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2 | [문화저널]
어린이 글쓰기의 올바른 이해
아이들의 상상력은 창작의 밑거름이다
이야기 만들기
이재현 어린이 글쓰기 지도교사
(2004-02-05 13:56:34)
사람은 누구에게나 상상할 수 있는 힘이 있다. 어떤 바람에서부터 앞으로 일어날 것만 같은 여러 가지 생각들은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는 위대한 창작물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의 상상이 때로 과학과 어우러져 훌륭한 발명품을 낳아 이 사회를 날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작가가 되어 줄거리를 짜고 대화글을 넣고 주인공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일은 정말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야기 만들기'에는 어느 정도 필요한 조건이 있다.
첫째, 미리 머릿속에 주인공과 줄거리를 짜보는 것이다. 주인공은 사람이나 동물도 좋고 사람과 동물이 함께 나와도 좋다. 동물로 종할 때는 마치 사람처럼, 특히 자신과 같은 어린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어도 좋다. 그리고 줄거리는 있을만한 일로 엮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보아 너무 터무니없는 내용은 이야기의 가치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둘 때, 이야기에는 사건이 있어야 한다. 사건이란 뜻밖에 일어난 일로서 주인공과 사건이 합쳐져야만 이야기가 제대로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옛날 어느 마을에 공부도 잘하고 심부름도 잘하는 아주 착한 김개똥이라는 어린이가 있었는데 뒷날 훌륭한 사람이 되어서 잘 살았다'는 내용은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되지 못한다. 우리의 옛날 이야기인 심청전에서도 앞을 보지 못하는 심청이 아버지가 길을 가다 다리에서 떨어져 물에 빠지고 지나가던 스님이 구해주고 구리고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을 내놓기로 약속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심청이가 뱃사람들에게 팔려가 바다에 빠지고 다시 연꽃 속에 태어나 왕비가 되어 아버지를 만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이처럼 이야기는 사건이 있어야 생명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셋째, 이야기는 처음과 끝이 있어야 한다. 이야기를 쓰다보면 글을 머리와 꼬리가 없고 사건만 있는 경우도 있다. 이야기의 시작이나 사건이 일어나기 위한 상황이 있어야 하고 또 꼭 어떤 결론을 내지 않더라도 마무리가 있어야 하나는 뜻이다.
넷째, 이야기 내용에 본받을 점(교훈)이 숨어 있어야 하겠다. 이야기가 재미있기만 하고 본받을 점이 없으면 그만큼 가치가 떨어지고 너무 본받을 점만 강조하면 마치 주장하는 글이 되기 쉽다. 그래서 재밌으면서도 그 속에 이야기의 주제가 녹아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는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글이 단 할 주도 없지만 심청이의 마음과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효성심을 일깨워 준다. 또 흥부전에서도 형제끼리 사이좋게 지내라는 글은 없지만 우리에게 형제간의 우애를 전해주고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이야기의 구성을 어른들이 들으면 글을 쓰기가 매우 어려울 것 같지만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오히려 신나게 써 나간다. 단지, 생각하는 것에 방해되지 않게 차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실제로 아이들은 이야기를 만들 때도 자기의 주변 생활과 밀접한 단순한 내용을 잡아내는 특징이 있다. 다음은 직접 아이들이 쓴 글이다.
보기글 시계 (5학년 남)
시계 파는 가계의 진열장에는 멋진 자동차 모양의 탁상시계가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가 왔다. 주인 아저씨에게, "아저씨, 저기 자동차 모양의 탁상시계 하나 주세요. 이렇게 해서 탁상시계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
"엄마가 너 늦잠 자지 말라고 탁상시계 사왔어. 이제부터 일찍 일어나야 해!" "알았어요, 엄마" 잠꾸러기 철민이는 오락에 정신이 팔려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탁상시계는 철민이의 책상 위에 올려졌다. 탁상시계는 필통, 가위들에게 인사를 하자 필통과 가위 등은 반가워하였다.
다음날 아침, "따라라 랄랄라 --- 철민아, 일어나!" 하고 탁상시계가 철민이를 깨웠다. 철민이는 탁상시계의 노래를 듣고 벌떡 일어나서 방을 나갔다. 날마다 탁상시계는 놀래를 불렀고 철민이는 노래를 듣고 벌덕 일어났다.
어느 날, 철민이가 공작을 마들려고 종이를 자르려고 했다. 마침 가위가 탁상시계 뒤에 있어서 가위를 꺼내는데 탁상시계가 미끄러져서 아래로 떨어졌다. 꽝!
탁상시계는 철민이를 불렀다. '철민아, 도와줘! 철민아......' 탁상시계는 다시는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쓰레기장에 버려졌다. 아마도 탁상시계는 쓰레기장 한 구석에서 외칠 것이다. '철민아 도와줘---' (1993년 8월 16일)
아이들은 이야기 속에서도 어른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보기글 1)을 쓴 여자아이는 엄마가 이런저런 일로 집을 비우는 일이 많은데 혹시 텔레비전에서나 나오는 나쁜 사람에게 자기가 유괴 당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나타나 있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뜻이 맞아주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이다. 보기글 2)도 자신이 실제로 조금 고장난 탁상시계를 버린 일이 있다고 한다. 또 아이들은 전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보기글 아기공룡의 다짐(3학년 남)
기원 전 어느 날, 공룡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공룡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한 마리는 그냥 공룡인데 한 마리는 이상하게 돌머리 공룡이었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형은 "니가 잘났냐?" 또 동생은 "형이면 다야?"하고 싸웠습니다. 그런데 엄마 공룡이 갑자기 병이 났습니다. 그래서 엄마공룡은 병원에 갔는데 악어의사선생님이 무서운 병, 암이라고 하였습니다. 엄마 공룡은 아들에게 "제발 사이좋게 지내고 내가 죽거든 내 시체를 화산에 던져라"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 아들 공룡들은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제삿날만 되면 엄마 생각을 하면서 화산 속에 돌을 넣고 울면서 절을 했답니다.(1994년 8월 25일)
자신의 상상을 이야기로 만드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색깔을 보며 생각되는 것을 모두 써보거나 몇 십년 뒤 자신의 모습이나 생활, 변화된 사회를 상상해 보게 하면 좋다. 또 책을 반쯤 읽고 그 다음 내용을 자기 생각으로 이어서 써보거나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아이들은 늘 새롭고 엉뚱한 상상을 해낸다. 그리고 가끔은 곤란한 처지에 있을 때 거짓말로 이용하기도 한다. 거짓말이 버릇이 되면 안되겠지만 현실적인 불만이 어떤 바램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이들의 상상을 어떤 틀에 담도록 지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야기 만들기'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것에서부터 옛날이야기, 상상 속의 미래 사회 등 그 범위가 매우 크다. 책을 열권 읽으면 자신이 직접 한 편의 동화를 써보게 하는 것은 아이의 상상력을 좀더 크게, 좀더 깊게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