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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 | 연재 [무대 뒷 이야기]
분장실, 그 비밀스런 풍경
명상종 공연기획자(2014-02-05 10:29:14)

생수 3, 다크초콜릿 1, 바나나 2, 사과쥬스 1, 햄치즈샌드위치 1

생수? 어떤 생수를 좋아하지? 구입목록을 보다가 잠시 고민에 빠진다.

 

분장실에서 대기 중 또는 공연 중간 쉬는 시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음료나 다과를 제공하는 것을 보통 캐이터링(catering)이라 부른다. 기획공연을 계약할 때 종종 캐이터링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다. 계약사항 중 한 부분으로 명시가 될 때는 기획자가 스스로 다과를 차려 환영의 의미를 전하고 분장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배려하는 것과 느낌이 많이 다르다. 보통은 위와 같은 간단한 요구를 하지만 분장실을 뷔페로 꾸밀 기세로 요구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하곤 한다.

 

공연기획자들이 장난삼아 얘기하는 공연기획 입문 과정에는 포스터 부착, 봉투작업, 전단 배포, 프로그램북 판매 등이 있는데 캐이터링도 그 과정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공연 당일은 아티스트 케어, 리허설 진행, 티켓 점검, 객석 관리 등으로 정신이 없으니 보통 공연전날 구입해서 분장실에 준비해놓는 경우가 많다. 구매내역에 따라 장 보는 시간도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니 처음엔 여간 귀찮은 일이기도 했지만, 경험이 많아질수록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면서 다른 공연장과 차별화된 캐이터링을 해보겠다며 욕심내는 모습에 헛웃음을 지을 때도 있었다.

 

특별한 캐이터링 경험 중 하나는 몇 년 전 호주에서 온 테너 열 명의 공연이다. 계약서 중 A4용지 한쪽 분량의 캐이터링 목록을 보는 순간 공연보다 이거 준비하는 게 더 힘들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멤버 열 명에 세션, 스텝까지 합하니 대략 20명 이상이었다.

오가닉 채소 샐러드, 치즈로만 토핑된 피자, 눅눅하지 않은 감자칩, 계란이 들어가지 않는 샌드위치, 에스프레소 커피와 우유 거품 제조기, 미네랄워터 에OO, 탄산수 페OO, 맥주, 레드와인, 커튼콜 끝난 후 사용될 샴페인, 면으로 된 흰색 타월, 두루마리가 아닌 미용 티슈 등. 번역을 해서 간단해 보이지만 각 항목마다 세세한 설명을 붙인 영문 캐이터링 목록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캐이터링 외에도 분장실에 대한 요구가 특별한 아티스트도 있다.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OOO는 형광등 대신 전구색 플로어 스탠드를 선호하고, 첼리스트 OOO는 분장실에 아로마 향초가 켜있기를 원했고, 국민가수 OOO는 누워 있을 수 있는 베드소파를 요구하기도 했다.

참 까다롭구나 싶으면서도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는 아티스트 개인의 취향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있었다.

 

요즘은 아티스트의 소속사에서 대부분 준비하지만, 경험이 부족한 소속사를 만날 때면 직접 나서서 더 디테일하게 챙기기도 한다. 공연장 바로 옆에 있는 분장실의 환경에 따라 아티스트의 컨디션이 달라질 수 있고 그 기분이 공연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아티스트, 관객, 기획자 모두가 만족할만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부분까지도 배려하고 세심하게 마음 쓰는 일도 공연기획자의 임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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