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2 | [저널초점]
경제발전과 더불어(?)파괴되는 문화유산
윤덕향 / 발행인
(2004-02-05 11:57:24)
얼마전 군산에서는 바위 몇 개를 옮기고 그를 기념하는 의식이 있었다. 옮겨짐 바위들이 특별히 아름답거나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니며 단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구전설화의 대상이며 주변지역 사람들이 설화의 내용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바위 몇 개가 택지개발로 없어지게 된 것을 적잖은 돈을 들여 금싸라기 같은 땅에 옮겨놓고 그 일이 끝난 것을 기념한 것이다. 이번 일은 보는 관점 따라서 여러 가지 평가를 할 수 있으나 기본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바위에도 어떤 힘이나 정령이 있다는 생각은 고대인들에게는 일반적인 것이었으며 이런 류의 원시신앙은 우리나라의 경우 칠성바위와 같은 형태로 남아 있다. 이번에 옮겨진 바위는 그 형태에 의하여 권선징악적 교훈과 결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바탕에는 이같은 원시신앙이 자리하고 있다. 이 같은 원시신앙은 현대 종교나 인식에 의한다면 미신에 불과 하며 그저 호사가들의 관심 대상 정도로 전혀 가치가 없는 없애도 무방한 대상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를 옮기는 일을 주도한 사람들 중에는 종교인도 있고 저명한 지식인도 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볼 일이다.
이 일에 참여한 개개인으로부터 그 이유를 따져물을 수 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바위덩이에 불과한 것 일지라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구전설화가 담고 있는 교훈의 구체적 현태로서의 바위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형상화된 실체로서의 바윗돌은 몇몇 사람들의 정신적 구심점으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이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와는 달리 전주시 서신동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근에 있는 진북사의 존립이 위협을 받아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민족문화에서 불교문화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또 의식하든 하지 않든 우리 문화의 기층에는 불교문화가 크고 넓게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라는 불교사원이라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진북사 경내에 있는 석불좌상은 우리 문화의 대종을 이루는 불교문화의 요소로서 마땅히 보존되고 보호되오야할 것이다 이것은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군산 나운지구의 바윗돌과는 달리 불교문화, 나아가서는 민족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보존과 보호의 당위성은 췌언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적절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터덕이고 있음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할 수 없다.
문제는 지역개발사업과 상충되는 문화재에 대한 기본 인식의 차이인 것이다. 즉 문화재가 지역개발에서 걸림돌로 인식되느냐 아니면 더불어 개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되느냐 하는 인식의 차이인 것이다.
지금 도내 곳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뒤진 지역발전을 위하여 이런저런 사업이 계획되고 시행되고 있다. 새만금 사업을 비록하여 군장국가공단, 전주공단 조성사업, 용담댐 건설등이 우선 손꼽히며 그외에도 크고 작은 사업들로 곳곳이 부산스럽다. 지역마다 도로를 개설하거나 확장, 포장하고 주택단지 농공단지를 조성하느라 각종 장비들이 부산스럽고 관광개발을 위한 손질도 한 장이다. 군산공단에 대우 자동차 공장이 유치되고 최근헤는 현대자동차도 전주공단에 들어선다는 보도이다. 이들에 의하여 파급되는 경제적 효과는 지역개발에 활기를 불어 넣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저런 일로 지역의 산업과 경제발전에 장미빌 미래를 꿈구는 것이 마냥 허황스러운 일이 아니며 가슴 뿌듯할 듯 싶다.
그럼 한편으로 경제발전과 산업화가 초래할 부정적 요소들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다. 각종 사업으로 인하여 파헤쳐지는 자연적 생태와 사회문화적 생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제도적으로 각종 개발사업에는 사업시행에 앞서 환경영향 평가를 받도록 되어 있다. 이 환경영향평가는 그 내용에 있어 비교적 선진적 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문제의 하나는 평가대상에서 제외되는 사업이 있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규모가 작은 탓으로 제외되는 사업도 문제이지만 평가를 받아야함에도 이를 받지 않으려는 사업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더 나아가 그럼 사업들중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주체인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환경영향평가가 개인이나 국영기업체에게만 적용되고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는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 공공기관이 벌이는 사업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는 점에서, 또 경제적 이윤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고 국민이나 공동체 성원의 정신과 물질적 발전과 번영을 추구해야 하는 주체라는 점에서 보다 능동적이고 엄격하게 평가를 받아야만 되느 것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당위론이 무색해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왜 그런가? 역시 인식의 차이인 것이다. 5.16군사쿠테타로 집권하나 박정희 정권 이래로 군사 정권은 경제발전으로 정권의 정통성을 획득하려 하였고 그 결과 경제발전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가치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경제개발을 제어하는 모든 요소는 무가치하거나 없애도 좋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고 얼마간의 절차적 탈선ㅇ느 왕성한 추진력으로 비쳐지기도 하였다. 이같은 논리로 일관된 군사정권하에서는 자연 생태계의 파괴나 사회문화 생태의 동요는 경제발전을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희생되어야 하는 것으로 치부되었고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뒤늦게 산업화로 인하여 공해문제가 야기되자 공해대책이 수립되었으나 정작 중요한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은 등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저간의 실정이다.
지역공동체 성원들이 추구하는 것이 경제발전만인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 발전만이 국가의 번영과 민족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인가? 경제발전과 더불어, 현대사회의 전ㄴ개와 더불어 주민 개개인의 욕구는 다양해지고 바라는 바 삶의 형태도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쾌적한 자연환경과 경제적 풍요, 그리고 고도의 문화환경을 추구한다는 점은 공통일 것이다.
또 군사정권과의 차별화를 표방하는 문민정부의 소위 신경제개발이 군사정권하의 발전논리를 답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환경영향평가조차 제대로 받지않은 사업이 도내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 한다.
현재 논란이 있는 진북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는 발전논리는 제2, 제3의 진북사를 초래한다. 예술을 사랑하고 전통문화의 보루로 서 우리 지역 곳곳에 제2, 제3의바윗돌이 자리할 것을 믿어도 좋을지? 그저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