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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 | [사람과사람]
여치, 여우, 여실, 여광한 선비
이병천 소설가·『문화저널』편집위원 (2004-02-05 12:28:54)
세모는 한해가 가고 있다는 쓸쓸함에 앞서 우리를 잠시 회한적이게 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달려도 결국은 깨기지 마련인 게 육상 기록인 것처럼, 우리의 한해살이도 연말의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지나온 저 과거의 오솔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노라면 후회가 앞서고 여한이 술찌게미처럼 고이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한 인간의 전체 생애를 두고서야 말해 무엇하랴. 비록 신년호에 실릴 원고라고는 한지만, 세모의 어수선한 때에 그의 한인생을 추적해보도록 필자를 작촌 선생에게 취재보낸 문화저널의 짓궂은 처사에 그래서 나는 화가 치밀 정도였다. 내가 아는 선생은 유난히 봄을 좋아하시는 분이니까 춘삼월쯤 이런 기획을 했더라면 얼마나 신이 날 것인가! 선생께서도, 그리고 아직은 물가의 버들개지만 같은 여린 나도… 그렇다. 작촌 선생님은 확실히 봄을 사랑하신다. 선생은 이미 오래전 내게 기꺼이 두점의 서예작품을 써 주신 적이 있다. 그하나는 ( )라는 글귀로, 꽃이 피자 산이 절로 밝아지더니 그 꽃이 지자 물이 어디론가 흘러가버린다… 하는 작품, 그리고 또 하나가 () 라는 매월당 김시습의 싯귀이다. 꽃이 피고 또 꽃이 지는 걸 봄이 어찌 간섭하며 구름이 가고 구름이 또 오는 걸 산이 어찌 다툴거나 하는 뜻이다. 물이 흘러가는 듯한 유려한 필치의 초서로 써주신 이 표구작품들을 아침 저녁으로 대하던 내가, 올해 85세로 봄을 사랑하기시를 마치 나비가 꽃을 듯이 하시는 선생을 필시 세모에 찾아뵈어야 하던 심정을 그래서 조금이나마 짐작하실 수 있으시겠는가? 전주시 다가동의 천변, 다가산을 오른쪽 어깨 위에 둔 선생의 고택 지붕에는 북풍이 휘휘 몰아치고 있었다. 겨울이 된 이후 가장 매서운 추위가 벌써 며칠째 위세를 부리고 있던 날이었다. 뜰안의 모과나무도, 시누대 푸른 잎도 언 듯한데 선생께서는 예의 사랑방문을 열고 정정한 탄성부터 지르신다. " 병천씨가 이게 다 어쩐 일이여?! " 그게 사람을 대할 때면 언제나 기쁨이 절로 우러나는 듯한 선생의 표현법이다. 처음 만나도 그렇고 단 구번째 만나는 사람도 영락없다. 나는 선생의 무릎이 닿을 정도로 바짝 다가가 넘쭉 엎드린다. 함께 맞절을 받으시면서도 무슨 절이냐고 하시는 선생의 말씀이 정겹다. 돌이켜보니 지난 여름 한 화랑에서 잠시 뵈온 걸 빼고나면 두해가 넘게 가까이 뵙지 못했었다. " 이걱좀 봐바! " 예총 원고라고 했다. 모악산 수왕사 위의 바위에 새겨진 무량굴(無量窟)이라는 글씨가 어느 때 누가 새긴 것인지 밝힌 내용이었다. 선생께서는 출판사에서 성의없이 교정한 초고를 좀 살펴달라는 말씀이셨지만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직도 자료들을 들추고 원고를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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