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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 | [문화칼럼]
참다운 놀이문화의 부재는 사회병폐의 근원이다.
글/강봉근 전북대교수·국어교육과 (2004-02-05 12:09:34)
신화속에는 인간의 본성과 원초적인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특히 인간창조의 신화는 인간의 본성이 어떠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성서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진흙을 빚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고 한다. 이는 인간이 육체적으로는 물성을 지니고 있으며, 정신적으로 신성을 지니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편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인간창조는 인간의 본성이 어떤 것인가를 보다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찰흙을 냇물에 적셔 우주를 지배하는 신들을 본떠서 인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해 동물로부터 갖가지 선악의 심성을 가져다가 인간의 가슴속에 넣었다. 그러자 프로메테우스의 친구인 지혜의 여신 아테네는 반쯤 생기를 얻은 인간에게 신의 숨길인 마음을 불어 넣어 주었다고 한다. 이 신화는 인간에게 신의 속성과 동물의 속성이 공존해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의 단군신화에서도 천상의 신인 환웅이 지상의 동물인 곰과 결합하여 인간인 단군을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단군신화 역시 인간이 신의 속성과 동물의 속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신의 속성과 동물의 속성을 공유한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성서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이브를 만들어서 함께 살도록 하였다. 한편 그리스의 홍수설화에서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남녀 두 사람 이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있어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준다. 홍수 이후에 이 세상에 단 둘이만 남게된 데우칼리온과 퓌라는 두려움과 고독에 떨다가 여신 테미스의 제단 앞에서 그들의 고통을 호소한다. 그러자 테미스는 "머리를 베일로 싸고 띠를 풀고, 너희들 어머니의 뼈를 등 뒤로 던져라!" 라고 말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대지이고, 어머니의 뼈는 돌은 의미한다. 그들이 여신의 말에 따라서 등 뒤로 돌을 던졌는데 남편인 데우칼리온이 던진 돌은 남자가 되고, 아내인 퓌라가 던진 돌은 여자가 되어 그들이 두려움과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위의 신화들을 종합하면 인간은 육체적 존재임과 동시에 정신적인 존재이며, 남녀관계를 포함한 집단생활을 통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인간은 육체와 정신의 조화, 그리고 인간 상호간의 조화가 원만하게 이루어질 때 비로소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조상들은 예로부터 놀이문화를 통하여 조화로운 삶을 추구해 왔다. 고대사회의 제천의식에서는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고, 또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의식과 함께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이와같은 제의와 놀이는 신과 인간의 조화, 육체와 정신의 조화,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조화를 포괄하는 의식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는 여러 가지 놀이문화에서도 우리는 그 흔적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정월보름날 행해지던 편싸움(便戰,石戰)은 지역을 중심으로 두 패가 나누어져서 몽둥이와 돌을 들고 벌이는 싸움이었다. 얼핏 보아서 이싸움은 살벌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지만 이 놀이의 궁극적인 의의는 풍년을 기원하고, 질병을 예방하며, 감투정신과 협동정신을 진작시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 때에는 대동강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 편싸움에 왕이 옷을 입은 채로 물속에 들어가서 심판을 보았다고 하며, 고려때에 와서 왕이 편싸움을 관전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월보름 전후해서 주로 남도지방에서 실시된 줄다리기는 마을, 면, 군 단위로 행해지던 집단민속놀이였다. 정초에 집집마다 짚을 염출해서 직경이 30-60㎝ 길이가 100m나 되는 큰 줄을 만든 다음 남자들은 줄다리기에 참여했고 농약과 함께 아낙네들은 응원을 했다. 이줄다리기의 승부로 농사의 풍년과 흉년을 점쳤으며, 이긴 편의 줄을 썰어 논에 거름으로 쓰면, 농사가 풍년이들고, 또 이긴 편의 줄을 가지고 배를 타면 고기잡이에서 만선이 되어 돌아올 수 있었다고 한다. 주로 한가윗날 밤에 행해지던 강강술래는 환한 달빛을 받으며 해하던 가장 정서적이고 아름다운 여성들의 집단 무용이다. 부인은 부인끼리, 처녀는 처녀끼리, 또는 부인과 처녀가 함께 어울려 손에 손을 맞잡고 둥근원을 만든 후에 목청이 좋은 사람이 원 밖이나 원 안에서 선창을 하면 이 노래에 맞추어 노래와 함께 춤을 춘다. 처음에는 진양조 가락으로 느리게 뽑다가 중머리, 중중머리, 자진머리 가락으로 점점 빨라진다. 강강술래의 어원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둥글게 둥글레'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한가윗날 둥근달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보름달의 원만함을 모방함으로써 풍요로움을 기뻐하고, 화합을 기원한 민속놀이로 보아야 한다. 이상에서 소개한 우리의 민속놀이는 일부에 불과 하지만 이를 종합해보면 한국인들은 놀이문화를 통해서 신 또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루어 왔으며, 육체와 정신,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조화를 이루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의 타고난 본성과 원초적인 삶의 모습에서 일탈하지 않는 놀이문화였다. 또한 집단적인 놀이를 통해서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함으로써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의 놀이문화는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사회의 놀이문화는 크게 스포츠 오락으로 나눌수 있다. 그 중 스포츠는 '체력은 국력이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가적 차원에서 크게 육성되어 왔음이 사실이다.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따낸 메달 수가 그것을 입증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스포츠 정책은 선수 육성을 위한 것이었지 국민체육은 아니었다. 따라서 올림픽의 메달수와 국민체력 또는 체육을 통한 국민의 화합은 별함수 관계없다. 뿐만 아니라 요즈음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프로야구나 민속씨름도 선수들의 경기를 관전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즉 '하는 체육'이 아니라 '보는 체육'으로 전락함으로써 육체와 정신의 균형적인 발달이라는 스포츠의 본연의 성격에 크게 어긋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즐기는 오락은 주로 오락실에서 어른들의 눈을 피해 이루어지는 전자겜임이 대부분이다. 이는 넓은 공간에서 집단으로 행해지는 놀이가 아니라 좁은 공간에서 개인이 즐기는 게임으로 그것이 야기시키는 폐단은 널리 아는 바다. 성인들의 오락은 세칭'고스톱'으로 대표된다. 이것 또한 건전한 오락이라 할 수 없다. 이처럼 우리사회에서 행해지는 오락은 집단적이라기보다는 개인적이며,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발전과는 거리가 먼 불건전한 오락들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참다운 놀이문화의 부재는 온갖 사회적 병폐의 근원이 된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팽배,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인간의 소외감은 타고난 본연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한다. 최근에 있었던 지존파 사건이나 세무비리, 부실공사들은 모두 인간성의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이 사회에 만연된 온갖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육체와 정신의 조화,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건전한 놀이문화의 육성이 시급한 과제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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