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2 | [세대횡단 문화읽기]
음악의 재능이라는 선악과로서 나를 유혹한다면
나의 노래 -衆生의 노래-
이준복 / 작곡가. 전북대 음악과 교수
(2004-02-05 11:56:52)
물위에 어리는 아름다운 자기 모습에 반하여 자기 얼굴만 바라보다 죽었다는 그리스신화의 "나르씨스"-수선화-. 그래서 우리는 흔히 자기 도취형을 나르씨스트라고 부른다. 자기 도취자-나르씨스트-의 장단점은 여기에서 언급하지 않겠으나 어쨌든 우리 주위엔 나르씨스트가 많이 있고 특히 예술가의 많은 사람들이 나르씨스트라고 생각된다. 사상가나 철학자들이 자기의 사상대로 살 수밖에 없고 소설가나 시인이 그들의 내부에 있는 언어를 밖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듯이 우리 작곡가들도 우리 내부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자기 방법대로 표현하고 표현되어진 예술품에 대하여 애착 이상의 관심을 쏟는 것은 자기를 닮은 아이를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객관성이 결여된 자기도취는 언젠가는 자기 작품이 세상에서 빛을 보리라는 황당한 망상과 함게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을 방황케하며 끝도 없는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는가?
"올페오"-자기의 죽은 여인 "유리디체"를 찾아서 지옥에까지 간 그리스 신화의 음악가 "올페오"는 연주가이었으나 작곡가와 연주가가 구별되지 않았던 고대 음악가의 형태상으로 그는 뛰어난 작곡가였음이 틀림없다. "올페오"는 춘추전국 시대의 중국인 "사광"과 함께 초자연적인 음악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연계의 생물.-사람이나 새 짐승뿐 아니라 저승 세계의 귀신 까지도 감명을 줄 수 있는 음악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신화나 전설은 황당무계한 것이라고 생각되고. "올페오"나 "사광"자신이 자신의 음악으로써 다른 생명체를 다스리려고 의도하고 있거나 혹은 그렇게 함으로 희열을 느끼고 있다는 면은 조금도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남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보편적인 본능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인에게도 분명히 존재하고 따라서 그들의 행위나, 작품에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나 연관이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현재에도 우리주위에 열렬한 음악 애호가들을 많이 가지고 있는 가수들이 많이 있다. 그들이 연주를 시작하면 연주회장은 거의 광란에 가까운 함성으로 뒤덮히고 마는데 이때 연주가가 느끼는 희열,-단순히 자기의 음악을 청중들과 함께 공감한다는 즐거운 외에 자신의 그의 청중을 사로잡고 있다는데 그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다는데에도 상당한 희열을 느끼고 있음은 분명하다.
이렇게 불 때"올페오"나 "사광"은 음악인들의 영원한 우상이 아닐 수 없다.
"선악과"-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금단의 열매, 뱀의 말대로라면 먹으면 더 눈이 밝아 진다는 과일.-인간을 에덴 동산에서 내어 쫓기게 만든 성서에서 나오는 과일이다. 말 그대로라면 식욕을 자극하고, 시간ㄱ을 유혹하고 지적욕구까지 일으킨 저 선악과는 과연 무엇일까? 그러나 이 문제는 기독교 신학자에게 돌리고, 여기서는 인간이 유혹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어떤 예술가가 이 유혹에서 벗어 날 수 있을까?
너무나 예술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지 않는가?
사탄이 美의 神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美를 주관하는 神이 사탄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나는 거의 확신한다. 선악과를 따 먹을 수 밖에 없는 체질상의 天性이 하느님을 거스리려는 운명적인 요소가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새는 작품이 잘 되지 않는다. 작품하나를 완성하려면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을 공감한다. 그렇다고 쓰지 않을 수도 없다. 어째든 내길을 내가 가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몇 년전에 작곡한 조지훈님의 "古詩"를 흥얼 흥얼 불러 보았다.
-서역 만리길 눈부신 노을아래-
이 부분의 노래는 너무 좋다. 연주하기에 호흡이 좀 무리가 있긴 하지만.-
이 노래의 진가를 알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한다. 어느새 나-불쌍한 나르씨스는 꼼짝도 않고 물밑에 어리는 내 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객관적으로 우수한 일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몇 년전에 제자 하나가 이 노래를 불렀었다. 지난 여름에 그 제자를 만났는데 이제야 조금 그 노래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냉정히 따져서 그말은 내 자신도 별로 신빙성이 가는 소리는 아니다. 그저 인사로 했을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런데도 또 생각은 비약한다. 그 제자가 이 노래의 진가를 알았다면 그렇다면... 나는 어느새 "올페오"가 되어 희열을 느끼고 있다.
나에게 만일"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난다면,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다 할 만틈 탐스러운 선악과를 준다고 나에게 나타난다면, "올페오"나 "사광"이 가졌던 음악의 재능이라는 선악과로서 나를 유혹한다면!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 神이 듣고서도 감동할 수 있게 유혹을 해 온다면!
"서역만리길 눈 부신 노을아래 모란이 진다"
조치훈님의 노래가 끝난다.
다행이다.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같은 범재의 예술인에게 악마는 특별한 관심이 없을 터이니라.
신 포도라고 중얼거리며 사라지는 여우처럼 衆生의 노래는 이래서 그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