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12 | [문화저널]
환경을 생각한다
-김환기의 환경이야기-
수돗물 오염
김환기(2004-02-05 12:04:34)
요즈음 사람들이 모두다 수돗물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부당국자가 아무리 수돗물의 청결과 안전성을 역설해도 그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다. 모두다 우리나라 수돗물의 수원인 하천이 썩고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치를 통하지 않고도 그저 눈으로만 잠시 확인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수돗물을 받아 그냥 마시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수돗물을 끓이거나, 정수기를 통해 걸러 마신다. 그러면서도 못믿어 하는 실정이다. 끓이거나 걸러도 해결되지 않는 유해 물질이 수돗물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매년 자기 몸무게의 5배쯤의 물을 마신다. 정상적인 삶을 마치는 인간의 경우는 약 25톤의 물을 마시게 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각종 현대질병의 주요원인이 오염된 물과 관계가 깊지 않을까 판단된다. 나는 최근에 미국 보스톤을 여행할 기회가 있어 홀리데인이라는 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다. 호텔에 들어가고 있는데, 물주전자가 없어 무심코 프런트에 전화를 해 호텔 방에 물이 없다고 하자 지배인이 깜짝 놀라 달려와 욕실의 수도꼭지를 트는 것이었다. 머리가 노란 지배인은 수도꼭지에서 쏟아지는 물을 보며 마실 물이 없다는 나의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아는 표정을 지었다. 끓이지도 않은 물을 어떻게 마시느냐는 나의 질문에 지배인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식의 어처구니 없는 제스츄어를 취했다. 우리나라에서 끓여서 마시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은 그 지배인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수돗물은 관리측면에서 신용할 수 없다. 그러니깐 우리나라 시민들은 수돗물 대신에 광천수(鑛泉水)의 일종인 약수(藥水)를 선호한다. 요금을 지불하는 상수도 물을 믿지 못하고 위생 관리가 허술한 수위 약수터의 물을 새벽부터 줄을 서가면서 길어다 마셔야 생명이 연장되는 사회가 바로 현재의 우리 사회이다. 어떤 음식점에서는 수돗물이 아닌 약수를 음료수로 공급한다는 선전을 하면서 손님의 관심을 끈다. 요식업소에서 손님들에게 약수를 음료수로 공급한다는 것이 또한 문제이다. 소위 약수란 비공인된 물이고 아무도 관리를 하지 않은 자연수이다. 더구나 약수가 그렇게 흔한 것도 아니다. 예컨데 50만 인구의 도시를 가정하고, 그 도시인구의 50%가 약수를 마신다고 할 때 하루에 약 2백톤의 약수가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그런 정도의 약수터를 발견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직접 길어다 마시는 경우가 아니면 약수 또한 가짜일 수 밖에 없다.
최근 보사부에서 조사 발표한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요식업소에서 사용하고 있는 정화된 물이, 정수기 관리 소홀로 70%정도가 이차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가 하면 최근 일부 정수기 판매업자들까지 가정 주부들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 일반 가정의 수돗물이나 지하수는 인체에 필요한 전해물질(電解物質)이 들어 있어서 전기분해를 일으키면 흑갈색의 침전물이 발생하는 점을 이용 주부들로 하여금 수돗물이나 지하수를 떠오게 한 후 업자들이 판매하고 있는 이온(ion)교환 방식의 정수기를 통과한 물과 비교시키는 것이다. 이때 각각의 물을 전기 분해시키면 정상적인 수돗물이나 지하수는 흑갈색의 침전물이 생기게 되어 시각적으로 주부들을 놀라게 한다. 그러나 업자들이 판매하는 이온교환 방식의 정수기는 전해물질을 이미 걸러버린 후라 전기분해를 시켜도 침전물이 생기지 않는다. 정수기 판매업자들은 바로 이 점을 노리는 것이다.
우리는 곧잘 '예전에는...'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예전에는 한강에서 수영도 했는데... 옛날에는 이 강에서 천렵도 했는데... 이제는 정말 이러한 사실들을 회고지탄(回顧之嘆)으로 이야기할 수 밖에 없다. 서울 시민의 대다수가 마시는 수돗물의 수원인 한강이 이젠 수영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버렸다. 수영도 할 수 없는 물을 퍼다 수돗물로 사용한다니 한심한 일이다. 그래도 한강물을 마시는 사람은 행복한 편이다. 한강 이남의 영산강이나 금강 혹은 낙동강 물을 마시는 사람들은 더 비참하다. 수영은 그만 두고 이 강들은 발조차 담글 수 없다. 발도 씻을 수 없는 물을 뱃속에 넣어 우리는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어느 교수의 발표 논문을 그대로 믿는다면 부산과 경남의 젖줄인 낙동강은 중금속의 오염으로 중병을 앓고 있다. 그 교수는 강바닥에 인체에 해로운 유기염소화합물(PCB)이 5.4ppm이나 검출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유기염소화합물은 죽음의 가루라 불리는 고엽제의 원료가 되는 물질로 체내에 흡수되어 축절될 경우 이름조차 알수 없는 각종 질병에 걸릴 수 있고 기형아를 출산하여 자손까지 피해에 시달리게 하는 가공의 독극물이다. 월남전 당시 정글의 모든 식물 뿌리까지 고사시키기 위해 뿌려졌던 그 말썽 많은 물질이 바로 다이옥신이라는 물질이다. 이 물질이 강바닥 뿐만 아니라 각종 어패류(魚貝類)에서까지 검출되고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낙동강 주변에 서식하는 붉은 부리갈매기의 체내에 다이옥신이 32ppm이라는 놀라운 수치가 축적되어 있다니, 그렇다면 인근 주민의 체내에는 얼마만큼의 수치가 축적되어 있단 말인가? 낙동강의 중금속 오염은 이것 뿐만이 아니다. 발표 논문에 의하면 부산 장림공단 주변의 강바닥에는 크롬이 하천수 허용기준 0.05ppm의 4398배에 해당하는 219.9ppm 납이 허용기준 0.1ppm의 611배에 해당하는 61.1ppm, 구리가 허용기준 0.1ppm의 865배에 해당하는 86.5ppm, 카드뮴이 허용기준 0.01ppm의 110배에 해당하는 1.1ppm이나 검출되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강에서 어떻게 천렵같은 놀이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이러한 물을 가지고 어떻게 인간이 마실 수돗물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두산기업의 페놀 누출 사건으로 낙동강 주변이 떠들썩한 일이 있었다. 페놀이 과다 유입되자 그 냄새를 소독제인 염소로써 희석시키고자 과다 투입했는데 염소와 페놀이 반응하여 클로로페놀이 생성됨으로써 악취가 진동해 발생한 사건이 바로 항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낙동간 페놀유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낙동강을 젖줄로 삼아 생활해 온 경남과 경북 주민들을 분노에 치를 떨었고 시민들은 두산기업의 비윤리성을 성토한 바 있다. 금강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철새 도래지로 알려진 전북 익산군 옹포, 성당, 용안면 일대 금강유역에 최근 수질오염으로 인하여 철새들이 사라져 버렸다. 충남과 전북의 젖줄인 금강의 오염은 뱅어와 새우등이 격감하여 먹이를 잃은데에 이유가 있다고 한다. 생활페수와 각종 오염물질의 유입으로 금강에는 새들의 먹이가 될 수 있는 어패류들이 서식할 수 없다. 철새마저 도래하기를 포기한 오염된 강물을 어떻게 식수원으로 사용할수 있는지 의문이다.
요사이 생수(生水)시판 허용문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알래스카 등에서 물을 길어다 판다는 이야기인데 큰 배에 그곳의 물을 실어와 병에 담아 팔기만 하면 이각이 생기니 얼마나 좋은 사업인가. 대기업을 비롯한 국내 유수 기업들이 너도 나도 참여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하여 장사를 해보겠다는 뻔한 속셈이다. 생수의 시판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조치는 공공기관이 수돗물의 질을 부정하고 의심한다는 결론밖에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당국은 잠정적으로 생수시판 허가를 보류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외에도 관계당국은 생수시판이 허용될 경우 생수를 사 먹는 사람과 수돗물을 먹는 사람사이에 위화감이 생기는 것을 우려하여 국민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현행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생수는 버젓이 상표를 달고 판매되고 있다. 법으로 금하고 있는데도 암암리에 시판되는데 전면적으로 허용한다면 얼마나 어지러운 상행위가 성행할까 걱정된다.
생수의 시판을 전면적으로 허용할 경우 아마 우리나라 시민 대다수가 지대한 관심을 보일 것이다. 수돗물을 못믿어하는 시민들은 생수를 사 먹기 위해 관심을 가질 것이고 생수를 사먹을 수 없는 시민들은 상대적으로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하여 물장사로 부를 축적한 현대판 봉이 김선달과 그것에 놀아나는 시민들의 아수라장판이 벌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