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2 | [문화칼럼]
교육현장을 생각한다
유아교육의 철학이 빈곤하다
김규수 원광대 교수·유아교육과
(2004-02-05 13:53:04)
인간의 발달초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면서 조기교육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발달 초기, 즉 조기(早期)에만 교육을 하면 다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유아교육은 시기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방법이라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된다. 방법이 잘못된 유아교육은 성인의 기대와는 어긋난 부작용과 역효과를 초래하기 쉽다.
이를테면 아이의 요구 및 흥미와 상관없이 너무 일찍 가르친 경우, 아이가 공부를 지겨울 일거리로 느끼거나 가르치는 사람을 기피하는 등의 반응을 보일수 있다. 이와같은 부정적 효과는 유아의 호기심과 자신감을 상실하게 하여 나중에 학습에 오랫동안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또다시, 유아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유아교육이 중요하면 할수록 절대적으로 유아교육이 올바르게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의 왜곡된 교육관에서 비롯된 재능교육, 유아의 특성 및 요구와 맞지 않는 일방적이고 획일화된 교육이라서 올바른 유아교육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아야 한다.
유아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교육과 행정의 주체인 유치원과 정부는 왜 올바른 유아교육을 외면하고 있는가? 정부는 유아교육의 공교육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치원'을 '어린이 집'으로 이원화함으로써 행정적 효율성을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부모는 자녀의 단기적 성취에 급급하여 그들에게 부당한 압력을 주고 있다. 또한 유아교육기관은 유아로 하여금 학습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바람직한 습관을 형성하도록 하고, 학습기초력을 튼튼하게 쌓도록 돕기보다는 국민학교 준비에 관심이 쏠려있다. 왜 이런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가? 그것을 유아교육에 관한 총체적인 관심의 결여에서 온다고 보아야 한다. 유아교육과 관련된 제반요소들을 전체적이고 상호관계적으로 보지 못하고 부분적이고 독립적으로 보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과 바람직한 방법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글은 이와 같이 유아교육 문제의 근본적 원인을 유아교육 철학의 빈곤에 두고, 이로 이한 문제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이와같은 견해는 유아교육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바람직한 유아교육을 전망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본다.
유아교육을 총체적으로 보려면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를, 무엇을, 그리고 왜에 대해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 유아교육의 문제는 결국 이들 요인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 요인은 각각 독립적으로 작용한다기 보다는 상호관계되어 동시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시리다. 그렇지만 이해의 편의상 각각의 요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유아교육을 언제 하느냐과 관련된 문제이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유아교육은 조기교육으로 알려져 왔고, 조기에 실시하는 교육은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만 이는 위험한 생각이다. 아이 자신이 아직 무엇인가는 받아들일 신체적 정신적 준비가 없을 때, 외부로부터 일방적으로 주어지는 조기교육은 그들의 발달적 힘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언제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이 좋으냐는 유아자신에게 달려 있다. 유아가 어떤것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이때가 적기라고 보아야 한다. 유아교육은 아무 때나 유아에게 무엇을 가르쳐서 되는 것이 아니다. 가르칠수 있는 기회는 잘 포착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기가 아닌 때를 피해야 하는 것 못지 않게 적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요즘 유아교육의 대상 연령이 낮아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교육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다는 전제에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어디서 하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간단히 말해 유아교육은 유치원과 같은 기관에서만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 모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흔히 교육은 교육기관에서만 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쉬우나 그것은 전문적인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서 그렇다. 유아는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으며 유치원에 보내기 전에 이미 가정에서 교육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발달 초기에 있어서 가정의 교육적 환경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유치원과 가정이 상호긴밀하게 유아교육에 참여하지 않고 안쪽에만 맡겨버린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유아교육기관은 유아교육에 적합한 곳이어야 한다. 좋은 유치원은 건물이 좋거나 보육료가 비싼 곳이어햐 하는 것은 아니다. 원장의 교육철학, 프로그램, 교육환경, 교사의 질등 이 모두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특히 유아교육은 부실한 조건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교육적 조건에 많은 관심을 두어야 한다.
셋째, 누가 하느냐의 문제이다. 유아교육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아의 특성과 그들의 발달적 요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일방적이고 억지로 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유아교육은 전문적이며 유아교사는 전문가이다. 그러므로 유아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에 맞는 지식과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유아교사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아이를 사랑하고 올바르게 성장시키고자 하는 투철한 신념과 유아교육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 그리고 유아와 바람직한 관계를 맺고 그들을 성장시키는데 필요한 기술을 갖추는 일이다.
여기서 누가 하느냐는 비단 교사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와 성인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부모는 자녀 양육에 관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며, 부모됨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최초의 교사는 바로 부모이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교육이 부모의 욕심과 체면에서가 아니라 진정 자녀를 위하는 마음에서 나올 때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무한한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전문적인 직업에는 그에 따른 보수가 주어져야 하는데도 우리나라 유치원 교사의 사회적 대우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는 점이 유아교육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질이 좋은 교사를 확보하고 유능한 교사 지망생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유치원 교사의 보수가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하겠다.
넷째, 유아교육의 대상에 관한 문제이다. 유아교육은 정상아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아나 천재아 혹은 어떤 문제를 가진 유아 등 유아교육의 대상은 다양하다. 또 정상이라고 해서 모두가 같은 것도 아니다. 흔히 유아의 생활 연령이 발달수준을 재는 기준이 되기도 하지만 유아기 발달에 있어 능력과 발달속도에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연령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유아의 발달 특성에 맞지 않는 교육이 바로 문제의 시작이 된다는 점에서 유선 유아의 특성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성인과 다른 그들만의 본성은 무엇인가? 유아기의 발달과업은 무엇이며, 이는 어떤 과정을 통해 성취되는가? 등
다섯째, 무엇을 가르쳐야 하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유아교육에서 가장 많은 갈등을 갖고 있는 것중의 하나가 문자와 숫자 등 소위 학습의 도구가 되는 기능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가이다. 결론을 미리 말하면 어떻게 가르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기 때문에, 가르쳐야 된다 혹은 안된다로 잘라 말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고자 는 것은 이러한 학습기능이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히려 중요하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아에게서 대단히 어려운 이같은 기능을 왜 배워야 하는가에 대한 필요성도 모르는 그들에게 억지로 가르치는 것은 옳지않다. 그러한 것들을 익히기 위해 필요한 과정과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유아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그러한 기능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는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아무리 중요한 것이라도 일방적으로 강요에 의해서 가르치면 그것이 목적이 되어 버리기 쉽다. 유아가 배우는 모든 지식 특히 학습기능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올바르게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와 같은 주장을 결코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될 것이다.
여섯째,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 문제는 유아교육의 시기와 내용 그리고 대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유아의 발달적 요구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방법은 어떤 이유에서든 정당화될 수 없다. 다시 말해 유아의 개인차, 흥미와 요구, 선생 경험의 유무 등 유아의 발달조건을 무시한 교육을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발달적 힘을 손상한다는 검에 유의해야 한다.
유아교육에서 가장 보편화된 교육방법은 놀이이다. 놀이는 유아가 세계를 이해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당하다고 보기 때문에 유아교육의 방법적 원리로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아의 놀이가 그냥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놀이가 다 교육적이고 유아의 성장에 유익한 것은 아니다. 놀이에 필요한 놀이감과 자료등이 마련되어야 하고 적절한 교사의 안내가 있어야 한다.
일곱째, 마지막으로 '왜'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것은 유아교육의 본질과 관련된 것으로 맨 먼저 제기되어야 할 문제이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유아교육의 방향과 조건을 결정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문제를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지 않다.
유아교육은 발달이 급격히 일어나며 환경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발달 초기에 자연적 성장에 맡기지 않고, 발달 충동을 자극하고 발달적 힘을 사용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충실한 발달을 가져오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와 같은 발달은 유아기를 놓치면 성취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유아교육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유아교육은 이와 같은 본질적 의미에 충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하겠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유아교육은 여러 요인이 상호 복잡하게 관련되어 작용하고 있으며 이를 총체적으로 보아야 하며, 어떤 요인도 결코 소홀히 취급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올바른 유아교육에 대한 전망은 이와 같은 제반 문제가 해결될 때 이루어지리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