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2 | [신귀백의 영화엿보기]
성찰별 문제의 변죽만 잔뜩 울려 놓은 영화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
장세진 / 방송평론가
(2004-02-05 11:55:47)
추석영화 가운데 하나인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유동훈 감독)가 한발 늦게 전주에서도 개봉되었다. 추석연휴때 광주로 보러 갈까 하다가 전주 개봉일정이 잡혀 있어 기다리던 끝이었다. 관심가진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반가운 마음으로 영화관을 찾았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역시 요즘 유행하는 코믹영화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섹스코미디 영화라 할 수 있다. 풀연자 면면만으로 이야기하면 톱스타들의 경연이 일차적 관심을 끄는 영화이기도 하다. 최진실(유라), 심혜진(진희), 손창민(현우)이 공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한다면 매스컴에 알려진 만큼 기대를 충족시켜준 영화로 보이진 않는다. 아무리 코믹터치의 신세대 사랑법 운운하는 영화라 할지라도 도대체 보여주는 것이 없어 흥분부터 하는 말이다.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일어서서 빼앗는 것이 사랑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영화문법도 갖추지 못하고 있어 그렇다.
더욱이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유동훈외에 제법 자기만의 독자적 영화세계를 자랑하는 김호선, 정인엽 증 세명의 감독들이 부분적으로 책임진 영화라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감독에게만 그 혐의 전부가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일차적 원인은 각본에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는 방송국PD이며, 여자 다루기에 능란한 박현우와 그 부하직원 진희, 그리고 그녀의 친구 유라가 펼치는, 하나의 새로울게 없는 삼각관게 없는 이야기다. 그들은 서로 사랑의 힘겨루기를 하지만, 결국 현우와 유라의 결혼으로 끝난다.
그런데 진희와 유라는 변함없이 영원한 친구사이다. 때문에 현우는 진희와 만나는데 거리낌이 없다. 영원한 우정에도 성공하고, 일부일처 역시 사회모럴에 순응한 셈이다. 예로부터 남자의 우정은 입지를 굳혀왔지만 시집가면 그만인 여자들은 등한시했던 성차별 해소를 위한 집요함이 드러난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초반부터 성차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자라고 해서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이래도 되는 거냐는 진희의 거친 항의에서 보듯 좌천(?)의 주요인을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럴 만한 구체적 당위성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일견 당황스럽지만 문제제기는 된 셈이다.
그러나 그 전개과정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주제가 무엇일가 하는 의문과 맞닥뜨리게 된다. 성차별을 다룬 코믹터치의 영화들이 대개 그렇듯 사회적 통념을 분쇄하는데 전력을 다하기 보다는 남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결혼하는 결말을 노상 내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진희의 경우는 예외가 아니다. "솔직한 남자라 많이 좋아했나봐"라는 사랑의 고백을 해도 현우로부터 '선택받지' 못했을 뿐 성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현우는 결국 내가 해주는 음식 먹는 모습을 보며 행복을 느끼겠다는 유라와 결혼했다. 그것은 "촌스럽게 무슨 결혼이야"라는 생각을 가진 진희의 승리가 아니다. 속된 말로 안한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라와 현우의 결혼은 매우 상징적이다. 즉 성차별에 분개한 진희같은 사고방식이 이사회ㅣ에선 아직도 통용될 수 없음을 뜻한느 것이라 할 수 있다. 성차별 문제를 변죽만 잔뜩늘어놓은 채 그런 이슈없이도 평범하게 결혼할 수 있는 결말에 안주한 꼴이 된 셈이다.
그런 꼴은 보통의 윤리와 양식을 지닌 평범인 입장에서라면 가공할 만한 매듭에서도 절망적으로 다시 확인된다. 여자의 우정이 그렇듯 중요한 것인지 진희와 유라를 떠나려던 현우를 진희가 붙잡아 사랑고백과 육체접축을 통한 확인까지 마치더니 엉뚱하게도 결혼은 유라와 하고 있는 것이다.
필름을 거꾸로 돌려 생각해보자. 그리고 냉정 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 과연 오늘의 신세대들은 그런 모럴을 갖고 있는가? 설사 그 렇다 하더라도 대중이 즐기게 될 영화가 그런 잘못된 경향을 질타와 환기는 못할 망정 오히려 부추기는 앵글을 보여선 안될 것이다.
굳이 결혼이라는 결말이 필요했는지, 도대체 주제가 무엇인지 의아스러운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외에도 유라와 현우의 데이트 장면(들판에서 사진찍는)이 상상인지 현실인지 화면처리가 불분명했고, 괴한으로부터 유라와 진희를 구해 내는 현우는 출연이 홀연 일진광풍을 일으키는 「홍길동전」을 생각나게 해 꼼꼼하게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로부터 "그러면 그렇지, 아직도 멀었어"라는 식의 소리를 피하기 어려울 같다.
진희와 유라의 격투장면 등 너무 극대화된 희화가 이땅의 코믹영화 수준인가 싶어 씁쓰름하지만 재미있는 구석도 없지 않다. 특히 "야 뽀뽀나 한번 하자"는 진희의 앙탈에 어우러지는 유라의 모습이 그렇지만 괴한을 때려 눕혀 손을 발로 밟은 가운데 싱긋 웃어 보이는 현우의 여우있는 장면도 우리 영화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것으로 돋보인다.
영화에 쏟아지는 비판과 전혀 상관없이 비디오를 보는 최진실의 표정연기 등은 역시 스타임을 확인시켜주지만 내용이나 얼굴이 노상 고정화되어 있어 이제 식상감마저 들 지경이다. 이를테면, 잘 나가는 강수연, 최진실, 심혜진, 안성기, 최민수, 이경영 등 몇몇 배우에 의존하는 스타부재의 현상도 우리 영화가 빨리 극복해야 할 과제 중 하나인 것이다.
문화체육부의 스크린쿼터 축소조치로 잔뜩 우울한 우리영화 현실이 안타깝지만 명심해야할 일이 있다. 「결혼이야기」이래 「미스터 맘마」, 「101번째 프로포즈」, 「그 여자 그 남자」등 코믹영화가 더러 재미를 보았지만, 그러나 이제 아니다. 지금은 그 향수로부터 벗어나는 과감한 변신의 기획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