 연기로 이 고장 사람들에게 좋은평을 받고 있으며 특히 인형극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어 이번 공연에서 얼굴없는 배우로도 찬사를 받을 목소리 연기를 보여준 전춘근, 이 두 사람의 호흡이 극의 재미를 부추겼다. 물론 이「꼭두」가 모든면에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심사과정에서 전체적인 기량과 제작기술상 부족한 점, 제재 형상화의 미흡함, 꼭두극의 존재가 극 진행의 톤과 조화롭게 진행되지 못했다는 점 등의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꼭두」만이 가진 강렬한 표현의식과 이 땅의 사람들에 대한 강한 애정은 이를 상쇄하고도 넉넉했다.
90년대 들어 새로운 모색을 꿈꾸어온 전북연극이 나름의 결실을 갖게된 계기가 바로 「꼭두」를 통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는 곧 끝이 아닌 출발의 알림이어야 한다는 당위와도 통한다.
위도의 참사는 수습되고 있지만 그 비극은 끝나지 않는다. 50년전의 이별이 아직까지 생생히 살아남아 우리 안에 있다. 그 긴 사긴의 상처가 어이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역사다. 「꼭두,꼭두!」는 우리에게 바로 그 점을 생각게 한다. 이당에 살아 있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질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