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1 | [문화저널]
끊긴 전화
도종환
(2004-02-05 12:07:56)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었다. 말이 없었다. 잠시 그렇게 있다 전화가 끊어 졌다. 누구였을까. 깊은 밤 어둠 속에서 아직도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두근거리는 집게손가락으로 내 가장 가까운 곳까지 달려와 여보세요 여보세요 두드리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 그냥 돌아선 그는 누구였을까
나도 그러했다. 나도 이 세상 그 어떤 곳을 향해 가까이 가려다 그만 돌아선 날이 있었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항아리 깊은 곳에 비린 것을 눌러 담듯 가슴 캄캄한 곳에 저 혼자 살아가도록 담아둔 수많은 별과 구름이 있었다. 그는 조금도 눈치 cowl 못한 채 나 혼자만 서성거리다 귀뚜라미 소리 같은 것을 허공에 던지다. 단 한마디 전하지 못하고 돌아선 날이 있었다.
이 세상 많은 이들도 그럴 것이다. 평생 저 혼자 썼다 지운 저리디 저린 지음과 모음들이 있을 것이다. 침을 삼키듯 목끝까지 올라온 그리움을 삼키고 두 눈을 감듯 떠오르는 얼굴을 내리 감고 입술 밖에 몇 번인가 성성이다 차마 하지 못하고 되가져간 깨알같은 말들이 있을 것이다 한 발짝을 더 나아가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