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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1 | [문화계 핫이슈]
조각과 도예의 풍성한 결실 「12.9」인전·이한우 조각전·이명순 도예전
김선태/미술평론가 (2004-02-05 11:17:20)
풍요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전주 미술계는 각 전시장마다 수준높은 그룹전 및 개인전등이 열리고 있다. 이들 전시에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한국화 양화 못지않게 활기를 띠고 있는 조각과 도예작품전이다. 먼저 원광대학교 조소과 졸업 동기생으르 결성된 「12.9」인전이 ′예술과 에로티시즘 한계 극복′이라는 주제는 10월 15일부터 21일까지 전주 정갤러리에서 열렸다. 멤버로는 김순겸, 배재성, 윤기호, 정진섭, 최만규, 임영란, 김명자 등이다. 이들의 공통적 내용은 현대인의 실체를 해부함으로써 구원의 소망을 환기시킨다거나 혹은 도처에 나타나는 문명의 위기에 강도높은 비판적 언어를 창출하는데 집중되어 있다. 김명자의 「한 여인의 초상」은 현대인의 무분별한 성관념에 대한 윤리성을 꼬집고 있으며, 김순겸의 「여신」은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성에 대한 호기심 동경을 반영하고 있다. 최만국의 「빛을 찾아서」는 익명의 남자 성기를 강조 함으로써 이성이 마비되고 말초신경적 감각만이 난무하는 현대인의 병적인 모습에 초점을 두었다. 이들 세명의 작가는 무분별한 성 개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써 이는 사회적 관심을 적극적으로 표명하면서 가부장제적 남성 중심사회제도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억압심리를 중심주제로 삼아 현실비판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작품양상은 사실적인 경향에서부터 표현죽의적인 다양한 변주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좀더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성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의 결여라 볼 수있다. 한편 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줄 수 있는 미술이 여성과 연결될 때 이들의 의식속에는 여성이라는 자아확인이 공통분모로 존재하고, 다시말해서 여성미술(페미니즘)의 범위는 어떻게 확장되어야 하고 우리는 여성주의 미술의 여러 가지 성향에 어떻게 비평적으로 접근해야 할지가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런한 의식이 결여된다면 성에 대한 이미지가 단지 남성 중심적 차원에서 자기 고백적이고 자폐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이야기식으로 제시하는데 그쳐버릴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점이 오늘의 성에 대한 주제(여성주의, 페미니즘)가 안고 있는 한계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배재성의 「부르델을 위한 습작」은 현대인의 허무함과 고통스러움을 인간의 외침속에 표출하고 있으며, 윤기호의 「새로운 탄생」은 끊어질 듯 살점이 떨어져 나간 허리, 마도된 팔 등은 정신적으로 혹은 신체적으로 핍박당하고 억압당하는 현대인의 황폐한 모습을 극적으로 들어내고 있다. 임영란의 「아우성」명태와 지폐 아크릴 상자를 사용하여 현대인의 무한한 배금주의적사상을 풍자하고 있으며, 정진섭의 「남,여 그리고 인생」은 인체 토르소와 수닭, 사다리를 통하여 전반적인 인간이 겪어야 할 인생의 역정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 작가들은 자신의 삶과 내면세계 및 초현실적 세계를 아우르면서도 동시에 총체적 현실인식의 끈을 단단히 죄고 예술이 힘을 얻을 수 있는 곳, 즉 존재의식에 대한 발견과 눈뜸의 평형을 유지해 나가는데 그 비중이 있겠다. 그들이 실존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하는데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될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하겠다. 그것은 실존주의가 외부세계의 가인식성을 거부하고 불가지론을 내포하고 있으며 현실세계를 반영하는 객관적 진리를 거부하고 내가 세계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각 나의 감정속에 세계가 있다는 극단적인 주관론적 입장이면 이것은 현실의 끈을 느슨하게 하는 선에서 신비주의로 빠지는 위험도 있다는 생각이다. 다음으로 10월19일부터 25일까지 전주 얼화랑에서 이한우의 네 번째 조각전이 「단순,직립 원초성의 조각」이라는 주제로 열려 눈길을 끌었다. 작가 이한우의 작업은 테라코타로 일관하고 있다. 작품의 형태는 무엇인가 의도하지 않으면서 세워지거나 쌓아올려진다는 데에는 마치 고대인들이 흙을 빚어 주거 공간을 만들 때 처럼 원초적인 느낌이 강하다. 그의 작업은 굴뚝 형태로부터 시작 되었다. 기단에서부터 약간씩 불규칙하나 올라가는 전동굴뚝의 형태는 기해 보이면서도 심플해 보인다. 그것은 조각에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느 양괴라든지 선면과 같은 형식들의 변주와 관련된다. 토담집의 굴뚝형태와 직육면체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표정은 미니멀한 성격이 강하다. 직육면체의 각면에서 돌출한 융기부분과 예리한 조각도의 선적인 표현 혹은 꼬거나 굴곡진 형태는 변환됨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표정을 끌어내고 있다. 이처럼 직육면체를 지지체로 받침하고 그 바깥부위에 자유분방한 생명의 리듬형태를 배의함으로써 전체적인 인상이 견고하며, 더불어 배열된 굴곡들이 미지의 심상들을 자극해서 기억들을 촉발시키며 우리의 심증에 은닉되어 있는 불가사의한 상형의 다발들을 감직케하는데 있다. 형태의 자유로운 변형과 테라코타가 갖는 재질과 발색을 통해서 시간의 흐름을 감득케한다. 마치 우발적인 기복을 이용하여 그려진 원시인들의 동굴벽화처럼 그의 표면들은 살아 숨쉬고 있으며 지나간 과거의 흔적을 모두 담고 있다는 인상이다. 마치 퇴색된 낡은 벽에서 발견되는 이미지처럼 대지나 우주의 풍부함과 같은 부조적 표면은 자기 확인이며 자기 완성이다. 그러면서 풍상에 찌든 성벽과 토담의 흙에서 은은히 풍겨 나오는 역사의 흔적은 그가 구사하고 있는 테라코타 속에 보편적 형태로 각인된다. 그의 테라코타 작업에서 흙 맛과 굴뚝형태는 우리의 감성, 자생적인 미의식을 느끼게 해주며, 우리의 조형의식을 재해석 할 수 있게끔 해준다. 아쉬운 것은 그의 조형형태가 앵포르벧경향의 추상화가나 조각가들의 순수주의 추상작품과 유사한 모습이다. 그의 작업은 외적 형식의 탐구보다는 내면세계의 탐구로서 순수 추상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의 테라코타작업의 흙 맛과 굴뚝 형태는 우리의 감성 및 미의식을 느끼게 해주면 우리의 조형의식을 재해석 할 수 있게끔 해준다. 그는 현재 전주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주대, 전남대에 출강중이다. 이상 열거한 작품들이 어떤 종류의 형식에 간여하든 나름대로의 삶의 정당성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누군가는 예술이 허구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허구로만 끝나는게 아니다. 예술은 여타한 모든 형식을 동원하여 진실을 밝히려는데에 예술적 역량을 발휘한다. 예술이 삶의 그대로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삶으로부터 예술이 해내야 할 일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 주로 평면 작업과 조각전이 주류를 이루는 전시에서 긴 침묵을 깨고 개최된 작가 이명순의 도예전은 가을의 결실 만큼이나 큰 수확이라 볼수 있겠다. 그의 작품전은 「불로 빚어낸 "人間愛"에 대한 구조저적 염원」이라는 주제로 10월15일부터 21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렸다. 작가 이명순의 작품세계를 돌이켜 보면 학부시절에느 물레성형을 통하여 전통적인 도자기 예술을 열었다. 그러나 대학원 시절에는 코일링이나 판형을 통하여 마름모나 삼각 기둥형 혹은 꽃봉오리형으로 변모했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도자기와 조각의 개념을 혼합한 도조(陶彫 Ccramic Sculpture)로 탈바꿈하고 있다. 물론 그에게 있어 도조의 개념은 사적(史的)인 측면에서 보아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조라는 종래의 개념은 도자기의 표면에 조각한 형태를 붙이는 것이 었으나 그는 작품 전체를 굴곡지게 하고 구연부를 닫아 버림으로써 이 개념을 새로은 의미로 전환시키고 있다. 그의 이번 도조 작품들은 토기가 지닌 형태 감각 및 기법을 견지하면서도 조각에서 추구하느 조형성을 가미한 것이다.(개인전서문,최병길)「인간-애」라는 주제를 흙과 불, 유약을 사용하여 자연속에 생존하는 생명체의 변형을 통하여 마치 지연의섭리처럼 곡선과 약간의 거칠거칠한 마티에르가 교감하는 조화속에서 생명체의 움직임을 발견하게 되고 심오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게 한다. 그는 현재 군산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보았듯이 이들 전시는 양화, 한국화전시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조각과 도예계의 그간의 과정을 검증하고, 여러분야와 질적 양적 수준에 균형을 유지해가며 나아가 앞으로의 전북미술 발전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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